본문 바로가기

    뉴스

    ADVERTISEMENT

    [책마을] 정부가 개입하면 '공유재의 비극'이 해결된다고?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공유의 비극을 넘어 | 엘리너 오스트롬 지음 | 윤홍근·안도경 옮김 | 랜덤하우스 | 488쪽 | 1만9800원

    부락에서 잘 관리하던 산림
    국유화 된 후 감시원 부족
    뇌물까지 받아 점점 황폐해져


    "만일 어장에서 모두가 원하는 만큼 고기를 잡게 하고,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자원을 마음껏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도록 풀어 놓는다면,여러분은 이웃과 자신을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출입이 자유로운 어장에서 좋은 상황은 열악한 상황으로 이어지고,점점 많은 배들이 차츰 줄어드는 고기를 쫓으며,점차 많아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수익을 두고 다투게 될 것입니다. "

    1980년 3월,로메오 르블랑 당시 캐나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국해양수산협회 50주년 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어장을 어민들에게 맡겨 놓으면 모든 어자원이 남획될 것이므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민들에 대해 효과적인 지배력을 발휘할 관리인을 둬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1968년 개릿 하딘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희소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할 때 예측되는 환경의 악화를 상징하게 된 '공유재의 비극'이 캐나다의 어장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같은 '공유재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나온 처방은 크게 두 가지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 또는 사유재산권을 설정해 시장제도에 맡기는 것이다. 학자들은 "공유재의 비극 때문에 환경문제는 자발적 협동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강제력을 행사하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주장과 "공유재의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유재산권 체제를 확립해 공유체제를 종식시키는 것 뿐"이라는 주장으로 맞서왔다.
    [책마을] 정부가 개입하면 '공유재의 비극'이 해결된다고?

    《공유의 비극을 넘어》의 저자는 시장 아니면 국가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자치관리라는 제3의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재의 비극'이론이 지닌 오류를 밝히고 대안을 제시해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인디애나대학 블루밍턴캠퍼스의 석좌교수다.

    저자는 1990년 처음 출간한 이 책에서 오랫동안 마을에서 잘 관리되던 산림이 '공유의 비극' 논리에 따라 국유화된 후 충분한 감시인력을 고용하지 못한 데다 감시인력의 뇌물수수 등으로 오히려 산림이 파괴되는 경향이 태국,네팔,니제르,인도 등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또한 어장이나 산림,지하수 등은 사유화하기도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소유권을 나눈다고 해서 환경 파괴나 자원 고갈을 막을 수도 없다고 설명한다. 중앙정부의 관리나 사유화는 둘 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어서 한 가지 선택만으로는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최적의 제도적 해결책은 외부의 행위자 대신 사용자들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정교한 장치들이 보다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세계 도처의 사례를 제시한다. 상세한 조업규칙을 만들어 어장을 관리하는 터키의 어촌,방목장을 함께 쓰는 스위스의 목장지대,농사용 관개시설을 공유하는 스페인과 필리핀의 마을 등 수백 년에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유자원을 잘 관리해온 공동체들이 발전시켜온 정교한 제도적 장치들도 소개한다.

    터키 알라니아 어장의 경우 100여명의 어민들이 여러 종류의 어망을 사용하면서 개인별로 두세 척의 어선을 가지고 고기를 잡는다. 어민의 절반은 지역 생산자조합에 소속돼 있다. 그런데 1970년대 이 어장에서는 어민들의 무절제한 이용으로 어민 간의 갈등과 폭력,경쟁에 따른 조업 비용 증가로 위기를 맞았다. 이로부터 10여년의 시행착오 끝에 어민들은 매년 9월 조업할 수 있는 어민의 명단을 작성하고 정교한 규칙 체계를 마련해 문제를 해결했다.

    저자는 "공유재 문제에 대해 하나의 정책 처방만 고집하는 분석가들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에 거의 주목하지 않으며 현실을 도식화해 만든 정책은 해롭다"고 지적한다.

    그는 "국가나 시장이라는 해결책이 종종 위험한 것은 그런 해결책을 외부로부터 강요하려는 사람들이 문제의 구체적인 성격을 분석하지 않고 만병통치약과 같은 정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이론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출발하는 실질적인 해법을 보여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영하 60도, 사체로 벽 쌓고 버텼다…엘리트 교수의 '미친 짓'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927년 겨울, 해발 4600m의 티베트고원. 끝없이 펼쳐진 회색 하늘 아래 칼날 같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밤이면 영하 60도까지 기온이 곤두박질치는 이곳. 산소가 희박해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죽음의 땅’ 한복판에 기괴한 벽이 세워졌습니다. 그 벽은 벽돌이 아니라, 얼어 죽은 낙타와 야크의 사체로 이뤄져 있었습니다.그 벽 안쪽에는 티베트 원정대의 초라한 텐트가 있었습니다. 여름용 텐트의 얇은 천 너머 스며든 한기는 배낭 속 술병을 얼려서 터뜨렸고, 태엽 시계의 태엽을 망가뜨렸습니다. 원정대원 다섯 명, 동물 90여마리가 이미 추위로 숨을 거둔 상황. 바람을 막기 위해 원정대는 어쩔 수 없이 동물의 사체로 텐트 주위에 방풍벽을 세워야 했습니다. 텐트 안의 사람들은 한데 모여 말없이 떨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이 비극 속에서도 원정대 대장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습니다. 아침마다 그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눈 덮인 히말라야의 봉우리, 척박한 고원의 빛깔,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이상적인 세계. 그림 속 마치 환상처럼 짙은 파란색과 서늘한 보라색은 극한의 추위와 희박한 공기, 고산지대의 직사광선이 만들어낸 사실적인 색채였습니다.원정대장의 이름은 니콜라스 레리히(1874~1947). 세계적인 화가이자 탐험가, 고고학자. 인기 요가 수련법인 아그니 요가의 창시자이자 미국 부통령이 ‘나의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고, 훗날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요. 코끝 시린 겨울을 맞아, 차가운 공기와 눈을 누구보다도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한 레리히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화가가 나라를

    2. 2

      루이 비통 트렁크에 로봇과 망치질…171년 역사와 혁신 공존하는 이곳

      층층이 쌓을 수 있는 트렁크로 여행의 역사를 새로 써온 루이 비통이 서울 한복판에 또 한번 혁신을 선보인다.서울 중구 신세계 백화점 본점 더 리저브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 매장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을 통해서다. 루이 비통은 지난 달 29일 제품과 문화 활동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열었다. 상하이와 방콕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문을 열었고, 더 리저브 6개 층에 걸쳐 운영된다. 모든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에르메스, 까르띠에, 크롬하츠 등 다른 브랜드들과 공간을 분리해 매장으로 운영하고, 4층부터 6층까지 전시 공간과 기프트&홈·카페·초콜릿 숍, 레스토랑으로 방문객과 만난다. 여행의 부름에 응답한 루이 비통4층부터 6층까지 총 세 개 층의 공간은  세 개 층에 걸쳐 전개되는 시노그라피(scenography·공간을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만드는 디자인)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의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와 그가 핵심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네덜란드 기반의 건축 그룹 OMA(Shohei Shigematsu-OMA)가 담당했다. 쇼헤이는 지난 7월 막을 내린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서울 전시의 공간 연출을 책임지는 등 럭셔리 브랜드가 사랑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그 역사의 경험은 1층 매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 비통의 가방 모델 부아뜨 샤포(Boîte Chapeau)로 둘러 싸인 터널형의 통로가 방문객을 반긴다. 17~19세기 유럽에서 모자는 귀족들에게 중요한 사치품이었다. 모자가 크거나 화려할수록 부와 신분을 상징한 상징한만큼, 모자가 구겨지거나 훼손되지 않게 지니는 것이 중요했다. 19세

    3. 3

      "정답 없어 매력적"…최재림·이승주가 말하는 '타지마할의 근위병'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운 쇼 뮤지컬이 쏟아지고 있는 연말. 반찬 없이도 맛있는 국밥처럼 담백하고 든든한 연극 한 편이 무대 위에 올랐다. 끓이면 끓일수록 진한 국물이 우러나는 맛이랄까.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이야기다.인도계 미국 극작가 라지브 조지프의 희곡을 토대로 만든 이 연극은 2017년 초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만날 수 없었다. 많은 관객의 기다림에 부응하듯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에는 이름만 들어도 든든해지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휴마윤 역의 최재림·백석광, 바불 역의 이승주·박은석 배우다. '햄릿', '헤다 가블러'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캐릭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연극계 대표 배우 이승주(44)와 '재림신'으로 누비던 뮤지컬 무대를 잠시 떠나 연극에 다시 도전하는 최재림 배우(40)를 최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났다.눈빛과 호흡으로 채우는 2인극 1648년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이승주 배우의 표현대로 "한 편의 아름다운 잔혹동화" 같다. 두 주인공인 '휴마윤'과 '바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인 '타지마할'을 등지고 새벽 보초를 서는 황실 말단 근위병. 이들은 "타지마할만큼 아름다운 것은 앞으로 영원히 만들 수 없다"는 황제의 명에 따라 타지마할을 짓는 데 참여한 2만 명의 손을 직접 자른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황제까지 죽일 기세인 바불과 그를 말리는 친구 휴마윤 사이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는다.무대에는 타지마할을 나타내는 어떠한 장치도 없이 오로지 두 배우의 대사로만 채워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