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제조업체 간 대충돌의 전주곡인가,가격파괴 과정에서의 일시 혼선인가.

지난 7일부터 이마트의 12개 생필품 가격인하로 촉발된 대형마트 간 '가격전쟁'이 이제는 제조업체와의 충돌로 번지고 있다. 과도한 가격인하에 대해 제조업체들이 반발하면서 CJ햇반,해태 고향만두,오리온 초코파이 등 주요 품목의 납품이 일시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은 10여년 전 까르푸와 월마트가 국내에 진출할 당시 유통업체들의 저가 경쟁으로 제조업체와 첨예한 마찰을 빚은 데 이은 2차 제조-유통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등 브랜드는 마음대로 안 된다

이마트의 가격인하 품목 중 납품이 일시 중단된 상품은 한결같이 품목별 1위 브랜드들이다. 따라서 대형마트들은 PB(자체상표) 상품을 만드는 점유율 2위 이하 업체들에 가격을 좌지우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과는 딴판인 양상이다.

CJ제일제당은 이미 지난 12일부터 행사제품인 '햇반 3+1'을 이마트 측이 발주해도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홈플러스까지 10원 차이를 두고 인하 경쟁을 벌이자 CJ 측은 지난 15일 마트 3사에 "당초 인하 가격(2980원)보다 가격을 더 내리면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CJ그룹에서 분리된 생활용품업체 CJ라이온도 지난 15일께 마트 3사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통보한 뒤 현재까지 납품하지 않고 있다. 해태제과는 이마트 가격인하 상품인 용량 1228g짜리 '고향만두'(3950원)의 공급을 끊었다. 대신 1440g짜리 제품을 4630원에 납품하고 있다. 오리온의 경우 마트 측과 가격 갈등으로 공급을 일시 중단했다가 21일부터 공급을 재개할 예정이다.

◆"마트에서만 파는 게 아니다"

제조업체들이 '슈퍼 갑(甲)'으로 불리는 대형마트와 신경전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전국에 30만개가 넘는 동네 슈퍼 등 일반 소매점의 불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A사 관계자는 "전체 매출에서 소매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고,소매점 쪽의 영업이익도 대형마트에 비해 훨씬 높다"며 "마트 간 가격전쟁으로 고객을 더 빼앗기고 있는 동네 슈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제조사가 박리다매 판매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대로는 한 달을 버티기가 힘들다는 데 업계가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마트는 현재의 갈등이 '제조업체는 생산,유통업체는 판매'라는 선진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가격파괴를 통해 정부와 소비자에게 물가안정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어 당장은 손해여도 전체적인 손익계산서는 '남는 장사'라는 속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경쟁업체들은 다소 회의적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금은 이마트에 맞서 '이에는 이'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출혈경쟁이 장기간 유지되긴 어렵다"며 "이마트가 가격인하 정책을 포기하면 우리 역시 대응을 멈추고 정상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의 최종 타깃은 신라면 · 참이슬

업계에선 가격 파괴에 이은 공급 중단 사태가 대형마트와 1위 제조업체 간의 힘겨루기라고 보고 있다. 대형마트의 매출이 정체 또는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CJ제일제당,농심,진로 등 대형 제조사들을 길들이지 않고선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형마트들은 지난해 온라인몰과 SSM(기업형 슈퍼마켓)으로 고객을 빼앗기면서 매출이 1.2% 감소했다.

실제로 이마트는 지난주 가격 인하 품목에 생필품의 최고 브랜드 파워를 가진 농심 '신라면'을 포함시키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가격 민감도가 높은 상품의 가격을 내려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가격파괴가) 1등 제조사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제조사와 협의를 통해 물량 공급을 지속하는 한편 설 연휴 뒤에는 20~30개 품목을 추가 인하하고, 현재로선 물량 확보가 어렵지만 최종적으로 농심 '신라면'과 진로 '참이슬' 가격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