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의 세계경제 전망은 암흑이었다. 2008년 가을 '리먼 파산 쇼크' 이후 '100년 만의 위기''세계 대공황 재발' 등 흉흉한 말들이 떠도는 가운데 세계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세계 각국이 재정 · 금융정책을 총동원해 안간힘을 쓴 결과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 경제전망을 낙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데다,그나마 재정확대 등 정책효과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의 가와이 마사히로(河合正弘) 소장(63)도 세계 경제를 보수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도쿄 시내 가스미가세키빌딩에 있는 ADBI에서 그를 만나 2010년 세계 경제전망과 아시아 국가들의 대처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지난해엔 선진국 경제성장률이 -3.4%(IMF 추정치)를 기록하는 등 세계 주요국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다. 각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해 최근 경기는 회복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재정확대 효과가 새해에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아직 소비와 투자 등 민간부문이 강력히 회복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재정 효과가 사라지면 경기가 다시 하강할 수 있다. 설령 더블딥에 빠지지 않더라도 회복력이 크게 떨어질 공산이 크다. "

▶세계 경제가 언제쯤 본격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나.

"세계 경제가 본격 회복하려면 미국과 유럽 경제가 실질적 성장 궤도를 되찾아야 한다. 재정정책 없이도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3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일본의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미국은 부동산과 주식 등 가계의 자산가치가 급감해 개인들이 소비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소비 위축이 언제쯤 풀릴지는 예측불허다. "

▶한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아시아국의 새해 경제전망은 .

"중국은 새해에도 8~9%의 고속 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다만 이것도 재정정책 효과가 크기 때문에 본격적 성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어쨌든 중국의 고속 성장은 한국과 같은 주변국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다른 주요국과 달리 플러스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빠르게 회복한 것도 중국 덕분이다.

일본은 지난해 -5% 정도의 큰 폭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올해는 성장률이 1.7% 정도까지 회복하겠만 역시 실질적 성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정확대 효과가 크다. 민간 부문의 회복력이 약해 새해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 "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대의 성장을 달성했다. 고속 성장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나.

"중국이 경제정책을 잘 쓰면 고속 성장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이나 과잉 투자 등이 염려된다. 이걸 잘 관리해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의 재정정책은 대부분 투자에 집중돼 있다. 경기부양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불필요한 투자에 돈이 흘러갈 소지도 있다.

이 경우 향후 불량 자산이 돼서 경제위기의 뇌관이 된다. 중국 정부는 은행의 대출 속도를 조절하고,투자 일변도가 아닌 가계소비 쪽으로 돈이 흘러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

▶금융위기 이후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기축통화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장기적으론 새로운 기축통화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당장 다른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로선 달러의 대체 통화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유로 정도다. 그러나 유로는 유럽과 주변국 정도에서만 쓰인다. 이게 아시아나 미국으로까지 확대돼 사용되는 건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앞으로 유로와 아시아통화 등 복수의 기축통화가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달러 금융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만한 통화를 찾긴 어렵다. "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동아시아 공통통화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상당히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다. 공통통화를 만들려면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동아시아 주요국이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시스템과 경제발전 정도가 너무 달라 경제공동체가 되긴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중국과 아세안 경제가 더 발전해 경제 · 금융시스템이 한국이나 일본과 유사해지면 경제공동체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몇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통통화를 만들기 위해 각국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

▶지리 · 문화적으로 가까운 유럽도 유로를 탄생시키는 데 50년 이상이 걸렸다.

"유럽이 1950년대부터 경제공동체 논의를 시작해 2002년 유로가 통용되기까지 50년 이상이 걸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공통통화를 만들 때 꼭 그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순 없다. 최근엔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모든 경제 프로세스의 속도가 과거에 비해 무척 빨라졌다. 유럽처럼 동질적인 나라들이라면 20년 정도면 될 것이다. 이질적인 국가들이더라도 50년까지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동아시아 공통통화를 만들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유럽은 유로를 만들기까지 FTA를 통한 경제공동체뿐만 아니라 석탄제공 공동체, 원자력공동체 등 모두 3가지의 공동체를 형성해 긴밀히 협력해왔다. 동아시아도 경제공동체뿐아니라 환경 · 에너지 관련 공동체, IT(정보기술)와 같은 인프라 공동체 등을 만들어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 실질적 협력을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통화가 필요해지고 동아시아 공동체가 가시화될 수 있다. "

▶공통통화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동아시아공동체 아닌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미국의 견제와 중국 일본 등의 주도권 다툼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동아시아공동체는 결국 '아세안+한 · 중 · 일'이 중심이 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일본 중국 등과 같은 큰 나라가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니라 아세안이 주축이 돼야 한다. 아세안을 중심에 놓고, 한 · 중 · 일은 주변에서 합류하는 형태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이상적이다. 아세안은 이미 2015년까지 아세안공동체를 만들 예정이다.

동아시아공동체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참가하더라도 역시 주변에서 아세안을 떠받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래야 중국과 일본 간의 주도권 다툼 등을 피할 수 있다. "

▶아세안은 한 · 중 · 일에 비해 경제규모가 작다. 현실적으론 한 · 중 · 일이 동아시아공동체의 중심이 되지 않겠나.

"한 · 중 · 일 3국은 아직 FTA도 맺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인도 호주 등도 각각 아세안과는 FTA를 맺고 있다. 아세안이 동아시아 FTA의 허브가 돼 있다. 이런 아세안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세안을 가운데 놓고 동심원에 주변국들이 자리 잡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미국 유럽의 경우는 동아시아공동체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이 동아시아공동체와 FTA로 연결되는 구조를 짜는 게 좋다. "

▶금융위기에 아시아 각국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시아 내부적으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아세안+한 · 중 · 일 간 통화교환협정)를 활용하는 게 최선이다. 현재는 양자협정 형태이지만 올해부터는 다자간 협정으로 바뀐다. 2008년 위기 때 한국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를 사용하려면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현재 IMF와 연계가 강하다. 이를 좀더 풀고, 자체 사무국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아시아 역내 위기 방화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

▶한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에서 적정한 외환보유액은 얼마 정도인가.

"한국은 최근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 번번이 외환위기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으려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은 너무 많이 쌓아도 유지 비용이 커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와 같은 다자간 통화교환협정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면서 자체 외환보유액은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현명하다. "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가와이 소장은…
동아시아 경제 탁월한 식견


가와이 마사히로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 소장은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일본의 대표적 국제경제학자다. 1947년생으로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딴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과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도쿄대 교수,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치면서 일관되게 연구해온 것이 동아시아 경제협력과 통합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도 모두 동아시아 경제에 집중돼 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는 2005년부터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총재 특별고문 겸 지역경제통합실장에 초빙됐고, 2007년부터는 ADBI 소장을 맡고 있다. ADBI는 1997년 일본 정부가 출연해 설립한 ADB의 싱크탱크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책 지원과 동아시아 공동체 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다.

가와이 소장은 최근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새로운 국제 재정질서(1996년) △동아시아의 환율체제(2004년) △동아시아를 향한 정책일관성:OECD국가를 위한 성장도전(2005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