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어린이와 순수한 공포 사이에 묘한 접점이 있는 걸까. 최근 출간된 공포소설 중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미우라 시온의 《검은 빛》(은행나무)은 자연의 폭력과 인간의 폭력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폭력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미하마 섬에는 조숙한 연인 사이인 중학생 노부유키와 미카,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리는 소년 다스쿠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산속의 신사에서 노부유키와 미카가 밀회를 즐기는 사이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고,어린 연인들과 노부유키를 따라온 다스쿠 등 일부만이 살아남는다. 그 와중에 노부유키는 미카를 강간하려는 듯한 외지인을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다. 비밀을 마음 깊숙하게 묻은 뒤 아이들은 어른이 됐다. 하지만 폭력이 남긴 상처에서 좀처럼 해방될 수 없다. 작가는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리려다 다시 폭력의 구렁으로 빠져드는 인간군상을 담담한 필체로 보여준다.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 《13번째 인격》(창해)는 대지진이라는 참사를 배경으로 다중인격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6000명 이상이 사망한 1995년 한신 대지진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유카리는 16세 소녀 치히로를 만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닌 유카리는 금방 치히로가 다중인격자란 사실을 눈치챈다. 유년기에 사고로 부모가 사망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성장하면서 숙부 부부에게 학대 받는 등 어린 나이에 굴곡많은 인생을 살아온 치히로는 인격 분열의 고통을 견뎌왔다. 그런데 치히로의 13번째 인격 '이소라'에게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고 느낀 유카리는 추적 끝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다중인격이라는 심리학적 소재에 임사체험,유체이탈 등 오컬트적 요소를 덧붙인 소설은 오싹하고 흡입력이 있다.

독일 판타지 소설가 볼프강 홀바인 부부의 《써틴》(예담)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열세살이 되는 생일을 13일 앞둔 소녀 써틴은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를 찾아 독일로 향하는 길에 온갖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 할아버지가 숨기고 있던 오랜 비밀을 알게 된 후 할아버지의 집에 갇혀 있는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써틴의 모험담은 계속된다. 성장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호러 판타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