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우리 회사가 C등급을 받았다고?"D 건설사 K회장은 지난달 20일 채권단으로부터 워크아웃에 해당되는 C등급을 받자 당장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며칠 뒤 이모 부회장 등 임원 5명이 옷을 벗었다. 남은 임원 13명도 좌불안석이다. 채권단의 본격 정밀실사를 거쳐 오는 4월 말까지 회생여부가 최종확정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6개였던 사업부를 4개로 통폐합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해 췌장염으로 병원신세를 졌던 K회장은 직접 경영에 복귀,밤낮없이 구조조정을 챙기고 있다.

주택건설업계에 피말리는 생존경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경남기업을 마지막으로 10개 건설사(풍림 이수 우림 월드 동문 삼능건설 경남기업 삼호 롯데기공 신일건업)의 워크아웃이 개시되고 대동종합건설은 법정관리 신청,대주건설은 퇴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워크아웃 개시에 들어간 회사든,B등급을 받은 건설사든 지금부터 진짜 생존전쟁이 벌어진다고 봐야죠.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경쟁사 몇 곳은 제쳐야 살아남을 걸요. "

A건설사의 P사장은 "외환위기 이후에는 건설사들이 자구노력보다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대책에 힘입어 'V'자형으로 살아났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정부의 지원과 건설사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U자형이라도 회복될지 의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하루하루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있다는 워크아웃 대상 B건설사의 L 전무는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자르고,줄이고,파는 자구노력"이라고 말했다.

동문건설에선 임직원 봉급을 '10% 반납,15% 유보' 형식으로 25% 줄였다. 전체 인력 30%씩을 4개월씩 돌아가며 무급휴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 직원은 "휴가를 떠나면서도 잘리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전했다. 월드건설의 경우 작년 10월부터 실시한 연봉삭감(임원 15%,차 · 부장 10% 등) 폭을 확대해야 할 처지라 사무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단돈 몇십만원도 아쉽다. 경남기업은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사무실 PC 모니터와 전등을 소등해 전기료를 매달 90만원씩 절약하고 있다. 우림건설은 모든 컬러 프린터기를 다음 주에 흑백 프린터기로 바꾸기로 했다. 출력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의 성패가 달린 자산매각 노력도 눈물겹다. 월드건설의 관계자는 "갖고 있는 공공택지를 팔기 위해 매수희망 업체의 과장급들을 찾아다니며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있다"고 전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수주경쟁에서 경쟁사에 밀릴 생각까지 하면 밤잠이 안온다"며 "워크아웃 개시에 들어간 회사들은 주택전문업체들이어서 정부의 토목공사 확대의 혜택도 거의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워크아웃 개시를 면한 B등급 건설사들도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등급판정 이후 3개월 안에 운전자금을 추가로 대출 받으면 C등급으로 강등될 수 있어 자산매각을 통한 자금조달에 목을 매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회사 오너가 설 연휴에도 큰 손들을 만나 자산매각 협상을 벌였다"며 "회사 밖에서 결재받는 경우도 잦다"고 전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