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일본이 또 독도 도발을 감행한 시점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를 리앙쿠르 암초로 바꾸려다 유보했다. 그런데 왜 독도도,일본이 주장하는 다케시마(竹島)도 아닌 리앙쿠르 암초일까. 1849년 여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동해에서 고래잡이를 하다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암초라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독도를 발견하고 일방적으로 이름을 붙인 사례는 또 있다. 1854년 러시아 푸탸틴 함대의 올리부차호는 캄차카로 향하다 독도를 발견하고 '메넬라이(Menelai)'라는 이름을 붙였고,1855년 영국 함선 호네트(Hornet)호의 함장 포사이스는 독도를 측량한 뒤 '호네트 섬'이라고 명명했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는 개항 전인 16세기부터 1860년대 초까지 한반도 해안에 '낯선 배'를 타고 나타났던 이방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영국의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와 측량선 사마랑호,프랑스 군함 세실호,러시아 군함 팔라다호와 곤차로프,미국 포경선 투 브러더스호 등 조선에 접근했던 수많은 서양 배들의 사례를 당시 조선 지방관들이 남긴 보고서와 서양인들의 일기,여행기,항해일지,편지,견문보고서 등을 토대로 정밀하게 복원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중국과 일본이 세계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16세기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6세기 말에는 조선의 관찬 사서에 서양인이 등장했고 18세기 말부터는 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인들의 배가 조선 해역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식량과 물 등을 찾아 잠시 상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탐험과 측량,통상 요구,선교,보복 원정 등으로 찾아오는 목적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상한 모양의 배(異樣船)'에 대해 조선왕조는 문을 닫아 건 채 접촉을 피했다. 지방관들이 남긴 보고서에는 이양선의 규모나 외국인의 복장,행동 등이 꼼꼼하게 묘사돼 있지만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은 이들의 정체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는 것.

이에 비해 백성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속에서도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방인들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물과 땔감을 주고 옷감을 만져보기도 했다. 혹은 담배를 권하거나 낯선 나라 말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접촉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당시 조선은 법률이 규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들과 이방인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양선이 해안에 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허용했으나 그 배가 뭍에 오르거나 바다에서 조선인들과 만날 경우 배를 몰수하고 선원을 투옥하는 등 강력히 단속했다는 것.1832년 7월 로드 애머스트호를 타고 왔던 선교사 귀츨라프는 "조선인들이 이방인을 적대적으로 대한 것은 정부가 심어놓은 철의 규율 때문이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래서 저자는 '바다를 건너 침투해 온' 근대의 기원을 왕궁과 관청에 틀어박힌 지배층과 관념의 세계에 사로집힌 양반지식층보다 생동하는 현실 속에서 맞이했던 민중과 말단 관리들을 통해 새롭게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