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떠나보낸 후…천경자의 눈물, 아프리카 초원을 적셨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천경자 10주기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展
채색화 작품 80여점 한자리에
삽화·편지 등 관련자료도 전시
첫 장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이별의 아픔 고스란히 녹인 작품
본인 모델로 그린 자화상도 가득
서울미술관서 내년 1월25일까지
채색화 작품 80여점 한자리에
삽화·편지 등 관련자료도 전시
첫 장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이별의 아픔 고스란히 녹인 작품
본인 모델로 그린 자화상도 가득
서울미술관서 내년 1월25일까지
1991년 벌어진 ‘미인도 위작 사건’이 모든 걸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두고 천 화백은 “내 그림이 아니다”고 했다. 미술관은 진품이라며 맞섰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사법부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린 뒤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천 화백은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관련 논쟁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천 화백을 언급하거나 재조명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탓에 그는 점점 대중에게 잊혀갔다.
◇10주기 맞아 본격 재조명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채색화만 해도 80여 점에 달한다. 화가 업적에 집중하기 위해 논란의 중심인 ‘미인도’는 포함하지 않았다. 150여 점의 삽화와 책 표지 등에 그린 표지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사진 등 관련 자료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의 중심은 천경자의 전성기로 꼽히는 1960~1970년대 작품이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연인이던 김남중과 1973년 헤어진 것이다. 첫 번째 남편을 전쟁통에 잃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던 천경자는 전쟁 후 김남중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지만, 사실 그는 유부남이었다. 오랫동안 고통받던 천경자는 마침내 그와 결별한 뒤 삶의 새로운 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화풍을 바꿨고,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으며, 홍익대 미대 교수를 그만둔 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게 1974년이다.
전시는 이 시기 그린 작품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로 문을 연다. 작가가 1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아프리카 초원에 나체의 여인이 코끼리 위에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안 이사장은 “여성의 모습은 천 화백 그 자체”라며 “천 화백이 1년 내내 이 그림 작업에만 몰두했는데, 그동안 많이 울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전시장에 즐비한 천경자의 여성 초상화 작품들을 보면 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천경자의 여성 초상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고(孤)’를 비롯한 대부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가족이나 주변인이 모델인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모델이다.
이 밖에도 다채로운 작품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에 종군 화가로 참여해 그린 기록, 병풍에 그린 금붕어와 개구리 그림 등 천경자 작품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