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우리민족은 춤과 음악과 유희를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품성은 법률문제를 대처함에 있어서는 적당하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법률문제를 잘 처리함에 있어서는 ‘잘 되겠지’ 라는 낙관적인 품성보다는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라는 비관적인 품성을 가진 사람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무턱대고 사람을 그대로 믿지 말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어떤 대비를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의심하는 자세가 법률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며칠 전에 전화로 상담한 케이스인데, 의뢰인은 서울 목동에 아파트 1채를 소유하면서 임대하고 있다가, 임대기간 만기를 즈음해서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으로, 세입자의 처에게 전화를 걸어 제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임대차계약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세입자의 처는 별다른 이의없이 ‘아파트가 팔리는대로 바로 집을 비워주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그 의뢰인은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게 되었고, 약 한 달 후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바로 세입자에게 통보했는데, 세입자는 그 전과는 달리 태도를 돌변해서 ‘ 자신의 처로부터는 계약해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따라서 계약기간이 묵시적으로 연장된만큼 2년 동안 더 거주할 수 있다’며, 넌지시 ‘이사비용을 5백만원 주면 협조해 주겠다’는 취지로 운을 떼더라는 것이다. 전화통화를 한 세입자의 처 역시 그런 취지의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더라는 것이다. 얼마남지 않은 잔금기일까지 아파트 매수인에게 아파트를 비워줘야 할 법적인 책임이 있는 그 의뢰인으로서는 돌변한 임차인의 태도에 너무 황당하고 또 걱정되는 마음에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이 케이스를 법적으로 분석해 보자. 아파트를 매도한 의뢰인은 매수인에게 약속한 잔금기일까지 아파트에 대한 점유를 이전할, 즉 명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만약, 소유권이전등기만 넘겨주고 명도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매수인에 대해서 계약위반을 하는 것이다. 비록 의뢰인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입자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이긴 하지만, 매수인과의 관계에서는 매도인측의 위반인 셈이다. 따라서, 매수인에 대해서는 계약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될 의무가 있게 되고, 만약 매매계약에 계약금상당의 위약금약정이 있다면 계약금 배액을 지급해야 될 처지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매매계약이 종결되고 나면 부득이 세입자를 상대로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청구해야 한다. 이 재판에서는 세입자의 계약위반사실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인데, 계약위반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원고인 임대인에게 있다. 문제는, 전화로 고지한 것이라 입증이 곤란하다는 점, 세입자가 아닌 그의 처에게 전달한 점 등의 이유로 임대인이 당연히 승소한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세입자를 상대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매수인에게 손해배상한 금액을 세입자에게 받게되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이 되는 셈이다. 다시말하면, 최선의 결과가 바로 손해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입증이 여의치못할 때는 적지않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법적으로 올바른 처신은, 전화로만 전달되었기 때문에 세입자가 그런 대화내용을 부인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서 혹시 세입자가 이를 부인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입장에서 서로 정확하게 소통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인이 매매사실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을 뿐이어서, 법에서 정하는 기간 내에 계약해지 의사표시가 없어서 계약이 갱신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이런 세입자만을 비양심적이라고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러한 사실을 경험하지 못한 재판부에게 일방적으로 임대인의 주장만을 근거로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위와 같은 케이스에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서 입증의 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묵시적 갱신이 되지 않도록 명확하게 계약해지통보를 서면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세입자와의 대화를 녹음하는 등의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방어운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률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르는 적절한 방어를 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법률문제에 있어서 ‘낙천적이다’라는 것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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