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칼럼] 573돌 한글날, 순우리말과 말모이-외래어와 신조어
한글날, 아름다운 순우리말과 말모이

573돌을 맞는 한글날인 만큼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우리 순우리말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전에 ‘말모이’라는 영화를 봤다. 일제강점기 감시와 탄압속에서 목숨을 걸고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내용이다. 은어부터 외래어, 속어까지 남발하는 요즘에 우리말의 소중함을 새삼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순우리말을 익혀보면 어떨까싶다.

어렵게 지켜낸 순우리말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는 것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순우리말들이 있다. 여우별, 씨밀레, 마루, 아라, 볼우물 등이다. 짐작이 가는 단어도 있을 것이고 생소한 단어들도 있을 것이다. 여우별은 ‘ 궂은 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별’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씨밀레는 ‘ 영원한 친구’ 의 우리말이다. 마루는 ‘하늘’의 우리말이며 아라는 ‘바다’의 우리말이다.

‘볼우물’은 ‘보조개’의 순우리말

볼우물은 ‘보조개’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볼우물’이 주는 의미는 생각할수록 미소를 짓게 된다. 볼에 우물처럼 살짝 패인 보조개를 곧바로 연상하게 되기 때문에 참 잘어울리는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가로수길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예쁜 타니 사세요!’‘타니’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귀걸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순우리말을 배워가는 재미

얼마 전 임원부부동반 교육을 했을 때도 새로운 순우리말을 우연히 접했다. 교육을 거의 마무리하면서 임원부부들이 돌아가면서 교육받은 소감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맨 앞줄에서 교육 내내 열정적으로 함께 해주었던 임원부부 순서가 되자 이렇게 얘기했다. “저희 가시버시는 이번 교육을 통해 매너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가시버시’의 의미를 물어보니, 아내와 남편 즉, 부부(夫婦)’를 낮추어 부르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교육하면서도 학습자들을 통해 아름다운 순우리말들을 오히려 배운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글구멍이 트인 날

오늘 여러 가지 순우리말들을 알고 익혔으니‘글구멍이 트인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구멍은 ‘글을 잘 이해하는 지혜를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다. 글이 들어가는 머리의 구멍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더 쉬울 듯싶다. 공부가 잘 안될때는 ‘글구멍이 막혀서 집중이 안된다.‘라고 쓰일 수 있다.


밥을 표현하는 다양한 우리말

임금이 먹는 밥인 ‘수라’, 양반이나 윗사람이 먹는 밥인 ‘진지’그리고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먹는 밥인 ‘눈칫밥’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또 소나기가 오는 것처럼 갑자기 많이 먹는 ‘소나기밥’도 많이 듣고 많이 쓴다. 하지만 생소한 밥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국이나 물이 없이 먹는 밥을 ‘강다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반찬 없이 먹는 밥을 ‘매나니’라고 하며 밤늦게 먹는 밥 즉, 야식을 ‘밤밥’이라고 한다.


고두밥과 감투갑

그릇 위까지 수북하게 담은 밥을 의미하는 ‘감투밥’이라는 것도 이번 기회에 기억해두자. ‘고봉밥’으로도 쓰인다. 밥을 그릇에 어떻게 담는지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양하다. 예전에 쌀이 아주 귀했을 때는 밑에는 다른 밥을 담고 그 위에 쌀밥을 수북이 담은 밥을 도시락으로 싸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렇게 층층이 다른 밥을 ‘고깔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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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가온누리’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의미의 ‘그린나래’라는 말도 참 예쁘다. 연인의 순수 우리말인 ‘그린내’도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손꼽히는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아오르다의 순수 우리말인 ‘나르샤’와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의미의 ‘단미’도 한글날을 맞이해서 활용해 보면 좋을 순수 우리말이다.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갸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한 날이다. 우리나라 고유 문자인 한글의 연구·보급을 장려하기 위하여 정한 날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한지 480주년이 된 해를 맞이하여 기념식을 갖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느끼는 한글날이 되면 좋겠다.

창제자와 창제연도가 명확한 유일한 글, 한글

세상에는 참 많은 언어가 존재하고 있지만 한글처럼 창제자와 창제연도가 명확하게 기록된 사례는 거의 없다. 국제하계언어학연구소에 의하면 세계 곳곳에 현존하는 언어가 7천 개 이상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언어를 글자로 표현한 문자의 방식 또한 그만큼 다양하다.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 따서 그려 넣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가 있다. 그리고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라틴문자부터 중국의 한자, 아랍문자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와 다양한 글자들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낸 창제자와 창제 연도가 명확하게 기록된 사례는 한글이 유일하다.

평민이 쓰는 글자, 언문

한글은 본래 이름은 언문이고 ‘훈민정음’ 또는 ‘정음’으로 불리었다. 한글의 본래 이름은 ‘언문’이었다. 평민이 쓰는 글자라는 뜻이다. 조선왕조 세종실록 중 1443년의 맨 마지막 기록에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다. 3년이 거의 지난 후에야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책이 완성됐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글의 과학성에 놀라는 세계 언어학자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훈민정음은 글자의 명칭이면서 책의 제목이다. 훈민정음은 이후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불렀다가 1910년대에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나라글’과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글은 글자 모양이 입과 발음 모양을 본뜬 소리글자로서 그 독창성과 과학성에서 세계 최고의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유수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은 간단하면서도 논리적이며 고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며 한글의 과학성을 놀라워한다. 한글의 가치는 우리보다 세계에서 더 잘 알고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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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거듭되는 외래어나 신조어 남발에 대한 논란

얼마 전에 강의 중에 한 학습자가 질문을 했다. “혹시 보배 있는 분 계세요?”라고. 그 말을 듣고 다른 학습자가 건네는 ‘보조 배터리’를 보고 나는 그제야 ‘보배’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보배는 ‘보조배터리’의 줄임말로 쓰였던 것이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스터디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인 ‘스라밸’도 적지 않게 쓰이는 신조어 중 하나다. 이러한 신조어가 세대 간 단절을 야기하고 결국은 기성세대와의 소통을 막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신조어들이 언어의 진화라는 의견들

시대가 발전하고 세대가 바뀌면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언어는 늘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바로 ‘언어의 진화’적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글로벌시대인 지금 외래어의 사용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한글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순우리말을 이해하고 익히는 노력이 없는 무조건적인 외래어와 신조어가 남발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뿌리를 모르면 주변에 휘둘린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우리의 언어의 뿌리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아름다운 우리말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다보면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아름다운 한글의 매력에 더 빠져들 것이라 기대해본다.
[박영실칼럼] 573돌 한글날, 순우리말과 말모이-외래어와 신조어
박영실서비스파워아카데미 대표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부 초빙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