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유희”에서 벗어 나고 싶은 요즘이다.





1.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가끔 “목적과 목표를 혼동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목적은(Objectives)은 이유에 상응하는 표현이다. 목표(Goal)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범위 또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기업가가 사업을 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는 일이며, 이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올해는 200억 원의 매출과 25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려는 목표(Goal)를 정해 놓고 있다.



삶의 목적은 존재의 이유이며 “행복한 삶”이 목적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올해의 중요한 목표는 입사동기들처럼 승진하는 것이고, 기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고, 영어 TOEIC 700점에 도달하는 것일 수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유는 국위를 선양하고 국력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국가 브랜드가 높아진다. 그래서 10위권에 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8강 4강에 도전하는 게 목표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 가고, 오랫동안 그 회사에 근무하면서 좋은 경험을 쌓고 배운 후에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게 좋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목적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수능 점수의 목표치를 정해 놓고, 들어 가고 싶은 회사를 정해 놓고 거기에 걸 맞는 인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모으고 싶은 돈의 액수를 정해 놓는 게 목표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목적과 목표에 대한 구분이 애매할 때도 있다.





2.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결과만 중요시하면 안 된다고 한다. 과정도 중요하고 수단도 중요하다. 결과가 좀 부족하고 목표에 미달하더라도 성실한 태도와 도전적인 노력이 있었다면 용서 받을 수 있고 관대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물론 성과 없는 노력이 반복될 때에는 인정 받기 어려우며, 다른 측면에서 평가 받게 된다.



한 생명의 탄생은 축복 받아 마땅하지만, 죽음 또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수명을 다한 사람의 죽음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 탄생하여 존재할 수 있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자연의 원리는 깨지고 만다. 만물이 소생하고 소멸하는 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축복 받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평소 건강하고 뜻 깊은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너무 기뻐서 날뛰다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너무 슬퍼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한 덩어리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다. 무엇이 가쁨이고 무엇이 슬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뭐가 뭔지 모를 듯이 안개가 걷히는 듯하면서 침침한 생각에 머무는 현상을 이탈리아어로는 Sfumato라고 한다. 불확실성(Uncertainty)과 애매모호함(Ambiguity), 패러독스(Paradox)를 모두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린 지금 그래야 하는 시대, 급변하는 불확실성의 21세기를 살고 있다.







3.



요즘,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의사 전달을 잘못하여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날카로운 인상을 쓰면서 많은 국민들의 가슴이 멍들게 하는 지도자가 있고, 워낙 그런 말밖에 할 줄 몰라 말만 꺼내면 욕을 먹는 리더도 있다. 그래서 의사 소통능력이나 기술(Communication Skill)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느 회사에서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 간부사원들이 회의(Meeting)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고 회의 진행기법(Meeting Skill)에 관한 교육을 해 달라고 한다. 찾아 가서 몇 시간 특강을 해 주고 상담을 하지만 곧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어 본다.





과연 의사 소통(Communication)이 기술(Technical Skill)일까?



기법(Methodology)을 배우고 기술(Skill)을 익히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을까?



인간으로써의 본 바탕이 부족하고 본심이 올바르지 않은데, 좋은 어휘를 배우고, 아름다운 단어를 익힌다고 하여 그런 문장과 언어가 자유롭게 구사(驅使)될 수 있을까?



평소 생활에서 옳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한 지도자가 갑자기 회의를 소집하여 마음을 열고(Open Mind), 아주 친절하고 섬세한 태도(Kind and smart Attitude)로 그들 앞에 앉으면, 그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존경하고 따를 마음이 생길까?







4.



사람과의 만남은 모두 언어와 행동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각각일 수 없다. 밖으로 나타나는 언어와 태도는, 인간(Human Being)들간에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과정(Human Process)이며, 마음과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지도자의 언어는 말장난으로 끝날 수 없으며, 애들처럼 웃고 떠들거나 관객을 웃기는 유희(遊戱)일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언어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언어의 유희로 날을 지새는 리더들이 있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