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대기오염 노출되면 아기 비만 가능성 높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이스라엘이 지난 15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많은 나라가 마스크를 벗는 날을 고대하고 있을 만큼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덕에 개선된 대기오염이 다시 심해질 수 있다. 일상이 회복되면서 이동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는 것도 대기오염에 더 노출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임신부에게 대기오염이 미치는 영향이 더 나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임신부가 높은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아기가 출생 후 한 달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이후 비만과 합병증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환경 위생’ 6월 5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흡연 및 대기오염 등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임신부는 평균보다 적은 체중의 아이를 낳는 경향이 있다. 연구진은 작게 태어난 아기들은 평균 체중을 따라잡기 위해 마치 경주하듯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그 결과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증가한다고 밝혔다. 이런 경향은 청소년기의 비만, 당뇨, 심장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산모 123명을 분석했다. 123명 중 31명(25.2%)은 정상 체중, 48명(39%)은 과체중, 44명(35.8%)은 비만이었다. 연구진은 미국 환경보호청에서 산모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공기질 정보를 수집했다. 이 자료에는 미세먼지(PM 10)와 초미세먼지(PM 2.5), 자동차와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질소, 스모그의 주요 성분인 오존 등의 수치가 포함됐다. 태어난 아기의 몸무게와 키, 지방이 많이 분포한 부위 등도 주기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산모가 이산화질소에 많이 노출된 경우 아기의 체중과 총피하지방이 더 많이 증가했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역시 총피하지방량과 허리둘레에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후성유전학적인 변화를 꼽았다. DNA는 한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DNA에 일종의 표식이 붙으면 기능이 일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태어난 이후 DNA에 나타나는 변화를 후성유전학적 변화라고 한다.

연구진은 임신 중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된 산모의 태반에서 이런 표식의 변화가 발견됐다고 했다. 변화가 일어난 유전자는 비만 단백질로 알려진 ‘렙틴’의 정보를 지닌 유전자였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킨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태아의 지방량 증가를 불러왔다고 추정했다. 대기오염 물질이 태아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타냐 알데레테 볼더 콜로라도대 교수는 “특정 집단에서 비만율이 높은 것은 단순히 개인의 운동 부족, 과도한 칼로리 섭취 등에 따른 결과가 아닐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비만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 요인 중 하나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임신부에게 오존이 높은 날과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실외 운동을 줄이고, 가급적 자동차가 많은 도로는 피해 다닐 것을 권장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