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함은 생존 능력이다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현재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의 모습을 한 유일한 종이 아니었다는 학설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진 개념이 됐다. 수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외모와 습성이 비슷한 다른 종의 친척들과 지구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은 별로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탐험심으로 무장한 호모 에렉투스는 대륙에 걸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요즘으로 치면 부동산 재벌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메머드를 때려눕히는 신체 능력에다 지능까지 높은 소위 ‘엄친아’였다. 이 우월한 친척들에 비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다 할 강점이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만약 그 무렵에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종을 두고 내기를 벌였다면 사피엔스에게 돈을 걸 바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 드라마에 반전이 일어났음을 안다. 2023년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80억 명에 육박하지만,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은 0명이다. 더 강하지도, 더 총명하지도 못했던 사피엔스는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됐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공동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그 답을 ‘초강력 인지 능력’에서 찾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압도적인 인지 능력을 통해 수백, 수천 명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기껏해야 10~15명 단위의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척들을 제치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1대1로 붙으면 승산 없는 게임이라도 10대1, 100대1로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하며 탄생시킨 무기와 기술이 더해지면서 대세는 점차 사피엔스 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살아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조상들이 ‘초’강력한 인지 능력을 발휘해준 덕분이라는 뜻이다. 이 감사한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최소 2만5000년 전에 멸종했을 테고, 그랬다면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이 책은 ‘인지 능력’이라는 말을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 목록에는 친화력, 소통, 협력, 다정함 같은 말들이 포함돼 있다.

다정함의 힘은 시대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휘된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종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다정함의 영향력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늑대와 침팬지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보호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늑대는 사냥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졌고, 침팬지는 그 어떤 동물보다 지능이 높은데도 그렇다. 기후변화나 삼림 파괴 같은 원인들이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같은 시대, 같은 조건 아래서 오히려 번영을 누리는 종 역시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는 기본적으로 늑대와 같은 뿌리에서 진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냥 능력은 오히려 늑대보다 한참 떨어진다. 동물 중에서는 지능이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인간과 유전자가 99% 겹친다는 침팬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두 종과 달리 개는 멸종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다. 오늘날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반려인들은 가족 같은 개에게 더 나은 먹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바깥 환경이 점점 척박해지는데도 개라는 종의 개체수와 평균수명은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다.

애매한 힘과 지능을 지닌 주인공이 강한 라이벌들을 꺾고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 아닌가.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늑대나 침팬지와 비교했을 때 개가 지닌 강점은 바로 다정함이다. 단순히 개가 더 귀엽거나 사랑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개의 뛰어난 인지 능력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반복해서 증명됐다.

개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볼 줄 알고, 그 행동에 단순히 팔을 뻗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여러 벌의 그릇 중 한 곳에 먹이를 감춰 두고 찾아내는 실험에서, 개는 100% 인간이 가리키는 그릇을 선택했다. 상대의 행동에서 자신을 도와주려는 의도를 읽어내고 협업을 해낸 것이다. 반면 늑대와 침팬지는 수백 번 반복된 실험에서도 끝까지 손가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숫자를 계산하고 퍼즐을 맞출 정도로 지능이 높고 잘 훈련된 침팬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오랜 세월 개를 키우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듣는 방식으로 길들였다고. 하지만 저자들은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한때 늑대와 다를 바 없었던 야생의 개들이 어느 순간 다정한 방향으로 진화를 시작했고, 그 결과 인간을 움직여 자신들의 생존을 돕도록 만들었다고.

인간의 아기는 생후 4개월부터 본능적으로 부모님이 하는 손짓의 의미를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 수준은 당연히 개보다 훨씬 높다. 덕분에 우리는 말을 깨치기도 전에 좋은 간식을 고르거나 위험을 피하는 식으로 협업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인지 능력은 성인이 된 후에도 성공과 번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소통을 거부하고 배려에 인색한 사람은 잘나가다가도 공격의 표적이 되지만, 열린 태도로 이해심을 발휘하는 사람에게는 날이 갈수록 아군이 늘어난다.

배려는 지능이고 이해심은 능력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정한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다. 더 착해서가 아니라, 더 똑똑하기 때문에.

글·그림 서메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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