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마다 회계처리 기준이 다른 데다 최소한의 재무정보만 표시한 장부도 많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실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상장사들의 첫 번째 실적보고서를 받아 본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푸념이다.

IFRS발 착시 현상이 주식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동종 업종이나 같은 그룹사 내에서도 서로 다른 기준으로 회계처리를 해 투자자들의 기업 실적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장부작성에 기업의 재량이 많이 인정되는 점을 악용,필수적인 재무정보를 공개하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고의적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오류들도 다수 나타나고 있다. 금융당국과 업계가 합심해 이 같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IFRS 도입에 실적 착시

2년여 동안 주당 4000원대에서 횡보해 온 '심심한' 주식 KSS해운이 지난달 2일 장 초반부터 상한가로 치솟았다. 개장 직전 낸 공시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19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31% 급증했다는 사실을 전한 덕분이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82%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1위로 집계돼 갑작스레 '알짜 회사'로 부각됐다.

알고 보니 IFRS 도입에 따른 '착시'였다. 회사 선박을 팔아 얻은 145억원의 매각차익이 새로 도입된 IFRS 기준에 따라 영업이익에 더해진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영업외이익으로 잡혔을 금액이다. 이를 제외한 영업이익은 47억원으로 전년 동기(45억원)와 별 차이가 없다. 결국 KSS해운 주가는 다음날 7% 이상 급락하는 등 5일 만에 상승폭을 전부 반납했다.

현대상선은 KSS해운과 정반대의 경우다. 현대상선은 선박 1척을 장부가보다 287억원 싸게 매각,적자로 추락했다. 영업적자 규모는 240억원.손실이 영업외로 회계처리됐다면 오히려 47억원 흑자결산이 가능했다.

이처럼 IFRS는 1회성인 토지 건물 구축물 기계장치 선박 등의 유형자산 처분손익을 영업 쪽으로 분류하는 '낯선' 회계 처리로 투자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당연히 영업 외로 생각되는 잡손익 기부금 등은 대부분의 상장사가 영업손익으로 분류했다.


◆같은 업종이라도 회계처리 제각각

동종 업종 내에서의 상이한 회계처리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정유사의 재고자산 평가가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1조원이 넘는 1분기 영업이익을 내 '어닝 서프라이즈'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조1933억원의 영업이익 중 2000억원 이상은 재고자산평가법을 '후입선출법'에서 '가중평균법'으로 바꾼 덕택이었다. 후입선출법은 나중에 구입한 재고가 먼저 팔린다고 가정하고 매출원가를 계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가 높아질 때가 많아 후입선출법을 사용하면 보통 원가가 높게 인식돼 이익이 줄어든다.

이에 비해 가중평균법은 전체 재고의 평균을 원가로 정하기 때문에 물가상승분이 비용에 반영되지 않아 이익이 증가한다. 지난해부터 IFRS를 조기 도입한 경쟁사 GS칼텍스도 가중평균법을 채택해 작년 한 해 순이익이 2428억원 늘었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가중평균법으로 간 것과 달리 '선입선출법'을 채택해 실적 간 단순비교가 어려워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엔 외환 관련 손익을 다른 기준으로 처리했다.

◆무성의한 장부작성도 문제

재무제표를 만들어 내는 상장사들의 무성의도 도를 넘고 있다. 회사가 빌린 차입금의 명세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는 금융사별 차입금 내역과 이자까지 적시했지만,이제는 재량권이라는 미명 아래 차입금 전체 규모만 표시한 것이다. 기업이 감추면 투자자 입장에선 어디서 얼마나 높은 이자를 주고 자금을 조달하는지 알 수 없다.

토지,건축물,건설 중인 자산 등 유형자산의 세부항목을 기재하지 않은 사례 역시 수두룩하다. 감가상가비는 보통 유형자산 중에서 상각 대상자산만 분리한 뒤 상각방법과 자산의 내용연수를 파악해 추정하기 때문에 유형자산의 세부항목이 공개되지 않으면 이해가 힘들다.

심지어 종속회사가 없는 유가증권시장의 소형주 S사는 개별 재무제표를 내면서 연결실적이라고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은 "IFRS는 회계장부를 볼 줄 아는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는 유용한 측면이 있지만,대부분의 일반투자자에게는 무덤이 될 수 있다"며 "강제해서라도 기업들의 재무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시하도록 유도하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