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벌써 2년이 흘렀다. 1999년 첫 방송 이후 전 국민의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TV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는 시름시름 인기를 잃었다가 2020년 결국 막을 내렸다. 얼마 안 가서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문을 닫았다.

개콘과 웃찾사의 폐지 소식이 ‘사형선고’ 같았던 코미디언 세 명이 있었다. 인생을 걸고 매달렸던 무대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웃기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한가락 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유튜브가 눈에 들어왔다. 16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피식대학’의 탄생이었다.
○사형선고 같았던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
'개콘 시대' 끝났지만 160만명이 보는 '개그 유튜브' 시대 열다
KBS 공채 개그맨 정재형, SBS 공채 개그맨 이용주와 김민수는 프로그램이 끝나자 생활고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정말 살길이 없더라고요. 당장 내일 밥 먹을 생활비조차 없었죠.” 청춘 코미디언들이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소극장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였다. 하지만 그 자리조차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극장이 줄줄이 쓰러지면서다.

이들은 2020년 ‘피식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생활비 벌기. “우리 모두 태어나서 코미디언 말고는 다른 직업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사람들을 웃기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튜브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튜브도 만만치는 않았다. 개그 프로그램들이 폐지되자 코미디언들이 너도나도 유튜브로 몰려들었다. ‘피식대학’은 개그 유튜브의 홍수 속에 빛을 보지 못했다. 엇비슷한 콘텐츠로는 ‘밥값’도 벌지 못할 판이었다.

3인방은 콘셉트를 가다듬었다. 이용주는 “확실한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며 “유튜브에서 코미디 영상을 가장 많이 보는 20대와 30대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웃음의 의성어 ‘피식’에 대학이라는 말을 붙였다. 콘텐츠도 20·30이 공감할 만한 내용에 집중했다. 이들의 전략은 적중했다.
○‘막춤 아저씨’에게 힌트 얻은 ‘산악회’
'개콘 시대' 끝났지만 160만명이 보는 '개그 유튜브' 시대 열다
피식대학은 ‘05학번 이즈 백’이라는 콘텐츠로 ‘개그 유튜브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시리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구닥다리’다.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가로본능 폴더폰’을 사용하고 ‘미키마우스 MP3’를 들고나온다. 2005년 대학에 입학한 정재형은 “추억이라고 포장되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운 기억들을 누구나 갖고 있다”며 “그런 내용을 개그로 만들면 공감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15년 전 대학 다닐 때 내 모습 같아서 웃기고 창피하다’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옷을 강매당한 기억이 생각난다’처럼 공감을 표하는 내용이 많다.

자신감을 얻은 피식대학은 50·60세대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들이 산과 바다를 다니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한사랑 산악회’라는 이름으로 내놨다. 역시 대박이었다. 코미디언들의 실제 나이는 30대지만 옷차림과 말투만으로 우리네 아빠들을 연기한다. 영상 속의 산악회원 아저씨들은 아내와 딸이 깰까봐 새벽 출근 전 조용히 밥을 차려먹기도 하고 속 썩이는 자식과 싸우기도 하면서 웃음과 가족애를 느끼게 해준다.

‘한사랑 산악회’는 우연히 산악회 아저씨들이 ‘족보에 없는 막춤’을 추는 영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김민수가 연기하는 ‘영남회장’은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았다. ‘피식대학 3인방’을 50대로 착각하는 유튜브 시청자도 많았다.
○유명세 즐기려 일부러 홍대 쏘다녀
피식대학은 유명해졌다. 지상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얻어낸 성취였다. “처음 잘됐을 때는 너무 신기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을 즐기려고 킥보드를 타고 홍대 여기저기를 쏘다니기도 했죠.” 스태프도 생겼다. 이용주는 “처음에는 우리가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했는데 이제는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시청자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작 환경은 좋아졌지만 부담감도 함께 커졌다. 피식대학의 아이디어 회의는 항상 즐거울 것 같다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장에서 회의할 때 웃고 떠들면서 장난처럼 하나요. 저희도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심지어 싸우기도 합니다.”

정재형은 “우리를 고뇌에 가득한 철학적 그룹처럼 봐달라”며 크게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지한 이야기였다. 김민수는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개그를 절대 장난으로 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웃음이 고프고 새로운 콘텐츠에 목이 마르다”고 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