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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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직장인 김모씨는 매일 밤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아로마 스프레이를 베개에 뿌린다. 침실 조명은 거실보다 어두운 주황빛 전구로 교체했다.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스탠드도 머리맡에 뒀다. 목덜미에 숙면을 유도하는 로션을 바른 뒤 온열 기능과 마사지 기능이 있는 전동 안대를 쓴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물에 떠 있는 듯하면서도 단단하게 받쳐주는 느낌’의 매트리스에 눕는다.
단잠 부르는 숙면템…이젠 꿈도 꾸지 마세요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매일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붙들고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편하게 잠들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불면증을 치료할 아이템을 개발하는 슬립테크(sleep-tech·잠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에 얼마가 됐든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잠 못드는 한국인, 불면증 치료비만 4600억

한국에서만 매년 60만 명 이상이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불면증 치료에 사용된 진료비만 최근 5년간 약 4600억원에 달한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전통적인 침구업체부터 스타트업까지 첨단기술을 담아 불면증을 쫓을 신제품을 내놓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전 세계 슬립테크 시장 규모가 올해 150억달러에서 2026년 321억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슬립테크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역시 매트리스 침구업체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에이스침대가 대표적이다.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는 수면분석검사, 내구성 시험 등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사람의 신체 데이터가 입력된 마네킹을 이용해 매트리스에 누웠을 때 신체 각 부위의 하중 분포를 분석한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최적침대 선정 시스템’을 활용해 체압과 척추 형상 등을 측정한 뒤 최적의 침대를 선정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몬스도 수면연구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몬스는 인체를 형상화한 마네킹의 표면 온도가 매트리스 접촉 면적에 따라 변화하는 패턴을 측정하는 등 41종의 시험기기로 250여 개 세부 테스트를 시행해 제품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수면 데이터, 인공지능(AI)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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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벤처·스타트업들도 대거 슬립테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흔들리는 침대를 개발해 내년 2월 출시할 예정인 스타트업 몽가타가 대표적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정태현 몽가타 대표는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셀 프레스’에 실린 논문에서 제품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몽가타가 개발한 침대는 사람의 수면 리듬에 맞춰 천천히 좌우로 흔들린다. 사람의 귀 안쪽에 있는 전정기관(균형기관)에 가해지는 미세한 자극이 숙면을 유도한다. 정 대표는 “아기들이 요람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원리를 확대 적용한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몽가타 제품은 개당 600만원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예약 판매가 완료됐다.

스타트업 멜로잉팩토리는 침대에 부착하는 수면 환경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얇고 긴 막대 형태의 센서는 사람의 심박수와 호흡수 같은 미세 진동을 측정한다. 이준녕 멜로잉팩토리 대표는 “서울대병원 임상시험 등을 통해 확보한 1만 명의 수면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했다”며 “사용자별 최적의 수면 패턴에 맞게 깨우는 시간을 조절하는 알람을 제공하는 기기를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루의 3분의 1인 8시간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을 담아 사명을 정한 삼분의일은 메모리폼 특유의 점탄성을 활용한 매트리스와 토퍼, 베개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삼성전자 사내벤처프로그램 C랩 출신 스타트업 루플은 멜라토닌 분비를 유도하는 조명으로 올해 초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