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좀 꺼주세요"는 분명 한국 연극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1992년 서막을 올린후 3년6개월동안 대학로를 지킨 이 작품은 순수 창작극중
최장기 공연에 관객 20만명 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뿐인가.

이만희라는 걸출한 희곡작가를 연극계 전면에 부상시키며 그 대본이
타임캡슐에 소장되는 영예까지 얻었다.

1996년 6월 마지막 불을 껐던 "불좀 꺼주세요"가 3월16일부터 5월14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린다.

극본 이만희, 출연 이호재 권재희 이도경 정경순 남명렬 장설희, 그리고
미술 박동우로 이어지는 화려한 진용이다.

방송 PD로 명성을 얻은 황인뢰씨가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로 무대와 연을 맺은후 정극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연극은 이른바 잔재주를 부릴 여지가 없어서 어려워요.

TV로 치면 풀샷 연출에 가깝다고 할까.

그렇지만 하면 할수록 매력이 있어요"

"리메이크"는 일단 상품성을 검증받은 작품을 텍스트로 삼는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안전을 담보받은 셈이다.

하지만 만천하에 줄거리를 드러낸 작품에서 새롭고 진일보한 재미를 찾아
보여줘야 할 숙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래될수록 미화되기 마련인 기억으로 단단히 무장한 관객들 앞에선
더더구나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만희씨는 애초 연극에서 영화만큼 빠른 스피드나 다양한 장면전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공간이 넓어진만큼 소극장에서보다는 훨씬 빠른 전개가 가능하지요.

공간과 타이밍을 활용해 리듬감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합니다"

세밀한 감정선을 잡아내며 감각적인 영상미학을 선보여온 황감독의 연출과
10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신선한 이만희씨의 대본이 만나 어떤 무대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물론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출연진들의 연기도 기대된다.

(02)516-1501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