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 현황 통계 자료를 최근 발표했습니다. 역시 ‘투자 빙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자액이 많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련 통계 자료와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도 발견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최근 정부 발표 통계를 중심으로 국내 스타트업 투자 동향을 전해드립니다.
확인된 투자 감소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액이 1년 전보다 11.9% 감소했다. 전년보다 1조원 가까이 줄었다. 다만 2021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투자 규모가 컸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중기부 제공 중소벤처기업부는 이 같은 내용의 '2022년 연간 벤처투자' 동향을 최근 발표했다. 집계 범위는 중기부 소관의 벤처투자조합 투자 금액과 창업투자회사 직접 투자 금액이다. 작년 국내 벤처 투자는 전년 대비 11.9%(9162억원) 감소한 6조 7640억원으로 집계됐다. 액수 규모로 보면 작년 투자액은 2021년(7조6802억원)에 이어 역대로 두 번째로 컸다.
중기부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복합 위기로 2022년 벤처투자가 미국은 30.9%, 이스라엘은 40.7% 감소한 것과 비교해볼 때 같은 기간 국내 벤처투자 감소율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국내 벤처캐피탈들의 적극적인 투자처 발굴과 출자자 모집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내 투자 규모가 줄었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얘기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1분기 투자는 2조 2214억원으로 1년 전보다 68.5%(9027억원) 증가했다. 2분기는 1조 9315억원으로 늘긴 했다. 하지만 전년 동기보다 1.4%(262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3분기부터 감소했다. 3분기 투자는 1조 2843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6%(8070억원) 줄었다. 4분기에는 감소 폭이 더 커졌다. 1조3268원으로 전년 대비 43.9%(1조 381억원) 감소했다.
중기부는 “이런 양상은 시장 경색 이전에 검토하던 투자 건들이 상반기까지 집행된 반면 3분기 들어서는 고물가, 고금리가 벤처 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업종별 벤처투자 현황(단위 : 억원, %, %p) 중기부 제공업종별로 보면 정보통신(ICT ) 서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3개 업종에 전체 투자의 70.5%가 몰렸다. ICT 서비스 업종에는 가장 많은 2조 3,518억원(34.8%)이 투자됐다. 하지만 1년 전보다는 3.2%(765억원) 감소했다.
바이오·의료 분야의 경우에는 지난해 1조 1058억원의 투자액을 기록했다. ICT 서비스(2조 3518억원), 유통·서비스(1조 3126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상장한 바이오 기업의 주가하락, 기술특례상장 심사 강화 등으로 작년보다 34.1%(5712억원) 줄었다.
반면 영상·공연·음반 업종은 4604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443억) 증가했다. K팝, 한국 드라마 등의 해외 시장 인기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영향으로 보인다.
업력별로는 창업 초기기업(업력 3년 이하)에 대한 투자가 유일하게 증가했다. 초기기업 투자는 전년보다 7.8%(1452억원) 늘어난 2조 50억원으로 나타났다. 최초로 2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중기(업력 3~7년)와 후기(업력 7년 초과) 기업 투자는 각각 2조 7305억원과 2조 285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21.6%와 13.3% 감소했다.
벤처펀드 결성액은 역대 최고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액은 줄었지만 벤처펀드 결성 실적은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벤처펀드는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벤처투자조합 기준이다. 보통 벤처캐피탈(VC)은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VC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마련한 자금이 벤처펀드인 셈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작년 벤처펀드 신규 결성은 1년 전보다 13% 증가한 10조 7286억원을 기록했다.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했다.
중기부 제공 지난해 벤처펀드 결성도 분기별로 보면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이 떨어지는 모습이긴 하다. 작년 1~3분기는 각각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1분기 68.1%, 2분기 46.5% 증가를 보였다가 3분기에 증가율이 3.3%로 급격히 떨어졌다. 4분기에는 벤처펀드 결성액은 1년 전보다 13.0% 감소했다.
늘어난 펀드 결성액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결성된 펀드가 투자를 집행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다만 올해 경기 악화를 예상하고 VC업계가 투자보다는 자금 마련에 집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망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도 심화했다. VC업계 관계자는 “2~3년 전에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을 때 기업 가치가 높아진 유망 스타트업의 지분을 올해는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어 대기 투자금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망 스타트업 세일'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최근 벤처 투자 시장이 민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순수 민간자금으로 결성된 벤처펀드의 결성액은 4조 3651억원에 달했다. 모태자펀드 결성액(3조 8572억원)보다 많았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모태펀드(모태자펀드)의 비중이 2018년 58.2%에서 지난해 36.0%로 줄었다.
지난해 결성된 벤처 펀드의 출자자를 봐도 민간 출자자의 비중이 늘었다. 민간 부문은 1년 전보다 19.8% 늘어난 8조 110억원으로 전체 출자의 74.7%를 차지했다. 반면 정책금융 출자는 전년보다 3.3% 감소한 2조 7176억원으로 전체 출자의 25.3%로 나타났다. 벤처펀드에 가장 많이 출자한 민간 부문은 금융기관이었다. 해당 출자액은 전년 대비 39.9% 증가한 2조 4255억원이었다.
하지만 VC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역할이 아직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태펀드가 줄지 않았다면 벤처펀드 조성액이 더 증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은 5200억원으로 1년 전(1조700억원)보다 '반토막'이 났다. 올해 모태펀드 정부 예산은 3135억원으로 작년보다 40% 급감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 대책도 벤처펀드 조기 집행에 집중돼 있다. 국내 VC업계가 투자금은 충분히 모았지만 신속한 스타트업 투자에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기부는 벤처 투자 조기 집행을 독려하기 위해 최근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특정 투자 목표 비율을 달성한 모태자펀드 운용사에 관리보수 등을 추가 지급하고 차기 모태펀드 출자사업 선정 시 가점도 부여한다.
중기부는 지난 4일 공고한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 사업부터 본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적용한다. 모태펀드 우선손실충당 비율도 상향(10→15%)해 VC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대규모 민간 자본 유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민간 모펀드 제조도 조속히 도입할 방침이다.
참 한 가지 더
국내 지역별 벤처 투자 규모
지난해 국내 지역별 벤처 투자 현황 어떨까. 서울이 5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으로 보면 73.1%에 달했다.
지난해 투자금 증가 폭이 가장 큰 곳은 울산이었다. 1년 전보다 104.7% 증가했다. 경남은 55.5%를 기록해 두 번째로 증가율이 높았다. 반면 지난해 투자금 감소 폭이 가장 큰 곳은 전남이었다. 1년 전보다 93.3%나 줄었다. 강원도 72.6%나 감소했다.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 대표 10명 중 8명은 벤처투자 혹한기가 내년 상반기 중 풀릴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기업공개(IPO) 시장 부진과 금리 인상으로 벤처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올해는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단기간에 회복이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자금난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이어진다면 벤처투자 혹한기가 더 오래 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한국경제신문이 29일 국내 주요 VC대표와 파트너 24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0%는 벤처투자시장 혹한기가 올해까지, 29.2%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12.5%는 내년 하반기까지, 8.3%는 2025년까지 계속 될 수 있다고 봤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는 “벤처투자 혹한기는 올해가 지나면 잦아들 것으로 예상하지만 주식·IPO 시장이 올해 안에 반등하지 않을 경우 벤처시장 위험이 증폭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스타트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IPO는 VC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주요 창구다. 하지만 올해 IPO 시장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응답자의 62.5%), 지난해보다 좋지 않을 것(25%)이란 전망이 대부분이다. 대신 인수합병(M&A)을 통한 투자액 회수는 지난해보다 좋을 것이란 응답이 37.5%로 더 높았다.올해 벤처투자시장 최대 리스크로 응답자의 39.1%가 유니콘 기업의 자금 조달 실패를 꼽았다.허란 기자 why@hankyung.com
벤처투자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모태펀드 예산이 올해 급감하면서 스타트업 자금난은 더욱 심해졌다. 글로벌 투자 혹한기에 정부가 공교롭게 민간이 주도하는 모태펀드 정책을 편 탓이다. 올해 모태펀드 정부 예산은 3135억원으로 지난해 5200억원에서 40% 급감했다.한국경제신문사가 벤처캐피털(VC) 대표 및 파트너 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모태펀드 축소 여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모태펀드 예산 축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민간 모태펀드’ 도입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등 투자 재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하진 H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올해 모태펀드 축소로 스타트업 업계의 충격이 예상되는 만큼 벤처정책 예산을 예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모태펀드 예산 축소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응답자의 37.5%는 모태펀드 예산 축소로 벤처펀드 자금 조달(펀드레이징) 목표액을 지난해보다 낮췄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모태펀드·캐피털사의 벤처펀드 출자 비중이 줄고 은행·일반기업의 출자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올해 벤처투자 시장에 잠재된 최대 리스크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9.1%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의 자금난이라고 답했다. 고금리 여파(21.7%), 기업공개(IPO) 시장의 부진(17.4%)도 악재로 꼽혔다. 김기준 카카오벤처스 파트너는 “유망 스타트업이 단기적인 재무적 어려움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비상장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오랜 기간 침체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VC들은 스타트업을 향해 한목소리로 ‘생존 자금’ 확보를 강조했다.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고 신규 투자와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런웨이(보유 현금을 월 사용 현금으로 나눈 값)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는 “지난 14년간 양적완화 시기의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창업자도 과거는 잊고 정상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는 “벤처투자시장 세일이 시작됐다”며 “스타트업은 눈높이를 낮춰 생존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혹한기 투자 유망분야는VC의 자금 조달은 어려워졌지만 투자 집행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올해 투자 집행 규모를 지난해와 비슷하게 유지하거나(37.5%), 늘릴 것(37.5%)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투자가 급감하면서 ‘드라이파우더’(투자 대기 자금)가 충분한 데다 기업 밸류에이션이 낮아져 최적의 ‘투자 빈티지’로 꼽히기 때문이다.VC가 올해 가장 주목하는 투자 분야는 복수 응답까지 포함해 로봇(70.8%)과 디지털 헬스케어(66.7%)로 꼽혔다. 이어 2차전지(50%),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반도체·모빌리티(각 41.7%), AR·VR 콘텐츠(37.5%)가 뒤를 이었다. 투자 비중을 늘리거나 주목하는 글로벌 시장은 미국(41.7%), 한국(33.3%), 동남아시아(16.7%), 인도(8.3%)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허란/김종우 기자■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가나다순)△김기준 카카오벤처스 파트너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김종필 KB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 △김학범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남기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대표 △박하진 HB인베스트먼트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위윤덕 DS자산운용 대표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이동현 신한벤처투자 대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파트너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정근호 스틱벤처스 대표 △정일부 IMM인베스트먼트 대표 △조창래 에이벤처스 대표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진윤정 소프트뱅크벤처스 파트너 △채정훈 미래에셋벤처투자 파트너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 규모가 1년 전보다10% 이상 감소했다. 최근 경기 악화에 따라 투자시장이 위축된 결과다.중소벤처기업부는 작년 국내 벤처 투자액이 전년보다 11.9% 줄어든 6조 764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29일 밝혔다. 역대 최대였던 2021년(7조6802억원)보 다는줄었지만두번째로큰규모다.지난해 분기별로 보면 1분기에 2조 221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8.5% 늘었다. 2분기에도 증가세를 유지했지 만 증가율이 1.4%에 그쳤다. 3분기에 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감소 폭이 3분기 38.6%, 4분기 43.9%로 커졌다.업종별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서 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등 3개 업종 투자액이 전체의 70.5%를 차지했 다.지난해ICT서비스벤처투자액은2 조351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1년 전보 다는 3.2% 감소했다. 유통·서비스(1조 3126억원)도 9.8% 줄었다. 바이오·의료 (1조1058억원)는 전년보다 34.1% 줄었 다. 반면 영상·공연·음반 업종은 4604 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 증가했다. K 팝, 한국 드라마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 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영향이라고 중 기부는 설명했다.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