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직원들이 지난 3월 18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마트 앞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당근마켓 앱을 알리고 있다. 사흘간 마케팅 활동으로 1000명 이상이 당근마켓에 가입했다.  /당근마켓 제공
당근마켓 직원들이 지난 3월 18일 영국 런던의 한 대형마트 앞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당근마켓 앱을 알리고 있다. 사흘간 마케팅 활동으로 1000명 이상이 당근마켓에 가입했다. /당근마켓 제공
“어떤 미친 놈들인지 보러 왔다.”

2015년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마이크로소프트(MS) 게시판이 열리고, 처음으로 MS 직원이 이 같은 글을 남기자 팀블라인드 임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팀블라인드는 MS 본사 주차장에 전단을 돌리며 회사를 알렸다. 디지털의 심장부인 MS에서 펼친 ‘90년대식’ 아날로그 마케팅이 MS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MS 공략이 성과를 내면서 지금은 전체 직원의 60%가 블라인드에 가입했다.

블라인드와 지역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비교적 한국적 정서가 강한 사업모델로 인식되다 보니 외국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스타트업 해외 진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스타트업 특유의 톡톡 튀는 마케팅으로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을 뚫고 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맘’들이 지역 공략 첨병 됐다
당근마켓은 2019년 11월 ‘캐롯(KARROT)’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국내 월 이용자 수(MAU)가 500만 명 정도였다. 중고나라 등 국내 경쟁 업체를 따돌렸다고 보기 힘든 시기였다.

당근마켓의 해외 진출 전략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방식이다. 국내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국에 이어 캐나다(2020년 9월), 미국(2020년 10월), 일본(2021년 2월) 등 4개 국가를 동시에 공략했다. 보통 해외 진출 기업은 첫 번째 지역에서 성과가 나오면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법을 택한다.
美서 전단지, 英선 주부 체험단…스타트업 '한국식 입소문' 먹혔다
당근마켓은 하이퍼로컬(지역 밀착) 서비스 특성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 빨리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국민 정서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국내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외 서비스 출시 시기가 빨랐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때마침 투자 시장 활황으로 실탄이 풍부했다는 점도 당근마켓이 이 같은 전략을 취한 배경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여러 국가에 동시에 진출해 다양한 성공 방식을 찾아내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미권 이용자들은 중고거래 판매 게시글에 필수 요소를 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근마켓은 필수 정보를 쉽게 쓰도록 기본 게시글의 포맷을 변경했다. 이 방법은 국내 서비스에도 적용했다.

국가별 이용자의 특성도 고려했다. 상당수 일본인은 개인정보 공개를 꺼린다. 그래서 집 앞보다는 지하철역, 편의점 등 공공장소에서의 거래를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당근마켓은 일본에서는 거래 희망 지역을 표기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북미 지역 소비자의 선호를 고려해 앱 사용자환경(UI)을 기본 게시판 형태로 매우 간단하게 구현했다.

당근마켓 해외 진출 첨병은 ‘맘(육아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이었다. 중고거래 수요가 가장 많은 육아 제품부터 공략한 것. 영국 브리스톨, 캐나다 토론토 등 주요 진출 지역에서 초기에 ‘맘 체험단’을 모집했고 주부들의 SNS를 중심으로 “한국의 당근이란 거래 사이트에 좋은 육아용품이 많다”는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점도 현지 업체들과 차별화 포인트였다. “매년 영국 가정이 1600만t의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내용의 재활용 캠페인을 벌였고 최근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육아용품 기부 행사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美에 본사 설립하며 적극 진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설립할 정도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등에서 성공하면 해당 기업들의 지사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다른 이용자를 끌어올 핵심 이용자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일단 제대로 ‘입소문’을 타면 가입자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봤다. 팀블라인드는 시애틀의 두 테크 공룡인 아마존과 MS를 공략하면서 지극히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팀블라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김성겸 이사는 미국 진출 초창기인 2015년 6월 돼지 김치찜 파티를 자주 열었다. 장소는 아마존 직원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택했다. 아마존의 한국계 직원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면서 블라인드를 알렸다. 팀블라인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아마존 직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라고 소문나면 IT업계에 빠르게 확산한다”며 “이 같은 점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다음 타깃은 MS였다. 이번에도 한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MS 주차장에서 서비스 설명이 적힌 ‘전단’을 직원들에게 돌리고 여기저기 붙였다. IT 기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전단이 등장하자 가입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MS 직원 게시판에는 ‘어떤 미친 X들이 회사 주차장에 이런 걸 뿌렸는데 보러 왔다’라는 글이 맨 먼저 올라왔다.

타사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통했다. 아마존이나 MS에도 익명 게시판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IT 기업 직원 간에 공개적 정보 소통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보니 블라인드가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 시애틀의 대표적 IT 기업인 아마존과 MS 직원들은 상대 회사의 처우나 내부 사정이 궁금했다. 블라인드를 써본 MS 직원들이 익명 게시판인 ‘포럼’에 “블라인드에서는 아마존 직원과 대화도 가능하다”고 글을 올렸고 이것을 계기로 포럼을 쓰던 MS 직원들 대부분이 블라인드로 넘어갔다.

현재 블라인드는 미국에서 직장 기반 SNS인 링크트인 다음으로 화이트칼라 직장인 가입자가 많다. 애플 직원 가입률은 70%가 넘는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국가 진출이 수월하다는 전략도 적중했다. 미국 다음으로 인도,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순으로 이용자가 많다. 최근에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블라인드 올해 하루 평균 가입자 수는 작년보다 200% 이상 늘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