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이직' 게시글. 이미지=블라인드 앱 캡처
'꼬우면 이직' 게시글. 이미지=블라인드 앱 캡처
경찰이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꼬우면 너희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라고 조롱 글을 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찾기 위해 '팀블라인드' 회사 사무실 압수수색에 돌입한 가운데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제 블라인드에 회사나 상사 욕하면 법적조치 당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美본사에 압색 영장 송부…LH "모욕·모욕·명예훼손 고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날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지난 9일 블라인드 앱에 "(땅 투기 논란은) 어차피 한두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지고 차명으로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거냐"며 "난 열심히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빨면서 다니련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라는 글을 작성한 LH 추정 직원을 찾기 위해서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이 글에 대해 "제가 보기에도 참으로 온당치 않은 그런 행태"라며 "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조사를 해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후 LH는 14일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로 이 직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16일 오후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자 전날 압수수색에 나섰다. 다만 경찰은 팀블라인드 실제 사무실과 다른 사무실을 찾아 허탕을 쳤다.

작성자 데이터를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블라인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경찰이 LH본사와 팀블라인드 한국지사 내 서버·전산 기록 등을 일일이 대조하는 방법으로 작성자를 특정하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온다. 경찰은 회사 이메일에 발송된 가입 인증코드 흔적 등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사무실 주소 오류로 압수수색에 실패한 경찰은 미국 팀블라인드 본사에 영장을 송부하고 조만간 또다시 수색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블라인드 앱. 사진=한경DB
블라인드 앱. 사진=한경DB

작성자 색출 사실상 어려워…수사는 미궁 속으로

하지만 경찰이 팀블라인드를 압수수색하더라도 이용자 특정이 어려울 전망이다. 앱 운영사인 팀블라인드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데이터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팀블라인드에 따르면 익명 앱의 특성상, IP주소를 포함해 게시물 작성자를 특정할 수 있는 그 어떤 개인정보를 시스템 내부에 저장하지 않는다. 앱은 회사 이메일로 인증해야 가입이 가능하며, 이후 블라인드 계정을 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팀블라인드는 익명 보장을 위해 회사 이메일은 재직자 확인 용도로만 활용하고, 이후엔 블라인드 앱 계정과의 연결고리를 파괴한다. 운영사는 이와 관련한 기술 특허를 한국, 미국, 일본에 출원한 상태다. 경찰이 블라인드 서버를 확보하더라도 이용자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저장이 안 돼 있어 작성자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이용자 특정이 어려운 만큼, 형사처벌 역시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작성자 신원이 불분명할뿐더러, 표현으로 인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는데 이 경우 피해자가 명확히 지칭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업무방해죄 역시 해당 글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업무에 차질이 생겼는지 입증해야 하는데, 이 조차도 명확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작성자가 LH 직원으로 확인되면 해당 직원은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LH 인사규정 제48조 제1항 제3호에 따르면 '직무 내외를 막론하고 공사의 체면 또는 위신을 손상시켰을 때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나 성실의무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LH는 작성자가 현직 직원일 경우 파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앱 가입자들을 추려내 해당 인원 전원의 휴대폰을 포렌식으로 검사하더라도, 가입자들이 앱을 삭제하거나 휴대폰을 초기화하는 등 조치를 취하면서 데이터 추출이 어려워질 경우 작성자를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전망이다. 판교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만약에 이번 경찰 조사로 직원의 신원이 특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앞으로 블라인드에 회사나 상사를 욕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