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이스는 암세포의 자가포식(autophage)을 억제하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LB217’을 개발하고 있다. 2018년에 시리즈A로 4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도용 엘베이스 대표. 엘베이스의 LB217은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자가포식을 하는 CAGE를 표적한다. 사진=이승재 기자
전도용 엘베이스 대표. 엘베이스의 LB217은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자가포식을 하는 CAGE를 표적한다. 사진=이승재 기자
HER2와 결합하는 암정소항원 ‘CAGE’

2002년 ‘CAGE(Cancer Associated GEne)’라는 새로운 암정소항원(CTA·Cancer Testis Antigen)이 정두일 강원대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CTA는 암 환경에서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항원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CTA는 200개가 넘는다. 첫 CTA는 1990년에 발견됐다. CAGE는 순서상 26번째 발견된 CTA로 CT26으로도 불린다.

엘베이스는 CAGE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됐다. 전도용 대표는 당시 정두일 교수 연구팀으로부터 CAGE 관련 특허를 기술이전 받았다. 대부분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CTA를 암 백신 및 면역 치료제로 만들기 위해 활용한다. 엘베이스도 CAGE에 대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면서 항암제로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했다.

연구를 지속하던 중 회사는 CAGE가 HER2 단백질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활용해 CAGE를 표적하는 비소세포폐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이때까지도 자가포식을 저해한다는 기전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자가포식은 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재활용 현상이다. 기능이 저하된 세포 내 소기관과 변형된 단백질 등을 분해해 생존을 위한 에너지나 새로운 세포소기관이 생성된다. 세포의 항상성 유지 및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가포식의 개념은 1960년대에 벨기에의 생화학자 크리스티앙 드 뒤브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그 이후로 연구에 큰 진전이 없다가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에 의해 재조명됐다. 오스미 교수는 단세포 생물인 효모 내부에서 진행되는 자가포식 과정을 분석하고 관련된 유전자 15종을 발견해 발표했다. 이 연구로 2016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오스미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기점으로 자가포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항암제 등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업계의 기대가 커졌다. 문제는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도 자가포식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암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가포식을 억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촉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분화할 때 산소가 낮아지고 영양분이 부족해진다. 이때 자가포식을 통해 암세포가 소멸되기도 한다. 자가포식이 암의 성장을 저해하는 경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암세포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자가포식을 활용해 살아남는다. 자가포식이 오히려 암의 성장을 돕게 되는 것이다.
전도용 대표는 “최근 발표된 연구에 의해 자가포식은 암 초기에는 종양 억제 요인으로 기능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종양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암세포 자가포식만 저해하는 ‘LB217’

암세포의 자가포식 현상이 알려지며 이를 저해하는 항암제를 개발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돼 왔다. 자가포식을 저해하는 기전의 항암제 파이프라인 중 가장 앞선 임상 단계를 밟은 사례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HCQ)과 클로로퀸(CQ)이다.

HCQ와 CQ는 자가포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허가받은 말라리아 치료제다. 비소세포폐암과 췌장암, 골수종 등 다양한 암종에 대해 단독 및 병용 요법으로 다수의 임상 1~2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용량을 복용해야 하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임상은 망막 독성 등의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중단됐다.

자가포식소체(autophagosome) 형성에 관여하는 ULK나 VPS34를 저해하려는 시도도 있다. 자가포식소체는 자가포식이 일어나는 주머니 모양의 격리막이다. 자가포식 활동의 초기 단계에 형성된다. 하지만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자가포식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정상세포의 자가포식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PPT1 단백질을 표적하는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PPT1은 정상세포보다 암세포에서 높게 발현되지만 정상세포에서도 발현된다. 역시 암 환경에서만 선택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자가포식 관련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상세포에는 관여하지 않고 암세포에서만 작용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 종양 억제에서 종양 촉진으로 바뀌는 ‘스위치’를 알아내 조절할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항암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게 전 대표의 설명이다.

엘베이스는 자가포식의 기능이 암세포 억제에서 촉진으로 변하는 결정적인 스위치가 CAGE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 회사의 연구에 따르면 CAGE는 암종별로 각기 다른 특정 단백질과 결합하며 암 성장을 촉진하는 자가포식을 시작한다.

비소세포폐암에서는 HER2와 결합한 CAGE가 단백질 Beclin1과 결합하며 자가포식소체를 형성한다. 엘베이스는 단백질 간 상호작용(PPI·Protein-Protein Interaction)을 평가하는 자체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CAGE를 표적하는 단백질 LB217을 개발했다.

엘베이스의 LB217은 CAGE를 표적해 결합한다. 이로 인해 Beclin1과 CAGE가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자가포식소체 형성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암세포의 자가포식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CAGE가 암 환경에서만 발현되는 항원인 만큼 LB217이 일반 세포의 자가포식을 방해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연내 국내외 임상 1상 신청 목표

비소세포폐암 환경에서 일어나는 자가포식은 기존에 개발된 항암제의 내성과도 관련이 있다. 비소세포암 치료제인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를 투여한 이후 일부 암세포에서 자가포식 흐름(autophage flux)이 증가하며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 확인됐다.

전 대표는 “암세포가 항암제에 의해 사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자가포식을 활용해 생존을 이어간다”며 “긴급 상황에서 암세포 스스로 내성을 획득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소세포폐암 환경에서 자가포식 활성을 억제한다면 TKI의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요법에서도 LB217이 항암 효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이 낮은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암세포의 자가포식인 것으로 엘베이스는 파악하고 있다.

엘베이스는 LB217의 국내외 임상 1상에 대한 연내 신청을 목표하고 있다. 대원제약과는 국내 임상을 위한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임상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러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과 비밀유지계약(CDA)을 체결하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회사 측은 자가포식 기전의 항암 및 내성 극복 효능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 임상을 통해 자가포식 경쟁 파이프라인들과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할 계획이다. 임상 1상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한다면 병용요법에 관심을 보이는 다국적 제약사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하반기에 임상 진행을 위한 시리즈B 투자 유치를 고려하고 있다.
[Cover story - part.4] 엘베이스, 자가포식 억제하는 ‘LB217’ 연내 임상 1상 신청
[Cover story - part.4] 엘베이스, 자가포식 억제하는 ‘LB217’ 연내 임상 1상 신청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