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훈 웰마커바이오 대표가 서울 송파구 본사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설명하고 있다.  박영태 기자
진동훈 웰마커바이오 대표가 서울 송파구 본사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설명하고 있다. 박영태 기자
“해외 유학도 간 적이 없는 토종들이 혁신 항암 신약을 개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

진동훈 웰마커바이오 대표(48)의 포부다. 진 대표는 시쳇말로 ‘해외 물’을 먹지 않은 순수 국내파다. 유학을 간 적도 없고, 해외에서 일해본 적도 없다. 유학파들이 득세하는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희귀종’으로 꼽힐 정도다. 국내파들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웰마커바이오는 그래서 더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기반 신약 개발이 글로벌 바이오제약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창업멤버이면서 서울아산병원에서 동고동락했던 홍승우 바이오연구센터장, 신재식 바이오마커팀장, 문재희 R&BD전략기획팀장 등도 진 대표처럼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바이오 전문가들이다.

산·학·연서 두루 경험

영남대 미생물학과를 나와 서강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진 대표는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항암제 연구개발(R&D)에 발을 들여놨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도교수가 세운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 일을 도왔다. 하지만 투자 유치에 실패해 결국 폐업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동안 벤처 일을 돕느라 논문 한 편도 못 썼다”면서도 “현금흐름이 막히면 회사가 망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고 했다.

바이오벤처에서 쓴맛을 본 진 교수는 2010년 4월 서울아산병원 연구조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 근무 경력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진 대표는 승승장구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임용된 지 4년 만에 울산대 의대 전임교수가 됐다. 명문대를 나오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하고 일한 결과였다. 그는 “영어 논문 쓰는 요령을 터득하기 위해 세계적 저널인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수십번 씩 필사했다”며 “사흘이면 영문 논문 한 편을 거뜬히 써낼 정도가 됐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스핀오프 1호 벤처

"환자 맞춤형 항암제로 부작용 최소화…혁신 신약 후보물질만 5개"
2015년 초 무렵이었다. 병원장 등 병원 고위관계자들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는 “회사를 차려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대형 대학병원들이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때마침 연구교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곤 하던 진 대표에게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병동에 갈 때마다 암 환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했어요. 내가 쓴 연구논문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이럴 바엔 차라리 학부생이나 가르치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평소 안주하는 것을 싫어하던 진 대표에게 창업은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논문으로만 그쳤던 연구를 현실에 적용하고 싶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창업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다. 바이오벤처에 근무는 해봤지만 회사를 경영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준비할 게 많았다. 그는 서울아산병원 신약개발지원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아 역량을 키워갔다. 150여 개 바이오벤처, 제약사 등에 자문 역할을 하면서 기업 경영 노하우를 배우려고 애썼다. 인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직원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인센티브 제도는 어떤 게 있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다 2016년 12월 회사를 세웠다. 1989년 개원한 서울아산병원이 배출한 1호 바이오벤처였다.

환자 맞춤형 항암제 개발

웰마커바이오는 바이오마커 기반 항암제 개발업체다. 바이오마커까지 개발하는 항암 신약 개발사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만큼 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회사의 바이오마커는 질병 진단이나 예후 진단에 쓰는 진단업체의 바이오마커와는 다르다. 특정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항암제가 제대로 효능을 낼 수 있는지 가려내는 역할을 한다. “병원에 가서 암 판정을 받으면 수술이나 약물 치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항암제를 쓰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가 적지 않습니다. 경제적 부담에다 부작용 등으로 인한 고통까지 감내해야 하는 거죠. 바이오마커를 활용하면 이런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바이오마커 기반 치료제 개발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약 개발 성공률을 크게 높여주는 것도 이유다. 항암제의 임상 1상까지 성공률은 약 8.6%이지만 바이오마커가 있는 경우에는 26.7%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애보트 등 다국적제약사들이 바이오마커 기반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바이오마커 개발은 간단치 않다. 환자 샘플뿐 아니라 치료 히스토리 등 의료 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임상 경험과 노하우도 필요하다. 진 대표는 “서울아산병원에서 10년간 다국적제약사 등과 공동 연구한 경험이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바이오마커 예측 성공률은 20%만 돼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우리가 보유한 10여개의 바이오마커 예측 성공률은 40% 수준”이라고 했다.

혁신신약 파이프라인만 5개

웰마커바이오는 WM-S1, WM-A1, WM-S2, WM-P1, WM-A2 등 5개의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있다. 하나같이 혁신 신약이다. WM-S1은 머크의 표적 항암제 얼비툭스(성분명 세툭시맙)로 치료되지 않아 대안이 없는 대장암 환자에게 쓰는 항암제다. 얼비툭스 내성 환자는 물론 아직 치료제가 없는 KRAS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에게도 처방할 수 있다. 진 대표는 “동양인 400명, 서양인 18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전체 대장암 환자의 40%에 처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얼비툭스를 대체할 블록버스터 신약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웰마커바이오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WM-S1의 전임상을 오는 9월께 마무리하고 내년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1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국은 상반기, 미국은 하반기로 예정하고 있다. 진 대표는 “WM-S1은 다국적제약사 제품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고 독성도 적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기술수출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WM-A1은 폐암, 간암, 위암 등 3개 적응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내년에 3개 적응증 모두 전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전립선암 및 대장암 치료제인 WM-S2는 내년 상반기 전임상을 계획하고 있다. 간암 치료제 WM-P1, 대장암 치료제 WM-A2 등은 아직 후보물질 탐색 단계다. 진 대표는 “원자력병원 등 외부에서도 3종의 파이프라인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꾸준히 파이프라인을 늘려나가겠다"고 했다.

웰마커바이오의 경쟁력은 다수의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것뿐 아니라 개발 속도에서도 차별화된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대표 파이프라인인 WM-S1은 창업 당시 선도물질 발굴 전 단계였으나 전임상까지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 대표는 “바이오마커를 동시에 개발하면서도 남들보다 두 배 빠른 속도”라고 했다.

“2년 내 코스닥 상장 추진”

웰마커바이오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비닛샤 국립의대, 포딜야 지역 암센터 등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비닛샤 국립의대 내에 글로벌 비임상센터를 설립하고 포딜야 지역 암센터로부터 암환자 임상 샘플을 받는 등 항암신약 연구에 협력하는 내용이 골자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전진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진 대표는 “인종과 식습관, 생활환경에 따라 유전자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서양인 암환자에 맞는 신약 개발 실험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세포 정상세포 기질 등이 뭉쳐있는 암조직으로 실제 암 환경과 비슷한 동물실험을 할 수 있게 돼 임상 예측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웰마커바이오는 2021년께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글로벌 임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진 대표는 “내년에 임상이 본격화되면 임상비용만 70억~8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미국 임상은 기업 공개 후 추진하려 한다”고 했다.

웰마커바이오는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연봉은 웬만한 제약사에 버금간다. 사람이 자산이라는 진 대표의 경영철학에서다. 진 대표는 올초까지 자신의 월급을 털어 직원들에게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이사가 의지를 보여주면 직원들도 열정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사비를 털었다”고 했다.

진 대표가 꼽는 이상형 기업은 일라이릴리 제넨텍 등 전문경영인이 사세를 키운 다국적 제약사다. 그는 “도전적인 전문경영인을 통해 회사가 혁신 신약 기반의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토대를 닦아갈 것”이라며 “여력이 생기면 우수직원을 하버드 암연구소, 위스콘신대 등에 연수를 보내 회사를 이끌어갈 핵심인재로 키우려고 한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