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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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기업 안팎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호텔기업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아르네 소렌슨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췌장암을 진단받고 투병 중인 상황에도 최근 자신이 출연한 동영상을 통해 메리어트의 임직원을 격려했다. 아울러 메리어트 이사회 의장인 빌 메리어트와 함께 올해 연봉 전액을 반납하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외신들은 “소렌슨 CEO가 이른바 ‘진정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엄청난 위기지만 이겨낸다

메리어트가 지난달 19일 자사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소렌슨 CEO는 “아마 여러분은 내가 대머리인 것을 보고 놀랐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소렌슨 CEO는 지난해 5월 췌장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탈모 증세가 오자 머리를 밀었다. 그는 “내가 이런 모습으로 영상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하지만 메시지를 꼭 직접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렌슨 CEO는 “코로나19 사태로 회사의 어려움이 9·11 테러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합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8년간 CEO로 재임하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직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심정을 전했다.

소렌슨 CEO는 “상황이 어려운 관계로 많은 직원이 2~3달가량 무급휴가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빌 의장과 나도 올해 연봉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다른 임원들도 연봉의 50%를 삭감하는 방안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전역에서 심각해지고 있지만 다행히 중국에서는 상황이 호전되는 중”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곧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어 “우리 모두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모두가 기억하는 메리어트 특유의 친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솔직하고 투명한 리더십의 표본
소렌슨(왼쪽)과 빌 메리어트 이사장.
소렌슨(왼쪽)과 빌 메리어트 이사장.
소렌슨 CEO의 동영상이 공개된 뒤 주요 외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미 경제매체 포브스는 “소렌슨의 메시지는 모든 CEO에게 귀감이 되는 진정성 리더십의 정수”라고 평가했다. 진정성 리더십이란 리더 자신의 명확한 자기 인식에 기초해 확고한 가치와 원칙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투명한 관계를 형성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십을 말한다. 2000년대 들어 에너지 기업 엔론의 분식회계 사태와 같이 경영진의 비윤리성이 초래한 비리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신뢰할 만한 리더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등장했다.

포브스는 “소렌슨의 동영상은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진정성 리더십의 표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쁜 소식을 면 대 면 방식으로 직접 전하는 것 △이 같은 소식을 미사여구 없이 투명하게 전하는 것 △연봉 반납 등을 통해 직원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 △최근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 △희망적인 메시지로 담화를 끝맺은 것 등을 주목할 점으로 꼽았다.

메리어트 직원 사이에서는 “소렌슨 CEO의 동영상에 감동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메리어트에서 13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직원은 이 동영상을 트위터에 공유하며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소렌슨 CEO가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강한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소렌슨 CEO의 동영상은 트위터에서 90만 뷰가량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소렌슨 CEO의 동영상이 공개된 뒤 메리어트 주가는 급등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메리어트 주가는 동영상이 올라온 지난달 19일 이후 닷새 만에 27.6% 급등했다. 외신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대부분 호텔 기업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메리어트 주가가 급등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첫 비(非)메리어트가 출신 CEO

언론의 극찬에도 정작 기업인 사이에서는 소렌슨 CEO의 행보에 그리 놀라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소렌슨이 이미 평소에 임직원을 진정으로 위하는 모습을 통해 기업 안팎에서 명망이 높았기 때문이다. 소렌슨 CEO는 지난해 미국 경영매체 치프이그제큐티브가 선정하는 ‘올해의 CEO’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 고용전문조사기관 그레이트플레이스투워크(GPW)의 ‘2020 올해의 리더’에 선정됐다.

메리어트 역사상 첫 비(非)메리어트가 출신이 CEO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평소 보여준 진정성을 다하는 업무 스타일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변호사 출신인 소렌슨은 1993년 자신이 소속된 법률회사가 메리어트의 소송을 대리하게 되면서 회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빌 의장 권유로 1996년 메리어트로 자리를 옮겼다. 소렌슨은 8년 전인 2012년 3월 31일 메리어트 CEO가 됐다.

소렌슨 CEO의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세계 각지에서는 기업 CEO들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자진 연봉 삭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CEO는 올해 경영진의 연봉을 25~30% 반납하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델타항공, 알래스카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국 항공사들도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임금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