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랩. 사진=한경DB
안랩. 사진=한경DB
주가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국무총리를 맡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안 위원장의 총리설을 업고 주가 상승 랠리가 이어지길 바랐던 개미들로선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이런 가운데 증권가는 안랩이 정치 테마주라는 굴레를 벗어나 사이버 보안주로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보면 안랩과 관련한 증권가 리포트는 2011년 10월 이후 없는 상태다. 햇수로 12년이 되도록 분석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안랩이 정치 테마주로서의 인식이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에 편입되면서 보안주로서 존재감을 키울지 주목된다. 다만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면서 주가 고평가 현상이 우려되는 만큼 매매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48분 안랩은 전일 대비 1만5000원(10.78%) 떨어진 12만41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저가는 12만1700원이다.

안랩 주가의 극심한 롤러코스터 장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주가는 안 위원장의 총리설이 부각되면서 지난 17일부터 5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지난 23일에는 10년 만의 역대 최고가인 17만5800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은 무려 101%에 달한다.

하지만 주가는 이튿날부터 고꾸라졌다. 24일 17.52% 하락→25일 6.41% 하락→28일 1.62% 하락 등 연일 떨어지며 상승분의 상당부분을 뱉어냈다. 24일의 경우 장 초반에는 21만8500원까지 치솟기도 했는데 줄곧 매도 우위를 보여온 개인들도 이날 만큼은 222억원 순매수하기도 했다. 이어서 주가는 전일인 29일 사흘 만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안 위원장의 총리 고사 소식이 전해지며 이날 다시 급락세를 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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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분을 반영하더라도 주가는 지난 14일부터 12거래일 동안 무려 60.81%가 뛰었다. 지난 18일까지만 해도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50위권 밖에 있던 안랩은 29일 기준 시총 36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사실상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아닌 '소문'만으로 며칠 사이 시총 순위 수십계단이 오락가락하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인 것이다.

이날 각종 안랩 종목 토론실에선 개인 투자자들의 격양된 반응이 쏟아졌다. '총리할 듯이 간 보고 주식으로 배 불린 거냐', '개미들만 죽어나갔다', '총리설로 상한가 갔으니 안 한다면 최소 오른 만큼은 빠지지 않겠나' 등이다. 일각에선 '이제는 정말 기업의 가치로 가자' '당장은 총리를 안 하더라도 더 멀리 보면 테마주로서도 가치가 있다' 등 상반된 여론도 눈에 띄었다.

안랩 주가를 지지하는 주된 동력인 외국인 투자자는 여전히 매수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오전 9시30분 기준 안랩은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코스닥시장 내 외국인 순매도 상위 5위(27억8800만원 순매도)에 올랐지만 오전 11시10분 들어선 23억7500만원 순매수로 전환하며 순매수 상위 8위에 자리했다. 앞서 지난 14일부터 전일까지의 기간 중 하루를 뺀 11거래일 동안 외국은 '매수 우위'를 보인 바 있다.

앞으로 안랩 주가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안 위원장이 총리직을 공식 고사하면서 대형 모멘텀을 잃은 만큼, 당분간 반등을 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안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갖고 "윤 당선인께 국정운영에 대한 본인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며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에 대한 청사진만 그려드린 뒤 내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윤 당선인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랩이 정치 테마주에서 보안 테마주로 옮겨갈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마침 전일 미 ETF 운용사 퍼스트트러스트는 안랩 주식을 149만7711주(지분율 14.96%)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퍼스트트러스트는 지분 18.6%를 가진 창업주 겸 최대주주 안 위원장에 이어 안랩 2대 주주에 올랐다.
11년간 리포트 '0개' 안랩…보안株 홀로서기 가능할까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에 안랩을 새로 편입한 ETF의 경우 테마형 종목이기 때문에 애초에 지수(BM)을 만들 때부터 운용역 등의 종목 판단이 개입되는 경향이 짙다"며 "때문에 이번 ETF 편입은 유력 글로벌 운용사가 안랩의 보안사업의 펀더멘털을 낙관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철 한양증권 여의도PWM센터 이사는 "안 위원장의 총리 고사가 공식화된 만큼 추가적으로 확실한 모멘텀이 나오지 않는 한 당분간은 최근 급등락한 데 대한 '작용 반작용'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투자자들은 새롭게 2대주주에 등극한 트러스트펀드가 안랩을 편입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ETF 편입을 계기로 주가 변동성은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패시브 ETF의 기계적 매수세가 집중될 경우 안랩 주가 역시 한순간에 급등락할 우려가 커져서다.

안랩이 편입된 '퍼스트트러스트 나스닥 사이버보안 ETF'(CIBR)의 자산구성내역(PDF)을 살펴보면 이날 기준 안랩은 2.39%의 비교적 높은 비중으로 담겨 있다. 이 ETF는 보안업을 영위하는 기업 중 시총 약 3000억원 이상이면서 유동비율 20%가 이상인 종목들을 담고 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사이버 보안 시장이 주목 받고 있는 만큼 수급이 몰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현재 이 ETF의 시가총액은 7조8276억원 수준이다. 결국 안랩에 몰릴 것으로 추정되는 패시브 자금은 1870억원에 달한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글로벌 ETF의 경우 방법론상의 요건만 충족하면 지역 배분의 측면에서 나라별 기업을 고루 담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시총 2000~3000억원 규모를 충족하는 보안기업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을 정도로 애초에 보안 분야 유니버스(종목군) 크기가 작기도 하다. 안랩은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패시브 자금으로 안랩에 2000억원가량이 들어오는 셈이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 현상이 야기될 우려도 있다"며 "투자 시 주가가 상당히 고평가돼 있지는 않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