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값 역대 최고에 물류비 올라
제지사들, 4개월 만에 인상 통보
책값에 즉각 반영 어려워 '부담'
치솟는 종이 가격에 출판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한 번 출간한 책은 2쇄 3쇄를 찍을 때 가격을 올리기 어려워 종잇값 인상 부담을 출판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480여 개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16일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한국제지 홍원제지 등 국내 주요 제지회사에 공문을 보내 종이 가격 인상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업체가 지난 1월 국내 인쇄용지 가격을 7% 올린 데 이어 4개월 만인 이달 초 또다시 15% 인상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8~9월께 종이 가격이 또 10% 인상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작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할인율을 7~15% 줄이는 방식으로 종이 가격이 오른 터라 출판업계는 이번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할인율은 제지회사나 도매상에서 고시가(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종이를 구입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영완 윌북 대표는 “작년 초보다 고시가가 50% 가까이 올랐다”며 “할인율 축소 등을 고려한 체감 상승 폭은 두 배에 이른다”고 말했다. t당 90만원 중반에 구매하던 것이 지금은 200만원에 육박한다는 설명이다.
종이 가격이 뛰는 건 글로벌 원자재 파동에 종이 원료인 펄프 가격이 날뛰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5월 펄프 가격은 t당 940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펄프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파르게 올랐다. 올 들어 상승률은 43.5%에 달한다. 원유 가격과 해상운임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신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책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어 원자재 가격 인상을 책값에 100% 반영하긴 어렵다고 출판업계는 하소연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11년 평균 1만3010원이던 신간 정가는 2020년 1만6420원으로 연평균 3% 오르는 데 그쳤다.
홍 대표는 “제지회사들로부터 아직 공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며 “국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해외에서 종이를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제펄프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에 제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25일 오전 9시10분 현재 무림페이퍼는 전일 대비 660원(23.36%) 오른 3485원에, 페이퍼코리아는 255원(12.78%) 상승한 225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이외 신풍제지(9.02%), 깨끗한나라(8.05%), 한솔제지(4.40%) 등도 강세다.전날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5월 원자재 가격 정보에서 미국 남부산 혼합활엽수펄프(SBHK) 가격이 톤(t)당 94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온 영향으로 보인다. 직전 최고치는 작년 6월의 톤당 925달러였다.펄프 가격은 작년 12월 톤당 655달러로 저점을 경신한 뒤 올해 들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5월 가격은 연초 대비 29.66% 상승한 수준이다.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쥐 떼의 공격을 피해 고층 빌딩에 숨어 산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이는 바로 프랑스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1)다. 그가 신간 《행성》(열린책들·전 2권·사진)으로 돌아왔다. 2018년 국내 출간한 《고양이》와 2021년 《문명》에 이어 ‘고양이 3부작’을 구성하는 마지막 작품이다.말하는 고양이 ‘바스테트’와 동료들이 쥐들이 없는 세상을 찾아 미국 뉴욕에 도착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쥐들에게 쫓기던 바스테트 일행은 맨해튼 고층 빌딩에 숨어 사는 인간들을 발견한다. 약 4만 명의 인간은 200여 개 빌딩에 살고 있었다. 프리덤 타워에는 102개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쥐를 없애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대두하며 갈등이 심해진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에게 무시당한다.바스테트의 눈에 비친 인간은 여전히 자기들끼리도 소통할 줄 모르는 존재다. “인간들 입에서 나오는 건 소통의 소리가 아니라 소음이야.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말할 뿐이야.” 책은 민주주의와 이민자 문제, 인종 갈등, 성평등, 광신주의 등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 사회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다룬다.이 책은 프랑스에서 2020년 10월 출간됐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던 때다. 그래서인지 전작들에 비해 디스토피아적 성격이 강하다.작가는 바스테트의 입을 빌려 “우리가 지금이 삶을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인간이 조연으로 밀려나고 동물이 주연을 차지한 이 소설을 통해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단편 ‘유명한 정희’ 중)빼어난 문학성과 정교한 서사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온 중견 작가 이장욱이 3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창비·사진)을 펴냈다. ‘유명한 정희’ ‘잠수종과 독’ 등 2020년부터 2년 동안 쓴 단편 아홉 편을 담았다. ‘잠수종과 독’은 올초 이상문학상 우수작에 뽑힌 작품이다.우리의 손을 벗어나 마음대로 흘러가는 인생, 책은 이런 인생의 불가해함을 얘기한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가고, 소설 속 인물들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들이 인생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허망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한번 선이 닿으면 그것으로 인생이 결정된다. 그렇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버릴 만큼 잠깐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코끼리 고구마 그리고 오조의 발목을 잡은 손들’ 중)‘잠수종과 독’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 현우는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중 불에 타는 건물을 발견한다. 본능적으로 조수석에 있던 카메라를 집어 들고 좌회전하는 순간 노란불에 속도를 높인 맞은편 차와 충돌해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현우의 연인 공이 의사로 일하는 병원에 방화범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실려 온다. 공은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현우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며 주사기를 든다.기억과 그리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며 떠나간 이들을 품고 살아간다. 표제작 ‘트로츠키와 야생란’은 나와 너의 추억이 깃든 러시아에 홀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유명한 정희’는 초등학교 친구인 정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삶과 죽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세심히 풀어내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내려놓지 않는다.이 작가는 1994년 시인, 2005년 소설가로 등단해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 《천국보다 낯선》 《캐럴》 등을 썼고 젊은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대산문학상(시 부문) 등을 받았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