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김슬아 컬리 대표는 코스트코 점포 앞에서 결혼 후 첫 부부싸움을 했다. 주말이면 주차장 진입까지 두 시간씩 기다려야 해 남편은 “대체 뭘 사야 하길래 여기까지 왔느냐”고 따지기 일쑤였다. “당시 LA갈비는 압도적으로 코스트코가 맛있었어요. 꼭 여기서 사야 한다고, 절대 못 돌아간다고 했죠.”

신선식품 새벽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서비스를 구현하며 지금의 마켓컬리를 일군 ‘기업가 김슬아’는 그만큼 먹거리에 깐깐했다. 마트에 갈 때면 식품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주부들을 보며 늘 고민했다고 한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믿을 만한 품질의 신선식품을 쉽게 살 수는 없을까.’ 이 고민이 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컬리를 키운 원동력이 됐다.

“소비자가 식품에 예민할수록 성장 기회”

2015년 1월 1일. 김 대표는 컬리의 전신 더파머스를 창업했다. 온라인 유통업체의 대표가 됐지만 정작 유통업 경험은 전무했다. 다만 음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소비자였다. 마켓컬리를 운영하면서 그는 공급자 시각을 버리고 ‘소비자가 뭘 원하는가’를 늘 자문했다.

“질문이 바뀌면 답도 달라지잖아요.” 김 대표의 말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어떻게 가능하게 할까’를 풀어가는 길이 마켓컬리의 성장 과정이었다. 샛별배송, 큐레이션 등 마켓컬리 이전엔 세상에 없던 서비스가 이 과정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기존 유통업의 패턴과 문법을 따르지 않은 것을 마켓컬리의 성장 이유로 꼽는다. 그는 “때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임직원 개개인 삶의 목표의식과 회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해내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생물 문어를 먹고 싶어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안 팔 수 없는 것”이라며 웃었다.

김 대표와 마켓컬리는 지금은 일상 서비스가 된 새벽배송을 최초로 구현한 개척자다. 온라인의 배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혁신이었지만 김 대표는 사업의 ‘본질’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마켓컬리 경쟁력과 온라인 신선식품의 핵심은 다름 아닌 ‘차별화된 상품’이다. 김 대표는 “상품 차별화 없는 배송 스피드 싸움은 굉장히 말초적이고 지엽적”이라며 “급할 때는 쓰지만 결국 눈으로 본 뒤 사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경쟁력과 사업 본질을 설명하며 한 뼘 더 깊이 들어갔다. 그는 “컬리 비즈니스의 핵심은 교육이기도 하다”며 “스타트업이 기존 사업자들이 쌓아올린 구조를 바꾸려면 반드시 소비자의 생각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상품이 정말 좋은 건지를 알아야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갈아탈 텐데, 이건 사람이 습관을 바꾸는 일이거든요. 마켓컬리는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예민해질수록 잘되는 구조예요. 반면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기존 사업자가 유리하죠. 컬리뿐 아니라 새로운 도전자들이 여러 방식의 소비자 설득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확고한 신념 있을 때만 창업 도전해야

김 대표는 ‘셀럽’의 반열에 오른 기업가다. 한때 직원 월급과 납품 대금이 걱정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컬리는 최근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통해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았고, 마켓컬리의 컬러(보라색)와 로고는 소비자들이 선망하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의 창업론은 뭘까. 김 대표는 “극단적인 솔직함이 건강한 조직문화를 형성한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 동료는 친구가 아니고, 가족 같은 회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과 마음이 잘 맞을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다만 일하면서 생기는 차이는 솔직하게 소통하면서 풀어나가되 끝내 같이 갈 수 없다면 빨리 헤어져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 과정이 잘되면 조직 내 앙금이 남지 않지만, 감정이 쌓이다가 터지면 잔해를 줍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걸 배웠어요.”

직원의 퇴사 여부나 퇴사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퇴사 이유’가 조직문화를 반영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창업을 해야 하는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명확히 밝혔다. “돈이 벌고 싶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가 창업의 이유라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기업가치가 올라가더라도 실제 돈을 만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걸로 버티긴 어렵다는 것.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도 순진하다. 그는 “창업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불에 타고 있는 사업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을 매일 겪는다”고 했다. 다만 김 대표는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으면 하라”고 권했다. 확고한 신념이 있을 때만 도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그게 없으면 정말 매일매일 극복이 안 될 정도로 힘든 게 창업”이라고 다시 한 번 힘줘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동문(웰즐리대 정치학과)인 김 대표는 원래 박사과정에 진학해 개발경제학을 공부하려 했다. 지도교수가 될 뻔한 스승의 조언이 ‘기업가 김슬아’를 만들었다. “지금 대학원에 오면 실물경제는 하나도 모르는, 한쪽으로만 큰 머리를 가진 기형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시장을 이해하고 오면 훨씬 더 큰 학자가 될 거라고요.”

그는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공부 대신 시장을 알기 위해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된 지금도 김 대표는 “쉬는 시간에 읽으면 힐링이 된다”며 개발경제학을 놓지 않고 있다.

“자격 없다면 물러나야”…자신보다 회사 앞세워

그는 최근 컬리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창사 7년 만에 전 직원에 대한 성과보상안을 내놨다. 특이한 점이 있다. 경영진을 포함한 임원은 제외하고 정규직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주기로 했다. 다른 기업과 정반대 선택을 한 이유는 평직원에게 더 많은 주식을 배정하기 위해서다. 평직원에게 수량을 배분하는 기준 또한 직급이나 성과가 아니다. 재직 기간에 따라 배정했다. 컬리는 정규직뿐 아니라 계약직 직원에게도 현금 인센티브를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김 대표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상장하는 이유 중 하나도 함께 노력해온 이들과 과실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7년간 수많은 투자를 받으면서 자신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6.67%였던 2020년 말 이후에도 추가 투자를 유치하며 현재 지분율은 5%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김 대표는 “회사가 잘되는 게 우선”이라며 “내 지분율은 5%든 50%든 상관없고 경영할 자격이 없다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입지보다 회사의 성장을 앞에 놓으며 경영해온 철학이 묻어나는 설명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도 남다르다. 김 대표는 화가 날 때면 마켓컬리에서 음식을 잔뜩 주문한다고 했다. “아침에 문 앞에 와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이런 걸 먹을 수 있다니.”

■ 김슬아 대표는

△1983년 부산 출생
△2007년 미국 웰즐리대 정치학과 졸업
△2007년 골드만삭스 홍콩지사
△2010년 맥킨지&컴퍼니 홍콩지사
△2012년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홀딩스
△2013년 베인 한국지사
△2015년 컬리(옛 더파머스) 창업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