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도 중대재해처벌법 수사하겠다"…숟가락 얹은 경찰
경찰청이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돌연 "수사권을 달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근로감독관에게 중대재해처벌 관련 수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가운데, 경찰은 "검경 수사관 조정에 따라 검찰 대신 우리에게 중대재해법 수사를 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산업안전보건본부라는 전문적인 대응 조직까지 출범시켜 놓은 고용노동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는 기업에게 큰 혼란을 던져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우리도 수사 가능해"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중대재해법 시행일에 맞춰 시행되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도 수정안을 추가로 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사법경찰직무법은 경찰이 아닌 조직에 사법경찰권한을 부여하는 법이다. 이렇게 사법경찰권한을 가진 경우를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라고도 하는데,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했을 때 수사를 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 의원 등이 제시한 개정법률안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만큼 근로감독관의 특사경 업무에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도 추가하자는 내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소관이 당연히 고용부라는 시각이 배경에 있다.

하지만 경찰청이 갑자기 개정법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면서 논란에 불씨를 당겼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권을 가져가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경찰 관계자가 의원실을 돌면서 개정법률안에 대해 설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대수 의원실에서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의견서에서 먼저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은 경찰과 고용부가 공동 수사하되, 중복되면 MOU를 맺어서 수사권을 조정하자"고 주장했다. 이유도 늘어놨다. 경찰청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광주 철거현장 붕괴사고에서 경찰이 광주노동청을 압수수색한 사례를 들며 "근로감독관이 사업주 등과 유착관계가 의심되거나, 위법이 있는데도 수사하지 않는 등 특수한 경우에는 경찰 개입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근거로 들고 있다. 노동관계법 수사는 현재 근로감독관과 검찰이 도맡아 하고 있지만 이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진행하는 게 맞다는 뜻이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경찰은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가진 노동관계법 전속 수사권을 폐지하고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미 광역수사본부 등에 중대재해 관련 전담 조직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이미 전담 수사조직 발족...재조정하면 산업현장 혼란 부를 우려"

고용노동부는 경찰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경찰 주장대로 할 경우 중복 수사와 과잉 수사, 지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용부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출범시킨데다 중대산업재해 수사를 위한 전담 조직에서만 감독관 110명을 증원한 상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고용부도 이미 중대법 수사만 전담하는 전문 조직을 갖춘 상황에서 공동수사를 하게 될 경우 과잉수사만 불러올 것"이라며 "법 시행 4개월 남은 상황에서 굳이 중대재해만 경찰이 공동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산업현장에 혼란만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근거 삼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담고 있는 개정 검찰청법 등은 검찰과 특사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광주 철거현장 사고에서 고용청을 압수수색한 것도 자료 진위 파악문제때문이었지 고용부의 유착이나 비위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 근로감독관의 업무수행이 불공정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 형법에 따라 근로감독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 그만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경영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찰이 근로감독관처럼 중대재해 관련 수사만 하고 갈지 의문"이라며 "가뜩이나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이 어려운데, 경찰은 상대적으로 관련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체에서 대외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임원은 "관할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업이 중복수사를 받게 되거나 수사 지연이 발생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악몽"이라며 "게다가 경찰은 예방이 아니라 처벌 위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어 산업현장의 혼란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수사권은 반드시 일원화돼야 하며, 아무래도 보다 전문성을 갖춘 수사기관이 대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전반적으로 입장정리가 안된 가운데 한국노총 관계자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장고에 들어간 것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당 관계자는 "특사경의 권한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안된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퍼져있다"면서 "이 이슈에 대해선 당론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법경찰직무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박대수 의원은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모든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경찰이 이제와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 며 "사업주 처벌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구제도 같이 병행해야하므로 근로감독관과 같은 안전보건관리 전문가가 수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