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 2라인 전경.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 2라인 전경. 삼성전자.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액이 17년 만에 1000만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정부와 산업계가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한 결과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불화수소는 전 세계 시장의 70%를 일본 기업들이 장악해왔다. 2019년 일본이 국내 기업들을 겨냥해 수출규제를 단행한 3대 품목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전 한국 무역협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 참석해 "수출규제 3대 품목의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며 "50%에 육박하던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를 10%대로 낮췄고, 불화폴리이미드는 자체 기술 확보에 이어 수출까지 이뤘으며, EUV 레지스트 또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국내 양산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국내 산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25%까지 줄였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중소·중견기업들의 활약은 소부장 산업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었다"며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소부장 중소·중견기업이 13개에서 31개로 늘었고, 소부장 상장기업 매출액도 다른 업종의 두 배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 소부장은 더 나아갈 것"이라며 소부장 2.0 전략을 토대로 한 소부장 으뜸기업 100개 육성, 5개 첨단 특화단지 조성 등 기업 지원 구상을 밝혔다. 이어 "소부장 자립을 이뤄낸 경험과 자신감은 코로나 위기 극복의 밑거름이 됐고, 더 강한 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이제 대한민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끄는 선도국가로 우뚝 설 것"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액은 938만달러로 일본의 수출규제 직전해인 2018년(6686만달러)보다 86% 줄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쓰는 필수적인 가스인데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사들은 이 소재를 일본에 거의 100% 의존했다. 이 소재를 반도체에 쓰기 위해선 순도 99.999%가 넘는 초고순도 불화수소가 필요한 데 사실상 이 정도 품질의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곳이 일본 기업들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에서 솔브레인이 고순도 불산액 생산량을 확대하고 SK머티리얼즈가 고순도 불화수소 양산에 성공하며 국산화에 기반을 다졌다. 이와 함께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일본산 외에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중국, 대만, 미국 불화수소의 비중을 늘렸다. 올해를 기점으로 불화수소 대일 의존도 비중이 더 감소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하나였던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는 2년 만에 대일 의존도가 50% 이하로 감소했다. 벨기에산 수입을 12배 늘리면서 다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듀폰, 도쿄오카(TOK) 등 글로벌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생산공정 중 '노광' 단계에 쓰이는데 이 역시 일본이 전 세계 90%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수출규제 이전까지 국산화율은 0%였다. 특히 EUV 노광장비는 당시 국내에서 삼성전자만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사실상 삼성의 초미세공정 경쟁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던 폴리이미드는 대일 의존도를 사실상 '제로(0)'로 만들었다. 폴리이미드는 불소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 등을 강화한 PI 필름인데 이 역시 일본이 전세계 생산량의 약 70%를 공급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 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불화폴리이미드' 제조 기술과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일부 기업은 휴대폰에 국내 대체 소재인 울트라신글라스(UTG)를 탑재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 기업들이 안정적인 소재 확보를 위해 '탈 일본'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기업들은 오히려 국내 투자를 늘렸다. TOK는 인천 송도에 있던 기존 공장에 수십억엔을 추가로 투자해 포토레지스트 생산능력을 2018년 대비 2배 늘렸다. 불화수소 생산기업인 다이킨공업도 내년 10월 충남 당진에 불화수소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다이킨공업은 그동안 불화수소를 중국에서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해왔는데 이를 아예 한국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불화수소를 공급하던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케미칼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간 60억엔(약 612억원) 수준의 매출 타격을 입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