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세계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밑돈다. 이 비율이 200%를 웃도는 일본과 100% 안팎인 미국 유럽 등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취약계층 복지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어느새 4540兆…정부·가계·기업 '빚더미'
하지만 이는 ‘반쪽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부채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함께 고려한 총부채로 보면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는 지적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는 가계와 기업 활동이 현저히 위축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중 상당 부분이 정부부채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총부채 관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최근 내놓은 2019년 말 기준 국가별 부채 자료에서도 이런 점이 분명히 나타난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 가계, 기업 등 3대 부문을 합산한 한국의 총부채(금융회사 제외)는 4540조원에 이른다. 부문별 부채 규모를 보면 비영리기관을 포함한 정부 759조원, 가계 1827조원, 기업 1954조원이다.

한국의 총부채는 지난해 한국 GDP의 237%라는 것이 BIS의 분석이다.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조사 대상 43개국 중 22위였다. 총부채가 많은 미국(254%), 유럽 평균(262%), 중국(259%) 등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총부채의 증가 속도다. 한국의 총부채는 지난해에만 290조원 증가했다. 2018년 말 GDP 대비 224%에서 지난해 말 237%로 뛰었다. 이는 싱가포르 칠레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른 속도다. 중국(9%포인트) 미국·일본(5%포인트) 영국(1%포인트) 등 주요국보다 증가폭이 훨씬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가계와 기업, 정부를 가리지 않고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라며 “정부는 전반적인 부채 위험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빚 지난해 1827조
GDP 대비 95% 넘어…상환능력은 계속 떨어져


한국은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정부, 가계, 기업(비금융)을 합친 총부채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세계 평균이 244%, 한국이 218%였다. 격차는 26%포인트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19년 말엔 세계의 비율이 243%, 한국이 237%였다. 한국만 유난히 빚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문별로는 가계부채가 가장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한국의 가계부채는 1827조원으로 GDP 대비 95.5%였다. BIS 기준 가계부채는 소규모 개인사업자 등 비영리단체를 포함한 것이어서 한국은행 통계(1600조원)보다 크게 나타난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세계 43개국 중 7위였다. 작년에만 3.6%포인트 증가했으며 한국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나라는 홍콩, 노르웨이, 중국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경제 위기로 가계 소득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 그만큼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은 약화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부채(금융회사 제외)는 1954조원, GDP 대비 비율은 102.1%였다. 세계 17위 수준으로 가계부채보다는 양호했다. 하지만 빚 증가 속도는 가계부채 못지않았다. 부채비율이 작년에만 6.4%포인트 올라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민간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2018년 1.8%포인트에서 작년 0.5%포인트로 떨어져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경제 침체가 심각했다”며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약해지니 부채 비율이 오르고 재무 구조가 나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도 신용등급 하향 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작년 정부부채(759조원)는 GDP 대비 비율이 39.6%로 세계 평균(87.0%)보다 크게 낮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증가 속도가 세계 최상위권이어서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작년 2.8%포인트 뛰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올랐다. 지난해 정부가 재정 지출을 11.7%나 늘린 탓이다. 이는 54조4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 재정 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로 이어졌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