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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는 삶이 머문 자리, 박완서의 책상이 빚어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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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김성민의 시간의 기록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엎드려서 글을 쓰다가 밥상을 놓고 글을 쓰니 이렇게 좋은 것을, 하고 좋아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이젠 버젓하게 큰 책상에다 의자에 앉아서 쓴다.”

    가족을 돌보다가 틈틈이 방에 엎드려 쓴 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작가 박완서. 마흔의 작가가 자기만의 책상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였다. 최근 서울대 헤리티지 라이브러리에 조성된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에서 그 책상을 만났다.

    ‘아치울 서재’라고도 불리는 이 공간은 작가가 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구리시 아치울 ‘노란집’의 서재를 재현한 곳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는 희귀해진 백과사전을 비롯한 여러 장서가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책장 옆에는 작가가 타계할 때까지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상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이 탄생했다. 책상 위에 걸린 사진 속 작가의 환한 미소는 마치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하다.
    서재와 책상 / 사진. © 김성민
    서재와 책상 / 사진. © 김성민
    서재에 걸린 <박완서 사진> / 사진 출처.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도록
    서재에 걸린 <박완서 사진> / 사진 출처.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도록
    서재 옆에는 ‘생각만으로 비죽비죽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아치울 정원이 펼쳐져 있다.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커다란 살구나무가 정원을 채우고 나무 아래 뜰에는 아이비, 고사리 등 갖가지 식물이 심겨 있다. 그럴듯하게 흉내 낸 조화가 아니다. 싱싱하게 숨 쉬는 식물이다. 아파트 생활로 숨 막혔던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을 주었던 곳인 만큼 공들여 재현하고 있다. 노년에 얻은 마당은 유년의 뜰을 닮아갔다. 직접 호미를 들고 식물을 가꾸며 흙을 주무르는 일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작가는 유려한 선을 지닌 호미를 예찬했다. 컴퓨터로 글쓰기 전에 좋은 만년필 몇 개를 가지고 있을 때 든든한 것처럼 손에 잘 맞는 호미도 그에 못지않은 흐뭇함을 안겨주었다.
    정원 정면 / 사진. © 김성민
    정원 정면 / 사진. © 김성민
    호미 / 사진 출처.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도록
    호미 / 사진 출처.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도록
    호미로 김을 매듯, 작가는 성실하게 작품세계를 가꾸었다. 1970년 등단 이후, 2011년에 타계할 때까지 4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했다. 장편 15편과 9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해 산문과 동화, 콩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세계를 남겼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박완서는 조선 시대의 양반집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에 일본으로부터 해방의 감격을 맛보았으며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그해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학업을 중단했다. 목숨을 잃은 오빠를 대신하여 생계를 위해 미국부대 PX에서 일했던 일화는 첫 소설 『나목』에 담겨 있다. 이후 산업화, 중산층의 형성 등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당시의 시대 의식을 작품에 반영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곧 한국 근현대사다. 그래서일까. 육중한 시간의 부피를 체험한 작가는 ‘500년은 산 것 같다’고 회고한다.

    “내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이상 그 피로 뭔가를 써야 할 것 같다. 상처가 아물까 봐 일삼아 쥐어뜯어 가면서라도 뭔가를 쓸 수 있는 싱싱한 피를 흐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건 내 개인적인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쓰기 위해 상처를 아물게 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피 흘리게 하는 그 무서운 집념이 40년 문학 여정을 이룬 바탕일까. 그의 작품을 읽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작품에 영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지낸 시절을 뒤로하고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증언한다. 박완서 아카이브는 그의 작품세계를 ‘전쟁, 대중, 여성’ 세 가지 줄기로 갈무리하며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 된 작가의 여정을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전시의 백미는 그의 내밀한 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품들이다. 육필 원고자료, 사진, 편지, 손길이 묻어 있는 재봉틀 등 생활사 자료에서 ‘인간 박완서’를 만난다. 특히 ‘생을 향한 사랑의 기록’이 담긴 열한 권의 일기에는 손으로 쓴 소소한 일상과 꾸밈없는 감정이 가감 없이 표출되어 있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하루하루 일상과 순간의 감상을 놓치지 않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나타난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부한 묘사의 비결이 매일의 기록에 있었다. 오백 년이라는 시간의 부피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거장의 삶이 이토록 소박한 일기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전시장 천장에 실로 매달린 일기장의 낱장들은 단연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일렁이는 종이들이 마치 작가의 생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일기 전시 공간 전경 / 사진. © 김성민
    일기 전시 공간 전경 / 사진. © 김성민
    일기 낱장 / 사진. © 김성민
    일기 낱장 / 사진. © 김성민
    원고를 쓰고 살구잼을 만드는 그의 모습을 일기에서 본다. 글을 쓰면서 반찬을 만든다. 글쓰기의 리듬이 곧 생활의 리듬이었다. 글쓰기와 살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며 서로를 돌보았다. 작가에게 머리를 쉬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고단할 정도로 노동할 때 머리가 맑아진다고 말했다. 쓰기로 인한 긴장을 몸을 움직이는 살림으로 풀고, 일상에서 얻은 활력을 작품의 동력으로 삼았다. 시대의 무거움과 일상의 가벼움을 매끄럽게 결합하는 작가의 역량이 구체적 생활 속에 있었다.

    전시 제목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은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의 부제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며 각자의 선물을 준비하는 이야기처럼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이한 올해, 박완서 아카이브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그의 문장이 우리 곁에 있다.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이자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유산이다.

    김성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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