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황제 김기민 "나의 전설들과 경쟁한다,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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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 김기민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亞 발레리노 최초 마린스키 입단
15년간 최정상을 지켜온 비결
아르떼 매거진 1월호 특별판
발레는 기술보다 감정의 예술
작년말 부상…모스크바서 재활
"일상의 감각, 무대에서 쓰일 것"
후배 무용수들을 위한 조언
"댓글 아닌 무대 위해 춤춰라"
亞 발레리노 최초 마린스키 입단
15년간 최정상을 지켜온 비결
아르떼 매거진 1월호 특별판
발레는 기술보다 감정의 예술
작년말 부상…모스크바서 재활
"일상의 감각, 무대에서 쓰일 것"
후배 무용수들을 위한 조언
"댓글 아닌 무대 위해 춤춰라"
김기민에 대해 관객과 평단은 “무대 위에 음악이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마린스키 극장도 그에 대해 “마치 클래식 자동차 엔진처럼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워 고전 발레의 품격을 되살린다”고 평한다. 전 세계 발레계가 인정하는 우리 시대의 발레 황제 김기민을 만났다. 한국경제신문 아르떼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 만남 이후 약 6개월에 걸쳐 몇 차례 인터뷰를 더 했다. 올해는 김기민의 마린스키 입단 15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10년이 되는 해다.
◇열 번 춤추면, 열 번을 다 다르게
“슬프지 않았어요. 운이 없어 빙판길에 미끄러진 정도의 사고인걸요.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찍는데, 오히려 무대 위에 서지 않는 반년짜리 계획이 그려졌어요. 쉬면서도 일상 속 감각을 열어두고 예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언젠가는 무대에서 쓰일 거니까요.”
그는 재활 기간을 모스크바에서 보내고 있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겨울 공기의 결을 느끼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다고. 그가 러시아 생활 15년 동안 잃지 않은 예술가로서의 원칙과 철학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용수에겐 기술보다 감정이에요. 아무리 연습량이 많아도 감정의 방향을 점검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바로 드러나거든요. 스승인 블라디미르 킴은 ‘연습을 열 번 하면 열 번 모두 다른 감정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게 저의 기준이 됐죠.”
◇흑백의 도시에서 색을 배우다
열아홉 살, 당시 김기민의 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경은 흑백사진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기서 버티면 어디서든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도시는 점차 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그가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로 이어졌다. 경험이 쌓일수록 움직임은 단순해졌고, 감정은 더 또렷해졌다.
마린스키 극장의 객석은 냉정하다. 잘한 공연에는 박수가 쏟아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침묵이 흐른다. 러시아의 ‘국민 예술’인 만큼 함량 미달인 공연에 관용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김기민은 그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입단 초기에 한 관객이 ‘러시아 발레는 그게 아니야’라고 조용히 말했어요. 충격이었죠. 연습량에만 몰두하는 양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무대 위에서 그날그날의 살아 있는 감정을 즉흥적으로 뿜어내는 것에 집중하게 됐어요.”
김기민은 무대 위에서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저는 파트너가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 공연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어가 서툴던 시절엔 공손한 러시아어 문장을 적어서 파트너에게 건네기도 했어요. 무대 위에서 감정의 리듬을 맞추는 일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저는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전설들과 경쟁하죠. 도달할 수 없어도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제 춤이 생겨요. 그래서 ‘누가 최고인가’와 같은 질문은 부질없어요. 과연 예술에 1등이라는 게 있을까요?”
◇“댓글을 위해 춤추지 말라”
“제발 댓글을 위해 춤추지 마세요. 무대를 위해 춤을 추세요. 진짜 관객은 객석에서 박수 치는 사람들이에요.”그는 요즘 무용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피상적인 호응, 때론 이유 없는 비난이 예술의 방향을 흐릴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잘하는 모습만 강요되고, 보이는 SNS나 커뮤니티 공간에서 무용수의 멘털이 흔들리는 걸 수없이 많이 봐온 그다.
한국 발레에 대해 그는 “기술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가끔은 고전 발레가 가진 향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고도 직언했다. “고수로 김치를 담그면 향이 너무 강해지는 것처럼 본질보다 표현이 앞서면 본래 맛이 사라진다”는 비유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발레의 가능성을 믿는다. 특정 스타에게 의존하지 않고 어떤 작품이든 자연스럽게 관객이 찾는 구조가 갖춰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마린스키 입단 15년을 맞은 지금, 김기민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 곧고 굵은 심지에 더 타오를 불꽃이 있다. 누군가는 김기민을 정상의 무용수라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작점에 선 사람처럼 준비한다. 다시 그가 무대로 걸어 나오는 순간 관객은 그의 가장 진한 색을 마주할 것이다.“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그래서 조심스럽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어요. 저는 이제 시작입니다.”
이해원 기자/사진=Alexader N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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