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발랄함 뒤 묻어둔 상처…사춘기 소녀 '주인'의 비밀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윤가은 감독 신작 '세계의 주인'

    여고생 주인 "성범죄 피해자는
    평생 고통받는다"에 동의 못해
    같은 반 수호와 대립 끝 주먹다짐
    주인의 분노 이유, 후반부서 추적

    토론토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경이롭고 좋은 영화 미덕 갖춰"
    윤가은 감독의 신작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윤가은 감독의 신작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교실마다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누군가를 놀리는 소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 어느 고등학교에나 존재하는 소리. 이 소리의 저편에 또 다른 은밀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키스하는 소리. 사실상 학교는 사춘기 정점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성적 에너지가 가득한 공간이다.

    올해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된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2016)로 한국 독립영화 주요 감독으로 부상한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 초반에는 어느 고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러니까 여고생 이주인(서수빈)과 주인의 친구들이 성적 호기심을 해소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린다. 주인은 연애를 하고, 주인의 절친 유라(강채윤)는 야한 웹툰을 그리는 등 십 대 소녀들은 각자 방식대로 건강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영화는 주인의 같은 반 친구 수호(김정식)가 동네에 이사를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범죄자의 이사 반대 서명을 주인이에게 요구하며 전혀 다른 국면으로 머리를 튼다. 주인은 서명문의 한 문구인 “성범죄 피해자들이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간다”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서명을 거부한다. 완전히 인생이 망가진다든지, 평생을 고통에서 살아간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둘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결국 그들의 갈등은 주인이 수호를 가격하는 것으로 정점에 이른다.

    이쯤 되면 반 아이들도, 관객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이 예민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인은 정말로 성범죄 피해자인지. 발랄한 에너지가 충만한 청춘 영화는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적하는 미스터리극으로 변모한다. 수호와 벌인 몸싸움으로 수호와 교장실로 불려 간 주인은 어쩔 수 없이 본인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날 몇 년간 눌러 참았던 분노와 회한이 주인을 잠식해 버린다.

    앞서 언급했듯 ‘세계의 주인’은 청초한 외피를 지녔지만 내부가 깊고 두꺼운 영화다. 마치 주인과 주인의 삶이 그러하듯 말이다. 극명하게 다른 영화 전반과 중반 이후, 즉 겉으로 보이는 주인의 모습과 실제 주인의 이야기, 두 개의 드라마 끝에서 영화는 하나의 단호한 ‘성명’을 전한다. 그것은 한 소녀가 지켜낸 존엄에 대한 찬사다. 영화는 주인이 그토록 처절하게 지켜낸, 지켜나가고 있는 소중한 일상과 존재, 나아가 주인과 비슷한 과거·현재를 공유하는 수많은 존재를 향해 나직한 경의를 전한다.

    참으로 경이로운 영화다. 이토록 유연하며 굳센 영화가 있을까. 윤 감독은 성공적 전작인 ‘우리들’과 ‘우리집’에서도 더 진화하고 심오한 프로젝트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과연 좋은 영화의 미덕과 옳은 영화의 본을 함께 갖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를 필두로 곧 열릴 일본 도쿄필름엑스와 네덜란드 레이던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말 오랜만에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코리안 시네마’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이제는 한국 관객의 화답만 남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ADVERTISEMENT

    1. 1

      시나리오부터 편집까지…메가폰 잡은 AI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이 시나리오 초고를 단 1주일 만에 완성한다. 카메라나 세트장 없이 간단한 명령어만으로 영상과 효과음까지 구현한다.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제작 과정이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해졌다....

    2. 2

      [이 아침의 작가] '헬로우 고스트' 흥행…영화감독 겸 소설가

      김영탁(사진)은 영화감독 겸 소설가다.2011년 영화 ‘헬로우 고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이 영화는 죽는 게 소원인 외로운 남자 상만(차태현 분)이 귀신을 보기 시작하면서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

    3. 3

      [책마을] 2026년은 '매그넷 10'과 '5Re'가 지배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점에는 내년 전망서가 쏟아진다. ‘초불확실성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올해는 출판사도 독자도 예년보다 이르게 내년 채비에 나섰다. 인공지능(AI)의 질주와 AI가 불러온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