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반복과 순환에 대하여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어느 날 아내가 데려온 고양이
우리 마음의 안녕과 평온함은 일상에서 온다. 우리의 일과는 날마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반복과 순환하는 리듬에 맞춰 이루어진다. 고양이들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아작아작 깨물어 먹는다. 아침에 갈아입은 셔츠에서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떠돈다. 우리는 출퇴근을 하지 않고 각자 책상 앞에서 앉아 다른 상상을 하며 그걸 글로 풀어낸다. 진작 눈치를 채셨겠지만 우리 직업은 작가다. 우리가 쓴 원고는 돈으로 계산되는데, 우리가 번 돈은 생활비와 고양이 사료 값, 공과금과 세금 명목으로 지출된다.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수행하느라 바쁘고 자주 무료하고 주의력은 산만하다.
어느 날 아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반려동물은 애초 인생 계획에는 없던 일이어서 의아했다. 고양이를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 낯선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인 고양이는 거실을 꼼꼼하게 탐색하고 밤이 되자 내 발치에 조용히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하룻밤을 보냈다. 겨우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이 생명체가 발산하는 사랑스러움을 내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려동물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밥과 잠자리를 준다. 고양이는 우리에게 기쁨과 영감을 준다. 이 거래는 상호 간에 이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고양이는 유기묘 출신이다. 두 번 입양을 갔다가 두 번 파양을 당했다. 고양이의 파양 사유는 너무 자주 울었던 탓이다. 고양이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고양이는 이유 없이 울지 않는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내는 데 재능이 있을 뿐이다. 고양이가 우리 곁에서 코를 골며 잘 때 일상의 평온을 실감한다. 고양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제 털을 핥으며 정성스럽게 몸단장을 한다. 고양이는 높은 데 달린 손잡이를 당겨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가 문 여는 걸 주의 깊이 살펴보고 그걸 따라 한 것이다. 우리는 고양이가 예민한 청각과 후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꽤 영리하다는 데 동의한다.
예이츠 시와 골골송의 하모니
비 오는 밤엔 고양이에게 예이츠 시를 읽어준다. 고양이는 예이츠 시를 듣다가 잠이 든다. 우리가 제 등덜미를 쓰다듬을 때 고양이는 골골송을 부른다. 우리는 그걸 고양이가 건네는 사소한 불행에 대한 위로라고 여긴다. 고양이는 밤마다 우리 침대에 올라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잔다. 종을 초월한 이런 우정이 다섯 해째 이어지는데, 어느 날 고양이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개구(開口) 호흡을 하는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간다.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과 피 검사를 마친 뒤 고양이 배 속에 배출하지 못한 똥이 그득한 걸 알게 되었다. 변비에 걸린 고양이라니! 우리는 고양이의 속사정에 쓴웃음을 지었다. 변비 처방을 받은 고양이는 예전처럼 사냥놀이에서 기쁨을 얻고 골골송을 부른다.
고양이를 입양한 뒤로 일상은 더 다채롭고 변화무쌍해진다. 이제 우리는 다섯 해째 고양이와 일상을 공유한다. 하얀 털로 뒤덮인 고양이, 일상의 가장 소중한 일부가 되어버린 고양이는 무엇일까? 이것은 일상에 틈입한 풍요로움, 놀라운 사건, 미래의 기적이었다. 고양이는 예민한 후각과 촉수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미래를 알아챈다. 고양이는 먼저 온 미래를 기쁨으로 전환한다. 미래의 밀도가 성긴 일상은 지루함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고양이들은 날마다 변신한다. 그 변신으로 밋밋한 일상에 파도를 일으킨다. 우리는 전보다 훨씬 일거리가 많아졌지만 고양이의 매력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중이다.
우리는 나이를 더하며 늙어간다. 늙어갈수록 갈망한 것을 거머쥐는 일에 자주 실패한다. 우리는 실패라는 자산을 쌓고 실패의 속도에 적응한다. 우리는 세상에 없는 책을 써내는 데 실패하고, 바닷가에서 호젓하게 살려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실패한 자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는 실패한 자들의 실패를 모방하며 산다. 치사량의 귀여움이 천성인 고양이에겐 실패의 쓰라림이 없고, 실패에서 오는 트라우마도 없다. 고양이들은 도무지 실패를 모른다. 고양이들은 실패에 항상 실패한다는 점에서 경이로운 존재다.
어제 죽은 이들이 갈망한 것
일상으로 돌아가자. 일상이란 자아를 빚는 거푸집이고 세속의 공격과 무례에서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 그리고 경험치를 쌓고 성장과 쇠락을 겪는 기반이다. 일상은 “실행과 실천적 지식의 유동적인 조합이고, 활력과 소진의 현장”(캐슬린 스튜어트)인 것이다. 우리는 말과 침묵을 올실과 날실로 해서 일상이란 피륙을 짠다. 우리는 날마다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싫든 좋든 많은 말들을 내뱉는다. 말은 허섭스레기 같아 그 거둘 수 없음에 후회를 한다. 반면 침묵은 무겁고 화사하게 빛난다. 우리가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은 마음에 편안한 자리를 내주며 안주하기 위함이다.
고양이는 활발하게 뛰논다. 우리는 활력과 소진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책상에서 일한다. 숭고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이것이 일상이다! 그것은 숱한 기회의 유실, 욕망의 좌절과 쓰라린 실패로 이루어지는 환상이 끝난 뒤 펼쳐지는 작은 지평이다. 하찮은 일을 반복하고 실패를 겪으며 흘려보냈다 해도 오늘의 일상은 어제 죽은 자들이 갈망한 것일 수도 있다. 일상은 오직 살아 있는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의미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 일상이 활기차고 빛나야 우리 생도 빛날 수 있을 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