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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도시는 느리게, 그러나 바르게 변화한다–부산의 문화적 원림, F1963과 PDM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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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종현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지속가능경영학회 부회장 겸 ESG위원장
    이 글은 디자인하우스가 운영하는 프로퍼티 디자인 최고과정에 필자가 직접 참여하며 F1963과 PDM을 수업과 현장 투어를 통해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도시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사람과 관계, 삶의 리듬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체감하며 쓴 기록이다.

    산업의 흔적 위에 피어난 문화적 창의 – F1963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F1963은 본래 고려제강의 모태가 된 수영공장이 있던 자리다. 1963년부터 45년간 와이어 로프를 생산하던 이곳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그린과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철과 기계의 음향이 지배하던 금속의 공간은 이제 창의와 사유, 커뮤니티의 흐름이 깃든 문화의 마당이 되었다.

    이 공간은 기존 건물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용도에 맞춰 리노베이션된 대표적 재생 건축 사례다. 철근을 철거하지 않고 예술적 상상력을 더한 이 공간은 종합적인 문화 콘텐츠를 담아내는 창의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석천홀, 달빛가든, 소리길, F1963 도서관, 북타워 등은 각각의 기능을 가지면서도 서로의 의미를 확장하며 공간 전체가 도시형 원림으로 기능하고 있다.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은 “산업시설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고 해서 철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흔적과 장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 새로운 가치로 재해석될 수 있다”고 말하며, “F1963은 철강산업의 기반 위에서 문화와 예술이 호흡하는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단순한 공간 리노베이션을 넘어, 기업이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의 모델로 F1963을 조성했으며, “기술 혁신뿐 아니라 문화기반 조성도 기업의 중요한 역할”임을 누차 밝혀왔다.

    책과 음악, 도시의 감각을 확장하는 공간

    F1963 도서관은 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국내외 작가의 작품집, 고전 음악 음반, 미술관 도록 등 13,000권 이상의 예술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열람 공간을 넘어 예술 아카데미, 실내악 연주, 강연 등을 통해 도시민의 감각을 회복하는 지식의 원림으로 기능한다.

    한편 금난새 뮤직 센터(Gum Nanse Music Center)는 금난새 지휘자의 철학이 구현된 공간이다. 사면이 유리로 된 구조 속에서 연습과 공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음악은 단절된 공간이 아닌 도시의 생활과 관계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공연장 외부에서도 리허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곳은 클래식의 울림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몽석적 공간이다.

    현대자동차 모터스튜디오 부산 – 디자인으로 일상을 재구축하다

    현대자동차는 F1963 내부에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을 개관하며, 디자인 기반의 감성적 경험 공간을 선보였다. 이곳은 자동차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디자인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이야기하는 실험실이자, 브랜드와 도시, 사람 사이의 새로운 감각적 연결을 시도하는 장소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디자인의 힘에 주목한다는 의미인 ‘Design to live by’라는 철학 아래 이루어진 전시와 클래스, 미디어아트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산업 브랜드가 도시문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적인 도시문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철강 구조물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조형된 외관, 와이어와 철골을 활용한 내부 디테일은 금속의 구조적 상징성과 디자인의 감각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느리지만 바른 방향 – 공간 맥락을 존중한 커뮤니티 디자인

    F1963과 모터스튜디오가 보여주는 철학은 빠름과 효율보다는 맥락과 삶의 결을 존중하는 도시철학이다. 이 흐름은 인근의 PDM(Project Design Management)이 실험하는 슬로우 디스트릭트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진다.

    PDM은 오래된 골목, 상가, 주택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쓰임을 더하는 개발 방식을 통해 도시 원림의 현대적 구현을 실현하고 있다.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 중심의 도시를 지향하는 이 철학은 건축을 통해 삶의 리듬을 재설계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고성호 PDM 대표는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단순히 형태를 짓는 것을 넘어서, 건축물이 가지는 긍정적인 파급효과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건축이 곧 도시의 관계망을 짜는 실천이라는 선언이며, 금속의 구조 안에 따뜻한 사유를 담아내는 몽석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PDM은 슬로우 디스트릭트 외에도 폐건축자재를 활용한 디자인 실험, 커뮤니티 기반의 식음 브랜드 개발 등 복합적인 도시문화 모델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설계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의 도시 만들기를 지향하며, 도시가 곧 사람의 기억과 행동이 담기는 그릇임을 전제로 삼는다.

    도시 원림의 재발견 – 디자인이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다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한 리노베이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도시의 산업적 기억 위에 사람과 창의, 관계와 감정이 쌓여가는 이 흐름은 동양적 개념의 원림이 지닌 사유와 생명성의 공간이라는 본질과도 닮아 있다.

    F1963의 철골은 여전히 산업의 물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음악과 책, 전시와 대화는 이미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곳은 금속과 예술, 브랜드와 공동체가 종합적으로 공존하며 도시의 감각을 되살리는 실천적 공간이다.

    기대효과 – 지속 가능하고 연결된 도시를 향해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문화시설’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진다. 산업유산을 재생하며 도시 정체성을 회복하고, 브랜드가 디자인과 예술을 통해 도시의 문화적 진화를 이끄는 과정은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제안한다.

    F1963의 사례는 지역 커뮤니티의 활력을 회복시키며,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을 설계 언어로 구체화하고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은 디자인 중심의 감성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문화적 메시지로 확장하고 있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적 경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PDM의 슬로우 디스트릭트 실험은 도시재생을 일방향적인 개발이 아닌 지역성과 삶의 결을 살리는 커뮤니티 중심 설계로 바꾸고 있다. 골목의 맥락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담아내는 방식은, 도시가 단순히 외형적 ‘정비’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설계와 운영을 동반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도시의 경제, 문화, 환경, 인간적 가치가 종합적으로 연결된 지속가능 도시 생태계 구축의 출발점이자, 다른 도시로 확산 가능한 실천적 모델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맺으며

    F1963과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그리고 PDM이 실험하는 도시디자인은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도시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들은 빠르게 짓고, 크게 확장하는 개발이 아닌, 관계와 기억, 여백과 감각을 중심으로 도시를 다시 설계하자고 말한다. 금속의 구조에 예술과 사유를 얹고, 디자인과 철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이 시도는 몽석처럼 단단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가진 공간의 제안이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이 질문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다. 도시가 ‘장소’가 아닌 ‘관계’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건축과 디자인이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공간은 결국 사람이 머물고 사유하고 함께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머무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그 답을 찾고 싶다면, 지금 F1963과 PDM이 있는 망미동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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