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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와 미켈란젤로, 부(富)의 철학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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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

    인문학을 배워야 주식에서도 돈을 번다.
    괴테 <이탈리아 기행>
    사람들은 금수저가 아닌 자신의 배경을 원망하며,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를 부러워하곤 한다. 돈도 많고 세상에 남 부러운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마음껏 세상을 누비고 다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란한 역사와 함께 자연이 아름답게 펼쳐진 이탈리아 여행은 누구에게나 꿈이다.
    이탈리아 도시,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 / 사진출처. Centro Commerciale Naturale Ortigia
    이탈리아 도시,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 / 사진출처. Centro Commerciale Naturale Ortigia
    손에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을 들고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누비는 상상을 해보자.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는 글이 잘 쓰이지 않자 여행으로 재충전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의 아버지의 권유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쓴 이탈리아 기행기를 아들이 읽도록 하고 자신의 자취를 따라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를 바랐다. 괴테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경제·과학·미술·음악·자연·정치 등 수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와 똑같은 경로로 가야 했지만, 훨씬 편하게 그리고 멀리 가야 했다.”

    그에게서 아버지란 존재는 어떠했을까? 요한 카스파르 괴테는 제법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황실고문관으로 그럴듯한 삶을 살았다. 재산은 있었지만, 평생 뚜렷한 직업을 갖지 못한 괴테의 아버지는 자신이 귀족이 아니라서 신분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아들만은 멋진 직업을 갖고, 귀족이 되어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랐다.
    티슈바인 <캄파냐의 괴테>, 1787년 / 그림. © Städel Museum
    티슈바인 <캄파냐의 괴테>, 1787년 / 그림. © Städel Museum
    괴테는 자서전에서 그가 남달리 훌륭한 환경에서 출생했지만, 아들의 교육과 성공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가 있었음을 알린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는데 그가 1786년 10월 어느 날, 2000년간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를 방문한 대목에 눈이 간다. 괴테가 콜로세움, 개선문,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게 된 장면에서 멈추고 하늘을 본다. 문득 미켈란젤로는 어떤 가문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을지가 궁금하다. 혹시 미켈란젤로도 누군가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린 괴테가 살았던 집의 2층에는 집의 경관을 해치는 창문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괴테의 아버지는 일부러 창문 하나를 더 만든다. 그의 아버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요즘 같으면 밀실을 만들어 소음을 방지하는 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햇볕이 잘 들어오는 게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걸까 매우 궁금해진다. 혹시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어린 괴테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창문은 아니었을까? 하긴 그의 집 창문에서는 길가가 훤히 내려 보인다. 어린 괴테가 등하교하는 장면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괴테의 집에서 일반인의 생각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괴테의 집 사진을 유심히 관찰하면 창문 앞 팔을 기대는 부분이 심하게 닳아 있는 걸 알 수 있다. 얼마나 자주, 오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면 나무가 움푹 들어간 걸까? 추측하건대, 아버지가 창문을 하나 더 만든 이유는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독일 화가로 괴테의 후배이자 친구 티슈바인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베리(Frederich Bury,1763~1823)가 그린 ‘괴테(오른쪽 세번째)와 이탈리아 친구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화가로 괴테의 후배이자 친구 티슈바인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베리(Frederich Bury,1763~1823)가 그린 ‘괴테(오른쪽 세번째)와 이탈리아 친구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누군가는 돈만 생각하며 수많은 가정교사와 괴테의 멋진 집만 눈에 들어올 것이다. 괴테의 집에서 비밀의 열쇠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창문 앞 움푹 들어간 곳이다. 이 지점이 돈의 힘을 넘는 곳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사실 돈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재능을 깨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대개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창문 앞 움푹 들어간 곳에서 괴테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면, 비약일까?

    어린 괴테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창문 앞 나무가 마모되어가는 시간과 오버랩되어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곳에서 괴테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자식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지켜주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우리네 사회에서는 사치가 되어버린 것일까? 괴테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을 생각하니 한국의 일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된다. 흔히 어떤 아버지상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다를 수 있겠지만, 요즘은 친구 같은 아빠, 자상한 아빠를 원할 것 같다. 그중에는 ‘부자 아빠’를 원할 수도 있겠다.

    사실 보통의 한국의 아버지는 측은한 존재다. 그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귀가하는 데 익숙하다. 휴일은 잠으로 때우기에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멀어져 가고 ‘벽’으로 남는다. 유교 문화권에서 아버지는 가부장적 존재로 남아 실천적 행동을 보여주기보다는 명령과 지배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내세운다. “교육이요? 무관심이 최고죠. 아빠 말 들으면 엄마랑 싸움만 나요. 할아버지의 돈,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 교육에 최고라는 말이 왜 나오겠어요.”

    자녀 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가족 속에서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며 씁쓸한 황혼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괴테의 아버지가 참 현명하게 느껴진다. 괴테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리네 아버지들이 자식을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보는 상상을 해본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은 무척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폴 앵카(Paul Anka)의 팝송의 가사 일부가 생각난다.

    ‘Everyday my papa would work to help to make ends meet(날마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셨지요) / To see that we would eat, keep those shoes upon my feet(당신의 자녀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시기도 하고, 신발도 신겨 주셨던 아버지) /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또한 잠이 들 시간이 되면 내 침대맡에 앉아 이불을 덮어주시고) / Kiss me on my head after all the prayers were said(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잘 자라며 키스를 해주셨지요) / Growing up with him was easy time just flew on by(아버지와 함께한 세월은 쉽게 금방 지나갔어요) / The years began to fly, he aged and so did I(세월은 그렇게 흘러 아버지는 늙으셨고 저 또한 나이가 들었네요)’

    [Paul Anka - Papa]

    우리네 일상을 노래하는 곡이라는 생각에 아버지의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나? 세월이 지날수록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측은해하며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다면 자식이 서울대 의대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따스한 아버지의 덕택이었나?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재탄생했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예술체험을 하고, 자연·문학·과학·미술·음악 등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괴테는 자서전에서 그가 남달리 훌륭한 환경에서 출생했지만, 아들의 교육과 성공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가 있었음을 알린다. 아버지는 직접 혹은 훌륭한 가정교사를 통해 어린 괴테에게 영어와 이탈리아어, 고대 언어를 가르쳤고, 미술·음악에서부터 승마·스케이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을 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접점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조화다. 아버지의 교육열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괴테가 커다란 호수를 누비는 것처럼 포용력 있게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아버지 덕택에 다양한 인간군을 만나면서 괴테는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와 긍정적인 세계관을 갖게 됐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경로(1786~1788). / 사진=필자 제공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경로(1786~1788). / 사진=필자 제공
    삶을 살아가는 데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괴테도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책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에는 정보 제공, 재미, 감동 중 어느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독성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차라투스트라의 팬이면 모를까 일반인에게 읽으라고 강권할 필요는 없다. 물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몰입이 되는 사람에게는 다른 문제다. 각자의 취향이 다른 점을 잘 지적한 것이다.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전을 읽으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고전을 읽을 의무는 없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피렌체를 오늘의 피렌체로 만든 것은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경영능력과 정치수완으로 메디치가는 유럽 최고의 부자 가문이 됐다. 메디치가는 집을 지으면서도 귀족들이 많이 살고있는 동네가 아닌 시장 바로 옆에 집을 지었다. 대중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메디치 가문의 부흥자인 코지모 데 메디치는 ‘겸손’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어느 날 그는 공원을 지나다 조각을 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노인을 조각하고 있는데 이빨이 너무 가지런했다. 로렌조가 말했다. “이빨이 노인치고는 너무 젊은 것 같아. 다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음날 소년은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 온다. 로렌조는 그의 아버지를 불러 아이를 양자로 삼겠다고 한다. 그가 미켈란젤로다. 명문가의 후원을 입은 미켈란젤로는 최고의 인문학 교육을 받으며, 인류를 위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소년을 양자로 삼아 미술 교육 이전에 최고의 인문학 교육을 했다는 점에서 메디치가의 혈통의 우월함을 느껴본다.
    미켈란젤로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미켈란젤로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식들을 괴테나 미켈란젤로 같은 인물로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묻고 싶다. 빚을 내거나 재산을 모두 쏟아 부어 내 자식 하나만은 최고의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상상력의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메디치가 같은 명문가는 영원히 존재하기 어렵다. 만약에 내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다면, 나는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가 생각했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 높은 학벌과 지위를 가진 부모 밑에서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의 운명이 서글퍼진다. 정답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괴테처럼, 미켈란젤로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참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리라.

    인문학 지식은 주식 시장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주식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특히, 동양 고전이나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인간 심리를 주식 시장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인문학의 위대함을 이제는 식상해진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스티브잡스 / 사진. 한경DB
    스티브잡스 / 사진. 한경DB
    “애플의 창의적인 제품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의 이 말 한마디가 인문학의 잔잔한 바다에 거센 파고를 불러일으켰다. 누구는 이를 상술로 치부하지만, 기술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해져야 한다. 상상력이 우리를 춤추게 하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초에서 이루어진다. 부의 인문학은 그래서 필요하다. 모든 부와 돈벌이의 바탕은 인간에 대한 공감과 배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원경 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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