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오페라도 아쉽지 않다…베르디 본질 꿰뚫은 라 페니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콘서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리뷰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려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라 페니체 극장이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콘서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정식 오페라 무대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나 의상 없이 진행하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 공연이다. 1792년에 개관한 라 페니체 극장에서는 많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초연되었는데, 특히 1855년 초연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로 내한했다는 것은 한국 공연사에 있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한 페이지로 남을 만하다.
더욱 가슴 벅차는 것은 라 페니체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자로 손꼽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했다는 점. 라 페니체 신년 음악회를 비롯해 많은 프로덕션을 이끈 그의 카리스마에 의해 이탈리아인으로서의 베르디의 정수는 물론이려니와 지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악단의 정체성까지를 서울에서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청중에게 있어서 대단히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올레타 역으로 최근 유럽 무대에서 가장 핫한 소프라노로 주목받는 올가 페레짜트코가 합류하여 첫 내한공연으로서의 화제성을 끌어올렸다.
2016년 라 스칼라 극장이 정명훈과 함께 롯데 콘서트 홀에서 가진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콘체르탄테 같은 경우에는 오케스트라는 물론이려니와 합창단과 솔리스트가 모두 현지에서 넘어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라 페니체 내한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만 건너와 약식 연출을 가미한 단 한 번의 콘체르탄테 공연을 한다는 것에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정작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이러한 아쉬움이 완전히 연소됨은 물론이려니와 그 이상의 극장적 희열에 휩쌓였을 만큼 엄청난 감동과 인상을 남겼다. 이는 오케스트라용 콘서트 홀이 아니라 정식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콘체르탄테인 만큼 그 넓은 공간 덕분에 음향 과포화로 인한 난반사나 간섭, 저역울림 등등의 문제 없이 라 페니체 음악가들이 조탁해낸 베르디의 온전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던 것이 유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향후 내한하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프로젝트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루어지기를 적극 추천한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포디움에 오른 정명훈은 특유의 약음 컨트롤을 통해 시리디 시린 서곡을 연주하면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을 내비쳤다. 그는 첫 오케스트라 총주부터 강한 발구름을 통해 악단과 청중에 집중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여느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하면서도 디테일 강한 지휘 제스추어를 통해 전례가 없을 정도의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진정한 오페라 지휘의 거장답게 본인 자신이 극과 음악에 몰입하며 스스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전달받을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적절한 대목마다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 그리고 악단과 솔리스트들에게 보내는 환한 미소, 2막 파티 장면에서 쉬고 있던 금관 주자들이 갑자기 합창을 하는 이벤트 등등, 시종일관 이 콘체르탄테를 축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마에스트로의 진심어린 마음 또한 청중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라 페니체가 선사한 많은 감동 가운데 단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통렬한 아름다움이다. 악단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완벽한 밸런스는 음악이 끝을 맺을 때까지 점점 그 강도를 더하며 베르디 음악의 음향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마지막 비올레타 아리아에서 빛을 발한 악장의 아름다운 솔로 음향은 물론이려니와 목관들의 짙은 질감의 에너지, 침바소까지 가세한 금관의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음향 등등, 정명훈의 지휘 하에 오케스트라는 약음에서는 선명한 음량대조를, 강음에서는 파스텔 톤의 음향 블랜딩과 넓은 다이내믹의 개방감을 노련하게 선보였다.
‘라 트라비아타’의 진정한 가치는 오케스트라 파트의 치열한 디테일과 고급스러운 표현력에서 기인한다고 역설한 라 페니체의 연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막 투우사 입장 장면에서 두 개의 긴 빨간 봉으로 바닥을 치며 스페인의 향기를 자아낸 여성 타악기 연주자의 활약도 흥미로웠다. 히로인을 맡은 올가 페레쨔트코는 화려하지만 비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개성적인 목소리와 빼어난 연기로 훌륭하게 선보였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 벨리니나 도니제티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그녀의 강렬하되 투명한 고역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음가들의 향연을 예상했지만, 이제는 테크니컬한 모습을 앞세우지 않고 보다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의 흐름과 캐릭터의 성격적 표현에 집중하는 단계로 접어들며 한층 성숙해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다.
정명훈과는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탓에 특정 포인트에서의 템포 변화나 호흡이 이질적이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한 결을 이룰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아버지와의 대화와 2중창에서의 감정 표현, 2막 2장 버림받을 때의 흐느낌(이 장면에서의 검은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웠다) 및 3막 ‘Addio, del Passato bei sogi’에서의 애절한 탄식에서 시도한 그녀의 색다르면서도 호소력 깊은 해석이 빛을 발했다. 물론 1막 ‘Sempre Libera’의 화려한 콜로라투라 테크닉과 마지막 올려부른 최고음의 스핀토는 역시 페레짜트코만의 전매특허로서 청중으로부터 격한 브라보를 이끌어냈다. 테너 존 오스본은 처음에는 살짝 긴장한 듯 둔탁했지만 이내 묵직하면서도 힘이 있는 발성으로 하이톤의 페레짜트코와 좋은 파트너쉽을 이루었다. 2막에서 비올레타의 편지를 받고 분노하는 장면과 3막 2중창 ‘Parigio o cara’에서의 보여준 극단적인 감정의 대조가 인상적이었고 2막 첫 아리아 ‘Lunge da lei’에서는 그의 본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한편 아버지 역을 맡은 강형규는 등장부터 대포알 같은 발성으로 청중을 사로잡기 시작, 아리아 ‘Di Provenza il Mar’에서는 긴 호흡과 세밀한 감정 표현, 가슴을 울리는 애절한 호소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여 자랑스러운 한국 대표 바리톤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세 명의 훌륭한 주역가수들과 정명훈의 여느 완전한 프로덕션을 상회하는 음악적 역량과 약식임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강한 연출가 엄숙정의 노력에 힘입어 라 페니체의 한국 데뷔 무대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더욱 가슴 벅차는 것은 라 페니체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자로 손꼽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했다는 점. 라 페니체 신년 음악회를 비롯해 많은 프로덕션을 이끈 그의 카리스마에 의해 이탈리아인으로서의 베르디의 정수는 물론이려니와 지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악단의 정체성까지를 서울에서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청중에게 있어서 대단히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올레타 역으로 최근 유럽 무대에서 가장 핫한 소프라노로 주목받는 올가 페레짜트코가 합류하여 첫 내한공연으로서의 화제성을 끌어올렸다.
2016년 라 스칼라 극장이 정명훈과 함께 롯데 콘서트 홀에서 가진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콘체르탄테 같은 경우에는 오케스트라는 물론이려니와 합창단과 솔리스트가 모두 현지에서 넘어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라 페니체 내한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만 건너와 약식 연출을 가미한 단 한 번의 콘체르탄테 공연을 한다는 것에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정작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이러한 아쉬움이 완전히 연소됨은 물론이려니와 그 이상의 극장적 희열에 휩쌓였을 만큼 엄청난 감동과 인상을 남겼다. 이는 오케스트라용 콘서트 홀이 아니라 정식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콘체르탄테인 만큼 그 넓은 공간 덕분에 음향 과포화로 인한 난반사나 간섭, 저역울림 등등의 문제 없이 라 페니체 음악가들이 조탁해낸 베르디의 온전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던 것이 유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향후 내한하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프로젝트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루어지기를 적극 추천한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포디움에 오른 정명훈은 특유의 약음 컨트롤을 통해 시리디 시린 서곡을 연주하면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을 내비쳤다. 그는 첫 오케스트라 총주부터 강한 발구름을 통해 악단과 청중에 집중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여느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하면서도 디테일 강한 지휘 제스추어를 통해 전례가 없을 정도의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진정한 오페라 지휘의 거장답게 본인 자신이 극과 음악에 몰입하며 스스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전달받을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적절한 대목마다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 그리고 악단과 솔리스트들에게 보내는 환한 미소, 2막 파티 장면에서 쉬고 있던 금관 주자들이 갑자기 합창을 하는 이벤트 등등, 시종일관 이 콘체르탄테를 축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마에스트로의 진심어린 마음 또한 청중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라 페니체가 선사한 많은 감동 가운데 단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통렬한 아름다움이다. 악단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완벽한 밸런스는 음악이 끝을 맺을 때까지 점점 그 강도를 더하며 베르디 음악의 음향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마지막 비올레타 아리아에서 빛을 발한 악장의 아름다운 솔로 음향은 물론이려니와 목관들의 짙은 질감의 에너지, 침바소까지 가세한 금관의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음향 등등, 정명훈의 지휘 하에 오케스트라는 약음에서는 선명한 음량대조를, 강음에서는 파스텔 톤의 음향 블랜딩과 넓은 다이내믹의 개방감을 노련하게 선보였다.
‘라 트라비아타’의 진정한 가치는 오케스트라 파트의 치열한 디테일과 고급스러운 표현력에서 기인한다고 역설한 라 페니체의 연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막 투우사 입장 장면에서 두 개의 긴 빨간 봉으로 바닥을 치며 스페인의 향기를 자아낸 여성 타악기 연주자의 활약도 흥미로웠다. 히로인을 맡은 올가 페레쨔트코는 화려하지만 비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개성적인 목소리와 빼어난 연기로 훌륭하게 선보였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 벨리니나 도니제티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그녀의 강렬하되 투명한 고역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음가들의 향연을 예상했지만, 이제는 테크니컬한 모습을 앞세우지 않고 보다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의 흐름과 캐릭터의 성격적 표현에 집중하는 단계로 접어들며 한층 성숙해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다.
정명훈과는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탓에 특정 포인트에서의 템포 변화나 호흡이 이질적이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한 결을 이룰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아버지와의 대화와 2중창에서의 감정 표현, 2막 2장 버림받을 때의 흐느낌(이 장면에서의 검은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웠다) 및 3막 ‘Addio, del Passato bei sogi’에서의 애절한 탄식에서 시도한 그녀의 색다르면서도 호소력 깊은 해석이 빛을 발했다. 물론 1막 ‘Sempre Libera’의 화려한 콜로라투라 테크닉과 마지막 올려부른 최고음의 스핀토는 역시 페레짜트코만의 전매특허로서 청중으로부터 격한 브라보를 이끌어냈다. 테너 존 오스본은 처음에는 살짝 긴장한 듯 둔탁했지만 이내 묵직하면서도 힘이 있는 발성으로 하이톤의 페레짜트코와 좋은 파트너쉽을 이루었다. 2막에서 비올레타의 편지를 받고 분노하는 장면과 3막 2중창 ‘Parigio o cara’에서의 보여준 극단적인 감정의 대조가 인상적이었고 2막 첫 아리아 ‘Lunge da lei’에서는 그의 본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한편 아버지 역을 맡은 강형규는 등장부터 대포알 같은 발성으로 청중을 사로잡기 시작, 아리아 ‘Di Provenza il Mar’에서는 긴 호흡과 세밀한 감정 표현, 가슴을 울리는 애절한 호소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여 자랑스러운 한국 대표 바리톤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세 명의 훌륭한 주역가수들과 정명훈의 여느 완전한 프로덕션을 상회하는 음악적 역량과 약식임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강한 연출가 엄숙정의 노력에 힘입어 라 페니체의 한국 데뷔 무대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