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가계부채 괜찮을까…'빚→장기불황' 유럽 반면교사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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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8월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습니다. 골드만삭스는 7월 초만 해도 한국은행이 올해 8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고, 외국인 투자자는 국채선물을 대규모로 매수하는 등 금리인하에 대한 베팅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선 물가와 경기보다는 가계부채와 금융안정이 강조되면서 결과는 만장일치 금리동결로 이어졌습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내수 소비동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가늠자인데, 전년동기 대비 9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확산 시기별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고 대체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으나, 현재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장 감소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수 경기가 이토록 부진하다 보니 금리를 인하하고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한은과 정부는 부채관리에 중점을 두는 모습입니다. 빚으로 지은 집, 가계부채는 왜 위험한가?
프린스턴 대학교,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 집필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는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흐름을 설명합니다. 가계부채가 적당히 증가하면 건설투자 개선, 집값 상승에 따른 소비 확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어느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증가하면 가계가 과도한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게 되고, 그 결과 불황의 여파로 자산가격이 폭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주로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금융기관의 부실 및 시스템 위기로 이어져 장기침체를 겪은 사례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들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상당한 수준임에도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한국은행에서 분석한 대로 고소득 차주의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2022년말 전체 개인소득 대비 소득 상위 20%의 소득점유율은 37%인데 가계대출 잔액 점유율은 53%에 이를 정도입니다. 고소득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추세적으로 높아져 왔고, 고소득자의 버티는 힘 덕분에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소비둔화에 따른 경제성장 저하는 피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가계부채가 국가신용도를 뒤흔든 사례
언론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Sovereign Rating으로 ‘정부’에 대한 신용등급을 의미합니다. 특정 국가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도를 측정하는 것이고, 정부부채와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 우리나라가 재정건전성은 우수한 상태에서 기업부채와 외화유동성 문제로 인해 신용등급(S&P 기준)이 AA-에서 B+까지 수직 낙하했듯, 민간에서 발생한 위기로 인해 정부 신용등급이 크게 조정받은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GDP 대비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추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두 국가는 주택가격 상승세와 함께 가계부채 부담이 최고조에 이른 2008~2009년까지는 비교적 정부부채 부담이 낮아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집값 하락은 가계부채 경착륙과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채 부담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게 되자 2013년 들어 아일랜드는 BBB+, 스페인은 BBB-까지 신용등급이 추락하게 됩니다.
결국 가계부채 부담이 금융기관 부실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상당 폭 조정될 수 있고, 외인 투자자 이탈과 국채 조달금리 상승 등이 겹쳐 침체를 가속하는 요인이 됩니다.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한 인내의 시간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 부담은 전 세계 3위권으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우수한 편이라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유사한 신용도(AA, AA-)를 보유한 국가들과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비교해 보면 딱히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 추이를 보면 2009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곤 2018년까지 흑자를 유지했으나, 2019년 이후 상당한 적자를 지속 중입니다. 내수경기 부진으로 세수는 확대하기 어려운데 고령화와 각종 사회보장으로 세출은 늘어나 재정수지 적자를 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용등급은 후행하는 성격이 강하기에 ‘신용등급이 높으니까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AA 신용등급은 과거 재정이 비교적 건전했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산물로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신용등급이 높다고 해서 등급 하락이 제한적인 것도 아니고, 한번 하락한 신용등급을 다시 올리는 것은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도 상기해야 합니다.
분명 1998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당시와 현재 우리의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가계부채 부실이 정부 부담 확대로 이어지면서 신용등급이 급격히 하락하고 장기침체를 겪었던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며, 당장의 고통을 감내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8월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습니다. 골드만삭스는 7월 초만 해도 한국은행이 올해 8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고, 외국인 투자자는 국채선물을 대규모로 매수하는 등 금리인하에 대한 베팅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선 물가와 경기보다는 가계부채와 금융안정이 강조되면서 결과는 만장일치 금리동결로 이어졌습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내수 소비동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가늠자인데, 전년동기 대비 9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확산 시기별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고 대체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으나, 현재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장 감소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수 경기가 이토록 부진하다 보니 금리를 인하하고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한은과 정부는 부채관리에 중점을 두는 모습입니다. 빚으로 지은 집, 가계부채는 왜 위험한가?
프린스턴 대학교,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 집필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는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흐름을 설명합니다. 가계부채가 적당히 증가하면 건설투자 개선, 집값 상승에 따른 소비 확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어느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증가하면 가계가 과도한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게 되고, 그 결과 불황의 여파로 자산가격이 폭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주로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금융기관의 부실 및 시스템 위기로 이어져 장기침체를 겪은 사례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들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상당한 수준임에도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한국은행에서 분석한 대로 고소득 차주의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2022년말 전체 개인소득 대비 소득 상위 20%의 소득점유율은 37%인데 가계대출 잔액 점유율은 53%에 이를 정도입니다. 고소득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추세적으로 높아져 왔고, 고소득자의 버티는 힘 덕분에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소비둔화에 따른 경제성장 저하는 피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가계부채가 국가신용도를 뒤흔든 사례
언론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Sovereign Rating으로 ‘정부’에 대한 신용등급을 의미합니다. 특정 국가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도를 측정하는 것이고, 정부부채와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 우리나라가 재정건전성은 우수한 상태에서 기업부채와 외화유동성 문제로 인해 신용등급(S&P 기준)이 AA-에서 B+까지 수직 낙하했듯, 민간에서 발생한 위기로 인해 정부 신용등급이 크게 조정받은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GDP 대비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추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두 국가는 주택가격 상승세와 함께 가계부채 부담이 최고조에 이른 2008~2009년까지는 비교적 정부부채 부담이 낮아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집값 하락은 가계부채 경착륙과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채 부담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게 되자 2013년 들어 아일랜드는 BBB+, 스페인은 BBB-까지 신용등급이 추락하게 됩니다.
결국 가계부채 부담이 금융기관 부실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상당 폭 조정될 수 있고, 외인 투자자 이탈과 국채 조달금리 상승 등이 겹쳐 침체를 가속하는 요인이 됩니다.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한 인내의 시간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 부담은 전 세계 3위권으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우수한 편이라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유사한 신용도(AA, AA-)를 보유한 국가들과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비교해 보면 딱히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 추이를 보면 2009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곤 2018년까지 흑자를 유지했으나, 2019년 이후 상당한 적자를 지속 중입니다. 내수경기 부진으로 세수는 확대하기 어려운데 고령화와 각종 사회보장으로 세출은 늘어나 재정수지 적자를 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용등급은 후행하는 성격이 강하기에 ‘신용등급이 높으니까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AA 신용등급은 과거 재정이 비교적 건전했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산물로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신용등급이 높다고 해서 등급 하락이 제한적인 것도 아니고, 한번 하락한 신용등급을 다시 올리는 것은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도 상기해야 합니다.
분명 1998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당시와 현재 우리의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가계부채 부실이 정부 부담 확대로 이어지면서 신용등급이 급격히 하락하고 장기침체를 겪었던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며, 당장의 고통을 감내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