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죽음, 아들의 유전병…삶이 뼈를 때릴 때 찾아온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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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빅토리아 베넷이 쓴 회고록 '들풀의 구원'
언니와 싸운 후 한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쌓인 앙금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법이라,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속만 끓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언니는 카누를 타다 강에 빠졌고, 다시는 숨을 쉰 채 땅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녀가 하려던 사과의 말은 황망하게 떠난 언니에게 영원히 가닿지 않았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슬픔의 파도에 그녀는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그녀를 슬픔의 너울에서 건져 올려 일상을 지키게끔 해 준 이는 뱃속의 태아, 장래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언니가 좋아했던 들풀들을 돌보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최근 출간된 '들풀의 구원'(All My Wild Mothers)은 영국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쓴 회고록이다.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은 뒤 아들과 함께 10여년 간 야생 정원을 일구며 경험한 일상을 담았다.
저자는 비교적 여유로운 환경에서 컸다.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유년을 보낸 그는 죽은 언니와 유독 각별했다.
한때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도 했던 언니는 어린 그에게 금어초, 석송 등을 보여주며 어떤 식물을 절대 꺾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식물이 치유력이 큰지 등을 설명해줬다.
투신자살까지 하려 할 정도로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엄마, 마약중독에 빠져 헤어 나올 길 없었던 큰오빠,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언니는 저자에게 삶의 버팀목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나이가 들어 언니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난 저자는 문학에서 삶의 구원을 찾았다.
그러나 가난이 부록(附錄)처럼 따라왔다.
남편도 예술가였다.
돈벌이와 무관한 직업을 지닌 부부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계속된 유산으로 저자의 우울감은 한층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시 임신해 희망의 빛줄기가 다시 저자 인생에 내리칠 찰나에 언니가 떠나버린 것이었다.
태어난 아이 상황도 좋지 않았다.
아들은 몸에서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제1 당뇨병에 걸려 평생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저자는 이사를 하고, 언니가 좋아했던 들풀들로 채워진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안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부서진 흙과 갈라진 바위틈에서 쐐기풀, 우단담배풀, 수선화, 창질경이, 석잠풀 같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곤충들이 날아드는 자연의 경이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며 병을 견디고 이겨내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의 마법이 내 인생을 어루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피와 눈물 속에, 우는 아이를 안고 지새우는 끝없는 밤의 기진맥진한 슬픔 속에 있었다.
그것은 눈을 멀게 하는 빛도, 요란하게 선포된 예지도 아니었다.
그저 문밖에서 발견한 세상에 미소 지으면서 '우아, 정말 아름답다!'하고 말하는 소년이었다.
"
웅진지식하우스. 김명남 옮김. 428쪽.
/연합뉴스
나이 들어서 쌓인 앙금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법이라,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속만 끓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언니는 카누를 타다 강에 빠졌고, 다시는 숨을 쉰 채 땅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녀가 하려던 사과의 말은 황망하게 떠난 언니에게 영원히 가닿지 않았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슬픔의 파도에 그녀는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다.
그녀를 슬픔의 너울에서 건져 올려 일상을 지키게끔 해 준 이는 뱃속의 태아, 장래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언니가 좋아했던 들풀들을 돌보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최근 출간된 '들풀의 구원'(All My Wild Mothers)은 영국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쓴 회고록이다.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은 뒤 아들과 함께 10여년 간 야생 정원을 일구며 경험한 일상을 담았다.
저자는 비교적 여유로운 환경에서 컸다.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유년을 보낸 그는 죽은 언니와 유독 각별했다.
한때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도 했던 언니는 어린 그에게 금어초, 석송 등을 보여주며 어떤 식물을 절대 꺾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식물이 치유력이 큰지 등을 설명해줬다.
투신자살까지 하려 할 정도로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엄마, 마약중독에 빠져 헤어 나올 길 없었던 큰오빠,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언니는 저자에게 삶의 버팀목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나이가 들어 언니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난 저자는 문학에서 삶의 구원을 찾았다.
그러나 가난이 부록(附錄)처럼 따라왔다.
남편도 예술가였다.
돈벌이와 무관한 직업을 지닌 부부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계속된 유산으로 저자의 우울감은 한층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시 임신해 희망의 빛줄기가 다시 저자 인생에 내리칠 찰나에 언니가 떠나버린 것이었다.
태어난 아이 상황도 좋지 않았다.
아들은 몸에서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제1 당뇨병에 걸려 평생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저자는 이사를 하고, 언니가 좋아했던 들풀들로 채워진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안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부서진 흙과 갈라진 바위틈에서 쐐기풀, 우단담배풀, 수선화, 창질경이, 석잠풀 같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곤충들이 날아드는 자연의 경이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며 병을 견디고 이겨내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의 마법이 내 인생을 어루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피와 눈물 속에, 우는 아이를 안고 지새우는 끝없는 밤의 기진맥진한 슬픔 속에 있었다.
그것은 눈을 멀게 하는 빛도, 요란하게 선포된 예지도 아니었다.
그저 문밖에서 발견한 세상에 미소 지으면서 '우아, 정말 아름답다!'하고 말하는 소년이었다.
"
웅진지식하우스. 김명남 옮김. 4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