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서거 100년에 빛난 국립 오페라단의 '잔니 스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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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제성의 서울 밖 클래식 여행
테너 강요셉 음악감독으로 나서 높은 완성도 자랑
지방 예술 인프라 향상에 잔니 스키키가 가능성 보여줘
테너 강요셉 음악감독으로 나서 높은 완성도 자랑
지방 예술 인프라 향상에 잔니 스키키가 가능성 보여줘
올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가 서거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워낙 오페라 장르에서 중요한 작곡가인 만큼 전세계적으로 이를 기념하는 많은 공연이 기획,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성실하게 동참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전국적으로 많은 푸치니 갈라 콘서트가 공연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기념해로서의 위상이나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의 오페라 전곡 공연만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2024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가운데 누오바 오페라단의 ‘나비부인’을 필두로 서울시 오페라단이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를 앞세운 ‘토스카’, 국내 최고의 소프라노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황수미의 ‘라 보엠’, 그리고 12월 말 국립 오페라단은 코로나 시절 초연무대를 가진 바 있는 ‘서부의 아가씨’ 한국 초연 무대를 재현하기로 했다. 이러한 메인 스트림과는 별도로 지방의 작고 다양한 공연장에서도 많은 푸치니 공연이 이루어지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지방 푸치니 공연이 있었다. 6월 22일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차일혁홀에서 열린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공연이 바로 그것. 국립 오페라단에서 2022년 지방공연을 목적으로 제작한 프로덕션으로서 이미 광주와 속초 등등 여러 도시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가진 바 있는 검증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코믹하면서도 교훈을 주는 통쾌한 반전 드라마인 ‘잔니 스키키’는 다음과 같은 탄생배경을 갖고 있다. 1904년경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본 이후 그는 단테의 ‘신곡’을 반영한 1막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른 두 편의 단막 오페라와 연결시켜 죽음의 다양한 측면을 오페라로 담아내고자 했다. 앞선 작품이 오페라 부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잔니 스키키’이고, 뒤 이은 두 개의 작품이 치정극인 ‘외투’와 모자의 비극 이야기인 ‘수녀 안젤리카’이다. 시대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이해를 하나로 엮어 ‘일 트리티코(Il Trittico: 교회의 삼단 제단화라는 뜻)’라는 큰제목으로 1918년 12월 1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가 충청남도 아산에서 올려진 이유는, '아트밸리 아산 제1회 오페라 축제'의 첫 무대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예술 인프라가 열세인 아산에서 시와 문화재단이 합심하여 이러한 기획을 만들어낸 것에 커다란 관심과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인 바 있는 테너 강요셉이 음악감독을 맡은 만큼 향후 이 페스티벌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기대해 볼 만하다. 올해에는 ‘잔니 스키키’와 더불어 ‘사랑의 묘약’ 두 작품만을 올리지만 내년부터는 점점 레퍼토리를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오페라 페스티벌을 손꼽자면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서울과 대구, 서귀포 등등 몇 개 되지 않는 만큼 아산 오페라 페스티벌이 꾸준하게 유지되어 지역 오페라 문화저변을 넓히는 견인차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특히 아산의 이웃인 내포신도시에 2029년 개관을 목표로 한 예술의 전당 설계안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한 만큼 아산 오페라 페스티벌이 이 지역의 커다란 예술적 중추를 이룰 것 또한 희망한다.
비가 내리는 와중 로비를 가득 메운 청중을 뚫고 차일혁홀 내부를 보니 공연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오페라 공연을 위해 무대 앞에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작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 것이 눈에 띄었는데, 조금은 축소된 편성이지만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무리 없이 이끌어갈 수 있었다.
지휘는 최근 오페라 쪽에서 많은 활동을 보이고 있는 지휘자 구모영. 천안시향 상임 지휘자로서 그는 오케스트라 총주로 시작하는 처음부터 응집력 높은 사운드와 장면에 따른 다양한 음향을 만들어내며 극의 상황에 따라 템포와 프레이징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극적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앞으로 충남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음악가임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이번 ‘잔니 스키키’의 훌륭한 완성도는 지휘자와 더불어 연출가 장서문의 역할 또한 대단히 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교적 작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장식들로 화면이 가득 차 보이게 만든 것과 더불어, 많은 등장인물들의 부산스러움을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게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주인공들의 스포트라이트 또한 분명하게 강조하여 관객이 직관적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왔다. 다만 주인공 잔니 스키키가 무대 뒤편에 위치한 침대에서 누워서 노래할 때 홀 음향특성상 잘 들리지 않았던 점은 연출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주인공 잔니 스키키역의 김은곤은 비교적 젊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앞세워 캐릭터의 성격과 주도적인 역할 모두를 잘 아우르며 극이 확실한 성악적 구심점을 갖고 순발력 높게 진행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마지막 관객을 향한 멘트가 조금 약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되는 바리톤으로서 이 날의 히로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리누치오역의 테너 구태환은 어려운 아리아 “피렌체는 꽃이 피어나는 나무와도 같다”를 멋지게 불러내었고, 라우레타역의 소프라노 김누리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를 앙큼하면서도 호소력 깊게 노래하여 환호를 받았다. 친척역을 맡은 성악가들도 어느 하나 처짐 없이 열정적인 연기와 안정된 앙상블을 보여주어 부파의 진정한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었다.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는 청중을 접하노라니 이렇게 최선을 다한 성악가들과 관계자들의 노력이 내년에는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이 가운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지방 푸치니 공연이 있었다. 6월 22일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차일혁홀에서 열린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공연이 바로 그것. 국립 오페라단에서 2022년 지방공연을 목적으로 제작한 프로덕션으로서 이미 광주와 속초 등등 여러 도시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가진 바 있는 검증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코믹하면서도 교훈을 주는 통쾌한 반전 드라마인 ‘잔니 스키키’는 다음과 같은 탄생배경을 갖고 있다. 1904년경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본 이후 그는 단테의 ‘신곡’을 반영한 1막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른 두 편의 단막 오페라와 연결시켜 죽음의 다양한 측면을 오페라로 담아내고자 했다. 앞선 작품이 오페라 부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잔니 스키키’이고, 뒤 이은 두 개의 작품이 치정극인 ‘외투’와 모자의 비극 이야기인 ‘수녀 안젤리카’이다. 시대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이해를 하나로 엮어 ‘일 트리티코(Il Trittico: 교회의 삼단 제단화라는 뜻)’라는 큰제목으로 1918년 12월 1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가 충청남도 아산에서 올려진 이유는, '아트밸리 아산 제1회 오페라 축제'의 첫 무대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예술 인프라가 열세인 아산에서 시와 문화재단이 합심하여 이러한 기획을 만들어낸 것에 커다란 관심과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인 바 있는 테너 강요셉이 음악감독을 맡은 만큼 향후 이 페스티벌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기대해 볼 만하다. 올해에는 ‘잔니 스키키’와 더불어 ‘사랑의 묘약’ 두 작품만을 올리지만 내년부터는 점점 레퍼토리를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오페라 페스티벌을 손꼽자면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서울과 대구, 서귀포 등등 몇 개 되지 않는 만큼 아산 오페라 페스티벌이 꾸준하게 유지되어 지역 오페라 문화저변을 넓히는 견인차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특히 아산의 이웃인 내포신도시에 2029년 개관을 목표로 한 예술의 전당 설계안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한 만큼 아산 오페라 페스티벌이 이 지역의 커다란 예술적 중추를 이룰 것 또한 희망한다.
비가 내리는 와중 로비를 가득 메운 청중을 뚫고 차일혁홀 내부를 보니 공연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오페라 공연을 위해 무대 앞에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작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 것이 눈에 띄었는데, 조금은 축소된 편성이지만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무리 없이 이끌어갈 수 있었다.
지휘는 최근 오페라 쪽에서 많은 활동을 보이고 있는 지휘자 구모영. 천안시향 상임 지휘자로서 그는 오케스트라 총주로 시작하는 처음부터 응집력 높은 사운드와 장면에 따른 다양한 음향을 만들어내며 극의 상황에 따라 템포와 프레이징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극적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앞으로 충남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음악가임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이번 ‘잔니 스키키’의 훌륭한 완성도는 지휘자와 더불어 연출가 장서문의 역할 또한 대단히 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교적 작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장식들로 화면이 가득 차 보이게 만든 것과 더불어, 많은 등장인물들의 부산스러움을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게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주인공들의 스포트라이트 또한 분명하게 강조하여 관객이 직관적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왔다. 다만 주인공 잔니 스키키가 무대 뒤편에 위치한 침대에서 누워서 노래할 때 홀 음향특성상 잘 들리지 않았던 점은 연출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주인공 잔니 스키키역의 김은곤은 비교적 젊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앞세워 캐릭터의 성격과 주도적인 역할 모두를 잘 아우르며 극이 확실한 성악적 구심점을 갖고 순발력 높게 진행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마지막 관객을 향한 멘트가 조금 약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되는 바리톤으로서 이 날의 히로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리누치오역의 테너 구태환은 어려운 아리아 “피렌체는 꽃이 피어나는 나무와도 같다”를 멋지게 불러내었고, 라우레타역의 소프라노 김누리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를 앙큼하면서도 호소력 깊게 노래하여 환호를 받았다. 친척역을 맡은 성악가들도 어느 하나 처짐 없이 열정적인 연기와 안정된 앙상블을 보여주어 부파의 진정한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었다.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는 청중을 접하노라니 이렇게 최선을 다한 성악가들과 관계자들의 노력이 내년에는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