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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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반도체 관련 기업이 주가 급등세 틈을 노리고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서거나 자사주를 매각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오르던 주가는 물량 부담에 잇따라 약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열풍이 꺾이면 주가 약세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코스닥시장에서 반도체 후공정업체 하나마이크론의 주가는 3.0% 하락한 2만2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초 고점에 견줘 31.98% 급락했다. 대규모 유상증자 소식이 주가에 직격탄을 안겼다. 지난 17일 하나마이크론은 시설·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125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새로 발행할 주식은 500만 주로 전체 상장 주식의 9.58%에 달한다. 유상증자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 회사 주가는 13.61%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최대주주 최창호 회장의 유상증자 참여율이 10%에 불과해 투자자의 불만을 샀다.

앞서 퀄리타스반도체도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7일 운영자금 등 595억원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0월 상장한 지 7개월 만에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올초 4만원 선까지 오른 주가는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진 뒤 하루 만에 22.01% 폭락했고, 현재는 2만1050원까지 내렸다. 반도체 장비업체 엑시콘(400억원)과 윈팩(550억원)도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뒤 주가가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AI 열풍 기대에 주가 뛰자 '증자 폭탄'…개미들 '불만 폭발'
반도체 분야 기업이 앞다퉈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은 올해 반도체 투자 심리가 크게 개선된 데 따른 움직임이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 설비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주식 투자자가 몰리자 자금 조달 창구로 증자를 택한 것이다. 고금리가 이어지다 보니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면 높은 이자를 내야 하지만 유상증자는 이 같은 부담이 없다.

주주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으로 주식 수가 늘어나면 지분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반도체 기업이 신규 투자를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워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 바이오 기업의 반복적인 유상증자 사례를 떠올려보면 이를 좋게 해석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주가가 급등하자 자사주 매각에 나서는 곳도 있다. 제주반도체는 온디바이스 AI 관련주로 엮이며 지난해 10월 4000원대였던 주가가 올해 1월 3만4000원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회사 측은 2월 95억원어치 자사주를 처분했고, 이달 23일 22억원어치를 매도하기로 공시했다. 제주반도체 주가는 1월 최고가 대비 39.12% 하락했다. 반도체 소재업체인 덕산테코피아(100억원·23만 주)와 제이아이테크(14억원·29만 주)도 자사주를 처분하기로 했다.

증권가에서는 중소형 반도체 기업 주가가 주춤한 상황에서 유상증자와 자사주 처분이 하락세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AI 열풍에 기대 주가가 올랐지만 실적 개선 속도는 전반적으로 더딘 편이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코스닥시장 반도체 업종(134개 기업)의 총매출액은 4조4371억원으로 1년 전보다 1.92% 오르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205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83% 줄었다.

전효성 기자 z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