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가 자신의 54번째 생일인 19일 KPGA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축하 물세례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KPGA 제공
최경주가 자신의 54번째 생일인 19일 KPGA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축하 물세례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KPGA 제공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 이날 54세가 된 ‘탱크’ 최경주의 걸음걸이는 유독 무거워 보였다. 이틀 전 홀로 7언더파로 질주한 사실이 무색하게 내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다. 경기 후반부터는 허리 통증도 더해졌다.

그래도 노장은 두 번의 연장으로 이어진 승부에서 끝내 이겼고, 한국 남자골프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최경주는 자신의 생일에 이 대회 네 번째 우승, KPGA투어 통산 17승을 거뒀다. 해외에서 거둔 13승을 포함하면 개인 통산 30번째 우승이다.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도 만 50세5개월25일(2005년 최상호)에서 3년8개월이나 늦추며 ‘살아 있는 전설’임을 증명해냈다.

‘완도’ 같은 러프에서 세이브

최경주가 19일 KPGA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KPGA 제공
최경주가 19일 KPGA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KPGA 제공
대회 최종 라운드가 시작될 때만 해도 5타 차 단독 선두인 최경주가 무난하게 우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경주의 샷이 러프와 벙커로 향하면서 17번홀까지 보기 5개를 범하고 버디는 2개에 그치면서 3타를 잃었다. 그사이 KPGA투어 강자 박상현(41)이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잡으며 최경주를 1타 차까지 따라잡았다. 최경주가 18번홀(파4)에서 벙커세이브에 실패하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한국 남자골프의 최고 베테랑들이 맞붙은 연장전, 분위기는 박상현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는 연장에서도 안정적인 플레이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반면 최경주는 세 번째 샷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페어웨이에서 친 최경주의 세컨드 샷은 짧고, 왼쪽으로 감겼다. 그린 앞 개울 쪽으로 향한 공은 작은 섬처럼 자리잡고 있는 러프에 떨어졌다. 그린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섬, 마치 그의 고향인 완도 같은 자리였다.

최경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59도 웨지를 잡고 가볍게 툭 친 세 번째 샷은 핀 1m 옆에 붙었고 천금 같은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최경주는 “샷을 치자마자 공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갤러리의 반응을 보니 살아 있는 것 같았다”며 “가보니 일부러 손으로 놓으려 해도 할 수 없을 라이를 주셨더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못 잊을 장면이 될 것”이라며 “이 작은 섬에 ‘K.J. Choi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진 연장 2차전, 최경주의 건재에 박상현이 위축된 듯했다. 티샷이 러프에 빠진 데 이어 두 번째 샷도 그린 주변 러프로 향하면서 보기를 범했다. 반면 최경주는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면서 파를 잡아 우승을 확정 지었다.

“PGA 500경기 출전 목표”

자신의 생일에 거둔 생애 30번째 우승, 그리고 KPGA투어 최고령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탱크’마저 눈시울을 붉혔다. “(제 후원사인) SK텔레콤이 40주년을 맞은 해, 그리고 제 생일에 대회 4승,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최경주의 목소리는 감격에 메어 있었다. 그는 “팬들의 성원 덕에 거둔 우승인 만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이제 자신의 본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로 돌아간다. PGA투어에서 498개 경기에 출전한 최경주는 앞으로 두 경기를 더 채워 500개 경기 출전 기록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최경주는 “500경기를 채우면 PGA투어에서도 기념행사를 열어주는 것으로 안다”며 “역대 챔피언 자격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에서 이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