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 6년만의 내한 공연…스메타나·야나체크·수크 연주
세계 최정상 콰르텟 파벨 하스, 체코 실내악의 정수를 선보이다
세계 최정상 사중주단인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내한 공연이 지난 18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코로나 팬데믹 때 예정됐던 내한 공연이 취소된 후 6년 만에 성사된 무대여서 목마름과 반가움이 컸던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은 드보르자크의 사위로 알려진 요제프 수크의 '옛 체코 성가 벤체슬라브에 의한 명상'이었다.

첫 음부터 파벨 하스 사중주단의 음색은 귀를 사로잡았다.

말 그대로 소토 보체, 낮게 숨죽인 목소리였다.

예민하고도 경건한 소리가 잔잔하지만 공간 곳곳으로 빈틈없이 퍼져 나갔다.

여리게 힘을 뺀 소리인데도 서로 어우러지면서 기막힌 배음을 들려주는 것이 마치 마법과 같았다.

독일-오스트리아 악단들이 들려주는 단단한 화성이 아니라 묘한 떨림으로 다소 성글게 공간을 떠돌면서도 화성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더없이 매력적인 소리였다.

슬라브 특유의 반음계,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미묘한 음색의 변화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악단이 지닌 소리의 결과 개성을 들려주기에 충분한 소품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파벨 하스 사중주단이 선보인 두 곡의 현악 사중주곡은 스메타나의 현악 사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 야나체크의 현악 사중주 2번 '비밀 편지'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오페라에서 대단한 성과를 낸 극장음악의 대가들이기도 했다.

성악적인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다채롭고도 표현적인 극적 제스처, 격렬한 파토스, 마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넘나드는 듯한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 등이 빼곡하게 이어진다.

대단히 극적인 성격을 지닌 이 두 작품을 파벨 하스 사중주단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초절기교적인 맹렬한 연주였다기보다는 과장이 전혀 없이도 상당한 난도의 작품을 편안하게 조형해내는 숙련성이 돋보였다.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베푸는 연주처럼 스메타나의 작품에서는 체코 특유의 사운드와 민속 춤곡의 리듬이 넘실거렸고, 슬라브적인 색채와 즉흥성 또한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기교에서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명상적 순간들도 연주의 수준을 높여 주었다.

'나의 생애로부터'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첫 악장에서는 낭만주의를 접하고 음악에 사명감을 느끼게 된 청년 스메타나의 감흥을, 두 번째 악장에서는 슬라브의 민속음악 폴카 스타일을 통해 행복했던 유년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그려낸다.

깊고 내면적인 노래로 유명한 세 번째 악장을 지나면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마지막 악장이 이어진다.

이 악장은 스메타나의 음악적 여정을 그리다가 갑작스럽게 제1 바이올린의 높은 e음이 그동안의 음악을 모두 가로막고 춤곡에 찬물을 끼얹는다.

스메타나에게 끊임없이 들려왔다는 그 이명이다.

파벨 하스 사중주단은 이러한 각 악장의 이야기들을 선명하게 조형해내면서도 음향적 측면에서의 통일성을 완벽에 가깝게 유지했다.

2악장의 루바토가 많고 흥이 달아오르는 민속적 에너지나 3악장의 명상적인 울림이나 4악장의 극적인 단절과 드라마적인 효과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게 재현되었다.

말하자면 서사적인 조형력, 극적 폭발력, 음색의 서정성이 모두 갖춰진 연주이자 끊임없이 즉흥적인 변화를 가져가면서도 안정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우아하고도 생명력 있는 연주, 한 마디로 진짜 보헤미안적인 연주였다!
체코의 사중주단들은 스메타나 사중주단, 파노하 사중주단, 탈리히 사중주단 등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전통적으로 현의 마찰력이 부각되는 성격적인 음향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구 악단들의 비단결 같은 반짝임에 비해 투박하고 거친 인상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음향으로 인해 강렬한 실내악적 드라마를 돋보이게 연주해내는 것도 사실이다.

야나체크의 '비밀 편지'는 첫머리부터 트릴과 브릿지 위를 긋는 플레절렛 주법의 날카로운 음향으로 인상을 남긴다.

극단적으로 길이가 짧은 모티브를 중첩하여 고조시키는 것은 야나체크 음악의 특징적인 면모다.

'비밀 편지'의 1악장과 3악장에서는 이 같은 압축적이고 밀도 있는 반복구와 낭만적 선율이 날카롭게 대조되는데, 파벨 하스 사중주단은 이러한 대비의 효과를 더없이 탁월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4악장은 대단히 활달하게 출발하지만, 단절이 많고 변화무쌍하다.

꿈꾸는 듯한 천상의 황홀경과 이를 일거에 깨뜨리는 무시무시한 트레몰로가 완충 지점 없이 곧바로 이어지고, 민속적 울림과 현대적 낯섦, 에로스와 공포가 갖가지 현악 앙상블의 기교로 펼쳐진다.

파벨 하스 사중주단은 이러한 대비를 악상의 재현뿐 아니라 음색과 호흡, 음악적 심상의 차원에서까지 완전히 표현했다.

야나체크가 뮤즈 카밀라 스퇴슬로바로 인해 얻은 사랑의 환상이 여기에 담겨 있기에 악단은 시종일관 농밀하고도 몽환적인 에로스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환상을 깨 버리는 현실이 드러날 때는 가차 없이, 거의 폭력적으로 단절의 순간을 형상화한다.

실제로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갖가지 뉘앙스의 향연이었다.

파벨 하스 사중주단이 세계 최고의 앙상블로 드러낸 것은 자국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깊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우리는 모두 전염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