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나나나' 글로벌 히트…"한층 성장한 트로피 같은 1년"
첫 정규앨범에 한국어 가사·가야금 사운드…"韓 문화와 연결 잃지 않으려 노력"
페기 구 "어깨만 들썩? 마음까지 움직이는 음악 하고 싶어"
"어깨만 들썩이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음악이 타임리스(Timeless·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죠. 20년 뒤에도 들을 만한 노래여야 해요.

"
한국인 DJ 겸 음악 프로듀서 페기 구는 19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반짝'하고 사라지는 노래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음악 철학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음악에는 '솔'(Soul), 한국말로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페기 구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로, 다음 달 7일 첫 정규앨범 '아이 히어 유'(I HEAR YOU)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지난해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5위까지 오르며 세계적으로 히트한 '(잇 고즈 라이크) 나나나'((It Goes Like) Nanana)를 비롯해 레니 크라비츠와 협업한 '아이 빌리브 인 러브 어게인'(I Believe in Love Again), 최근 선공개된 '랍스터 텔레폰'(Lobster Telephone) 등 10곡이 수록된다.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아티스트가 '유 히어 미'(You Hear Me)가 아니라 '아이 히어 유'(I Hear You)라는 앨범명을 들고나온 점이 흥미롭다.

페기 구는 "모든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인드로 사는 이 시대에 '너를 경청하고 있어'라는 것은 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을 경청함으로써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페기 구는 앨범 재킷에서 두 귀가 여러개로 반사돼 보이는 감각적인 거울 미술 작품을 활용했다.

이는 그의 지인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이다.

"음악이든 말이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우자는 뜻"이라고 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는 이번 앨범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를 녹였다.

페기 구는 수록곡 '백 투 원'(Back To One)에서 '하늘은 공정하다'며 한국어로 노래했고, '아이 고'(I Go)의 후렴구에선 '아이 고/ 아이 고'라며 마치 우리말로 통곡하듯이 읊조렸다.

페기 구 "어깨만 들썩? 마음까지 움직이는 음악 하고 싶어"
그는 "저는 해외 마인드와 한국 마인드가 조화를 이룬 아티스트"라면서도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 문화와의 연결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이 고'라는 후렴구에 대해선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말이 되는 단어가 잘 없어서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어느 날 공항 거울에 비친 지친 제 모습을 보며 만든 가사다.

그 당시 허리가 아팠는데,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도 '나는 간다'는 의미가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영국 런던 유학길에 올라 런던 패션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DJ 기술을 배우며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 직접 프로듀싱한 첫 미니음반 '아트 오브 워'(Art of War)로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코첼라·글래스턴베리 등 세계 유명 음악 축제에도 출연했다.

그야말로 '음악 방랑자' 혹은 '세계 시민'인 그는 이번 앨범 수록곡 '서울시 페기구'에서 역동적인 한국의 모습을 빠른 비트로 묘사해냈다.

곡 제목은 페기 구만이 할 수 있는 언어유희다.

페기 구는 "서울은 빨리빨리 변하지 않느냐. 이런 트렌드를 150 BPM(분당 박자 수)이라는 빠른 비트로 표현했는데, 서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악기인 가야금 사운드도 넣었다.

해외에선 고토(가야금과 흡사한 일본 현악기)는 알지만 가야금은 잘 몰라 그 소리를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2년간 베를린에서 가야금을 속성으로 배웠는데, 몇 년 안에 잘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더라"며 "하는 수 없이 직접 연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원하는 사운드를 피아노로 쳐서 가야금 선생님께 보내드려 연주를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페기 구는 지난해 '(잇 고즈 라이크) 나나나'의 히트로 무척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세계 각지에서 열린 투어 콘서트와 음악 축제 무대에 섰고, 수상하진 못했지만 영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의 '올해의 인터내셔널 송' 부문 후보에 올랐다.

페기 구 "어깨만 들썩? 마음까지 움직이는 음악 하고 싶어"
그는 "저도 이렇게 잘 될지 몰랐는데, 너무 신기했다.

마법 같으면서도 '트로피' 같은 1년이었다.

아티스트로서 한층 성장한 기간이었다"며 "그 곡((잇 고즈 라이크) 나나나)을 계기로 더 큰 영감을 받았다.

성취에 들떠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다리를 땅에 붙이려고 노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잇 고즈 라이크) 나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완성했다.

음악에 집중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1990년대 음악에 빠져들었고, 이를 통해 '단순하고 중독적이지만 질리지 않는' 90년대 하우스 음악에 꽂혔다고 한다.

페기 구는 "그러다가 쉽게 따라부를 수 있고,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후크(강한 인상을 주는 후렴구)를 찾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 노래는 중독적인 리프·후크와 남녀노소가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가사 덕에 지난해 여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페기 구는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페기 구는 브릿 어워즈 수상 불발에 대해 "아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후보에 올라간 분들도 쟁쟁한 아티스트여서 함께 지명된 것으로도 만족했다.

지금은 내 타이밍이 아니라고 여겼다"며 "여기서 더 영감을 받아 1등 하는 노래가 나오도록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기 구는 조만간 베를린을 떠나 '제2의 고향' 같다는 런던으로 터를 옮긴다.

자신의 음악성을 "미래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1990년대 광고 사진"으로 정의한 그는 "20년, 30년 후에 들어도 부끄럽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각인되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쉴 새 없는 활동과 도전이 벅찰 법도 하지만 "주변 지인들이 제 체력을 보고 DJ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대표 선수를 했을 거라고 한다"라며 "스트레스를 회피하지 않고 제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편이기에 또 회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그러면서 "(레이블이) 처음에는 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잃지 말라고 하더니 '(잇 고즈 라이크) 나나나'가 잘 되니 영어로만 노래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며 "그래서 '싫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제가 좋은 게 좋지, 무언가에 휘둘리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첫 정규앨범을 계기로 더 많은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고,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잘해야죠. 하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