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군산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부실한 행사 진행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참담한 심정을 안겼다. 모든 것이 안일했다.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지 폭염, 폭우 대비책이 없었다. ‘플랜B’가 없어 조기 철수 후에도 혼란이 이어졌다.동병상련으로 위안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수렁’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2008년 본격화됐다. 330억달러를 쏟아부어 2020년 1단계 구간을 개통하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시30분 걸려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30년 이후에나 1단계 공사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어떻게 하면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프로젝트 설계자>는 이에 대한 답을 담은 책이다. 원제인 ‘How Big Things Get Done’이 더 직관적이다. 책을 쓴 벤트 플루비야는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다. 프로젝트 관리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언론인 출신인 댄 가드너와 함께 쓴 이 책에서 풍부한 사례를 통해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헤친다.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대형 프로젝트가 처음의 약속대로 수행되는 예는 대단히 드물다. 오히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같은 사업이 평범한 쪽에 가깝다.” 저자는 136개국 20개 분야에서 이뤄진 약 1만6000개 프로젝트를 직접 살펴봤다. 비용과 일정 계획을 예정대로 달성한 경우는 8.5%뿐이었다. 여기에 기대 편익까지 충족한 프로젝트는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계획대로 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1991년 미국 보스턴 도심을 가르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지하에 터널을 뚫는 ‘빅 딕’ 공사는 16년을 질질 끌었다. 당초 예산의 3배가 넘는 비용을 집어삼키며 도시 전체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캐나다 정부가 주도한 총기 등록 관련 정보기술(IT) 프로젝트의 최종 비용은 예산의 590%였다. 2004년 지어진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건물도 완공이 3년 지연됐다. 공사 비용은 원래 예산의 978%에 달했다.프로젝트가 대부분 지연된다면 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시대에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그런 성공 사례들이 있다는 것은 저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무작정 시작하고 보자는 것은 실패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책은 지적한다.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다. 1930년 3월 17일 공사를 시작해 약 13개월 만인 1931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윌리엄 램은 “아무리 사소한 세부 사항이라도 건설업자와 전문가들을 통해 철저히 분석했다”며 “공사 지연을 초래할 만한 문제는 사전에 조율하고 변경했다”고 말했다. 리벳과 볼트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몇 개의 창문이 설치될지, 대리석 블록은 몇 개가 들어가는지, 알루미늄·스테인리스강·시멘트·회반죽이 몇 t 필요한지도 사전에 정확히 파악돼 있었다.일단 시작했으면 “빠르게 행동하라”고 한 데도 이유가 있다. 저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을 ‘열린 창문’에 비유한다. 열려 있는 시간이 길수록 창문을 통해 뭔가 날아들 가능성도 커진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고,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돌 수도 있다. 홍수가 날 수도 있고, 영화라면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즉 ‘블랙스완’이 발생할 위험은 항상 존재하고, 이를 줄이려면 가능한 한 빨리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한다. 계획을 짤 때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뒤 필요한 일을 역순으로 도출해보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작은 크기의 모듈로 쪼개보라고 말한다.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정치다. 이 부분을 다루지 않은 것은 책의 약점이다. 그래도 책은 지금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내용을 다룬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 하물며 개인적인 작은 프로젝트를 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은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다. 던지는 질문 역시 시의적절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부추기고 재촉하는 자기 계발 산업이 너무 과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느껴지는 요즘이기 때문이다.책을 쓴 마크 코켈버그는 철학자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분야에서 기술과 윤리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앱은 우리 생활을 관찰하고 추적하며 평가한다”며 “우리에 관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 통계 정보를 분석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권하고 광고를 보여준다”고 했다.‘자기 계발’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숭고한 목적에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 변질됐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과의 비교에서 앞서기 위해 자기 계발이 행해진다. 주변에서의 부추김도 크다. 자기 계발을 권하는 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없는 돈을 쪼개 가며 자기 계발을 하는 동안 자기 계발 서적 작가와 정보기술(IT) 투자자들의 수입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고 했다.기술은 ‘어떤 것이 더 나은 사람인가’에 대한 답도 규정한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측정되는 사회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측정할 수는 없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을 측정할 뿐이다. 예컨대 내적 수양 같은 건 측정할 수 없다. 하루에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공부에 시간을 쏟았는지 등은 측정이 가능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 역시 이런 정량화된 수치에 근거한다.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의 명확함과 달리 해법을 논의하는 부분은 모호함이 앞선다. 철학적 고찰로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관계적 자아라는 사실, 기술이 사회에서나 우리 자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 우리가 타인뿐만 아니라 지구 위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자아와 자기 계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기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주체적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사회를 변혁하자고 말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다소 허무한 결론이기도 하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작은 어촌 부산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6·25전쟁, 산업화 등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한국의 제2 도시로 컸다. 6·25전쟁으로 몰려든 귀환 동포, 피란민, 이주 노동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타지에서 느끼는 설움, 고단한 삶의 애환을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풀었다.부산에서 마주치는 음식은 모두 이런 부산의 얼을 담고 있다. 부산인의 ‘소울푸드’ 돼지국밥, 자갈치 부둣가에서 아주머니들이 현란하게 벗겨낸 곰장어, 여름 바닷가의 갈증을 날리는 부산밀면이 대표적이다. 복국, 재첩국, 조방 낙지, 동래 파전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같이 하루하루 근근이 끼니를 해결해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던, 전국 팔도에서 모인 한국인이 값싸고 양 많은 식재료로 ‘이렇게라도 먹어보자’라며 만든 음식이다.신간 <부산미각>은 ‘부산의 맛’에 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한 편의 미식 기행 차림표다. 부산에서 오래 살며 부산 음식을 먹고 자란 인문학자·번역가 등 14명이 모여 맛깔나게 풀어냈다. 탕부터 고기, 해산물, 면, 안주, 술에 이르기까지 부산 여느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제철에 맞게 월별로 소개한다.책의 진면목은 음식으로 재해석한 인문학서라는 데 있다. 대륙과 해양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지닌 부산에서 한·중·일은 물론이고 동남아·유라시아 문화가 섞이며 독특한 맛이 만들어졌다는 통찰이 돋보인다.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