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 국제갤러리 부산점 개인전
2차원 그래픽디자인을 3차원 전시장서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45)는 여러 사물을 수집해 왔다.

특히 오랫동안 그래픽 디자인이 가득한 스티커들을 강박적으로 수집해 온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이렇게 모은 아카이브가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는 스티커들을 모으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사용해서 없애거나 활용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산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지난 8일 시작한 김영나의 개인전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 신작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작들은 작은 스티커 원본을 10∼30배 정도 확대한 형태다.

작가는 스티커를 단순히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용을 편집하고 아크릴, 석고, 섬유, 거울 등 다양한 재료와 접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2차원 그래픽디자인을 3차원 전시장서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들
예를 들어 최후통첩을 뜻하는 '파이널 노티스'(Final Notice)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용어지만 작가는 따뜻한 느낌의 모직으로 구현해 익숙한 관점을 뒤집는다.

이삿짐을 쌀 때 짐이 있던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는 영어 스티커를 반반씩 잘라 붙인 작업은 팬데믹 기간 부엌이 작업 공간이 되거나 거실이 식사하는 공간이 됐던 경험을 반영해 공간의 기능 변화를 이야기한다.

스티커들을 모두 떼어낸 접착지는 대개 그냥 버려지지만 작가는 스티커가 모두 떼어지고 남은 그 모양 자체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거나 입체로 만들어 독립적인 하나의 디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2차원 그래픽디자인을 3차원 전시장서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들
대표 연작인 '세트'(SET) 작업도 선보인다.

작가는 개인 작업이나 주문받아 제작하는 커미션 프로젝트, 전시 출품작 등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작업을 모은 다음 기하학적 기준에 따라 작업을 분류하고 '세트'라는 일종의 샘플북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샘플북의 이미지를 다시 다양한 공간의 벽에 옮기는 '세트'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에 그린 '세트'와 '세트' 벽화의 일부를 다시 캔버스 위에 옮긴 회화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하나의 이미지가 책의 지면이라는 평면에서 벽이라는 또 다른 평면으로, 이후 다시 캔버스로 자유롭게 옮겨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티커 작업이나 세트 작업 모두 2차원의 평면 인쇄물 속 이미지를 3차원의 전시 공간에 구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2차원 그래픽디자인을 3차원 전시장서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들
작가는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전시 공간에 놓았을 때 디자인의 맥락이 사라지고 의미가 없는 대상으로 읽히는 것 같았다"면서 "그래서 (디자인) 작업을 재료로 삼아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설치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 낸 일종의 방법론"이라고 설명했다.

갤러리의 안내 데스크 위에도 작품이 걸렸다.

지난해 독일 뮌헨의 한 아파트에서 전시했던 작가는 이른바 '걸레받이'로 불리는 바닥 몰딩을 터프팅 기법(천 위에 실을 쏘아 심는 기법)으로 장식하는 작업을 했다.

갤러리에는 그중 일부를 떼서 나무틀에 넣은 형태로 소개한다.

앞의 다른 작업과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주어진 공간에서 주어진 구조를 어떻게 강조해서 작품화할까를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디자인은 그저 무엇인가를 아름답게 꾸미거나 주문받은 대로 제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태도가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2차원 그래픽디자인을 3차원 전시장서 보여주는 다양한 방법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