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이 손내밀면 뭐든 해주지, 별도 달도 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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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 손예진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008년 쯤이었을 것이다. 정윤수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의 언론 배급 시사가 끝나고 극장 후문으로 나갈 때였다. 뜻하지 않게 손예진이 서서 나가는 시사 관객들, 기자들,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16년 전이고 손예진이 26살 때였다. 하늘처럼 맑은 외모의 나이일 때이다. 손예진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기억이 정확치 않다는 것이니 나중에 시비를 걸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워딩이었을 것이다. “영화 잘 보셨어요? (쌩글. 눈웃음) 저, 그렇게 싸가지 없지 않죠? (이렇게 인사 드리러 왔잖아요.)”
그때 이후 손예진을 미워한 적이 없다. 사실 손예진을 두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만약 내가 손예진과 살았다면(현빈 씨, 만약입니다.) 손예진이 내게 이렇게 졸라 댔을 공산이 크다. “내가 뭐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래, 달을 갖다 달래. 그냥 현빈이라는 남자하고 결혼 한번 더 한다는 거잖아아아~” 그러면 내가 말했을 것이다. “차라리 별을 따다 줄께.” 갑자기 故김주혁이 그리워진다. 손예진도 그럴 것이다. 손예진이 요즘 들어 부쩍 영화 쪽과 멀어져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드라마 붐 때문이다. 손예진과 현빈은 스타 부부로 최고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들은 ‘비겁하게도(?)’ 드라마 상대 배역으로 만나서 드라마 속에서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이었다가 진짜로 부부가 됐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둘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고, 몸을 부볐던 것은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됐던 부분이다. 비겁하다고 얘기한 건, 그러니까, 그…저…둘이서 ‘사랑의 불시착’을 ‘날로 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연애를 하듯 연기를 했으면 됐으니까. ‘아 샘 나 죽겄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손예진을 좋아하는 팬들, 특히 연하 팬들은 현빈에게 질투를 느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손예진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였기 때문이다. 얼굴도 이뻐, 나이도 많아(남자는 어렸을 때 연상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이건 프로이드 식으로 보면 구순기 적인 욕망이다. 남자는 잠재적으로 엄마가 물려 주던 젖을 그리워 한다.), 거기다 밥도 잘 사 준다고? 이것 만큼 환상적인 일이 어디 있는가. 손예진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됐다. 그런데 그게 다 드라마가 만들어 놓은 향연이다.
언제부턴가 손예진은 영화 쪽에서 이렇다 할 좋은 구질의 피칭을 해 내지 않고 있다. 2016년 허진호가 만든 ‘덕혜옹주’에서 손혜진은 다 늙어 죽어 가는 조선조 마지막 공주 역을 한다. 사람들은 '그래 맞아, 손예진이 연기도 잘했었지'라고 감탄했었다. 그 이후 손예진의 영화는 범작을 이어 가고 있다. 또 다시 현빈과 나온 ‘협상’이란 영화에서 손예진은 다소 스테레오 타입화 된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영화가 ‘걍 그랬다.’ 사실은 이래저래 앞뒤 이야기가 잘 안 맞는, 다소 억지스러운 장르영화였다.
그랬던 손예진이 다시 영화 쪽에서 한 획을 그을 심산인 모양이다. 박찬욱의 신작 영화 ‘도끼’에 캐스팅됐다. 박찬욱은 나이 60이 된 후 다소 조바심을 내고 있는 듯 싶다.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과 7부작 ‘동조자’로 50대를 보낸 셈이다. 물론 ‘헤어질 결심’이 있긴 했다. 그는 앞으로 빠른 시간 안에 드라마 아닌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국말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산물이 바로 ‘도끼’이다.
‘도끼’는 본래 코스타 가브라스의 ‘엑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원전으로 한다. 일종의 리메이크작이다. 그보다는 번안 작품에 가깝겠다. ‘엑스’는 구조조정으로 잘 나가던 직장에서 밀려난 남자의 연쇄 살인극이다. 잔혹하다. 박찬욱 식이다. 박찬욱이 좋아하는 이야기 구조이자 캐릭터의 설정이다. 코스타 가브라스는 ‘Z’나 ‘의문의 실종’, ‘계엄령’같은 그리스 정치상황을 그린 영화들로 유명하며 가브라스와 박찬욱은 반정부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라는 데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
손예진은 여기서 살인극을 벌이는 남편과는 아랑곳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쓰는 커리어 우먼으로 나올 것이다. 근데 이건 잘 모른다. 박찬욱은 원작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유명하고 이번 ‘도끼’에서 손예진의 비중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에 관한 한 손예진은 2000년대 초반 확실한 좌표를 찍었다. ‘클래식’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두 편은 손예진에게 그녀가 향후 일반인으로는 절대 살아 갈 수 없는 스타성, 스타의 자리를 남겼다. 게다가 상대 배우들이 죄 조인성 조승우 정우성 급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수진은 기억을 잃어 간다. 그의 남자 철수(정우성)는 포장마차에서 그녀에게 소주를 콸콸 따라 주며 (그 유명한) 말(을) 한다. “이거 다 마시면 나하고 사귀는 거다.” 수진은 잔을 입에 대고 찬찬히 주욱, 쫄쫄 마신다. 눈은 남자에게 가있다. 클로즈업 롱테이크. 둘은 그렇게 키스를 하고 사랑을 시작한다. 이 장면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 같은 대사를 쳤고 대체로 뺨을 맞았다는 후문이다. 영화 한편이 여러 남자 잡은 적이 있다.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사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좋았던 이유는 여자는 화이트 컬러였던 데 비해 남자는 블루 컬러 계층이었다는 점이다. 2004년은 아직 연상연하 커플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무려 20년전 일이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앞 서 나갔던’ 멜로 드라마였다.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은 21살의 손예진에게 눈물 연기의 진수를 사사했고, 이 영화를 통해 손예진은 연기자가 됐다. ‘클래식’에서 손예진은 엄마 주희와 딸 지혜 역을 했다. 1인2역을 했다. 딸 지혜일 때는 대학생, 엄마 주희일 때는 고등학생이다. ‘클래식’은 서사 구조가 다소 복잡한 로맨스인데 엄마의 기구한 사랑이 딸의 오묘한 연애담으로 중첩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못다한 사랑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남자 아이를 이번엔 다음 세대의 딸 아이가 그 남자 아이를 가까스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얘기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가. 몰라도 된다. 영화를 다시 보시라. 영화는 뒷 부분에 엄청나게 사람을 울린다. 손예진은 10대와 20대를 넘나 들며 연기를 펼치는데 대학생 역할보다 여학생 역할이 훨씬 더 예쁘게 나온다. 사람들은 그때 손예진에게 ‘홀딱’ 반했다. ‘클래식’은 곽재용 감독의 최고 수작이다. 곽재용, 조승우, 조인성, 손예진 모두들 젊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실로 찬란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허진호가 만든 ‘외출’에서의 손예진을 좋아 한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의식불명으로 있는 남녀가 사실은 불륜관계였고 그들을 병 구환하던 각자의 아내와 남편은 그렇다면 우리도 하는 심정으로…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도 아니고 다소 필연적으로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손예진의 이름은 서영이다. 서영의 상대 남자는 김인수(배용준)이다. 영화 ‘외출’의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사랑일까?’ 2005년에 나온 영화였다. 손예진은 이런 비련의 연애에 잘 맞는 스타일이다. 부둥켜 안고 서로의 몸을 비벼대지만 욕망에 떠는 것이 아니라 단 1초라도 떨어지기 싫은 그리움에 몸을 떠는 여인 역에 제 격이다. 사람들은 많이 잊었지만 박신우란 이름의 감독이 만든 ‘백야행’에서 손예진은 비밀과 처연함을 지닌 여인으로 나온다. 여기서도 좋다.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한국 손예진 주연의 영화를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어쨌든 손예진이 영화로 돌아 온다. 40을 갓 넘긴 나이지만 그만큼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선보일 것이다. 박찬욱이 손예진을 어떻게 조형해 낼까. 여배우는 (남자 배우에 비해) 철저하게 감독이 만든다고 한다. 히치콕과 티피 헤드렌, 이창동과 문소리, 박찬욱과 이영애가 그랬다. 특히 박찬욱은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로 하여금 ‘너나 잘하세요’나 ‘XX’ 같은 욕설 대사를 하게 했다. 그처럼 이미지를 확 바꾸게 했다. 손예진의 변신 폭은 얼마 만큼이 될 것인가. 그것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그때 이후 손예진을 미워한 적이 없다. 사실 손예진을 두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만약 내가 손예진과 살았다면(현빈 씨, 만약입니다.) 손예진이 내게 이렇게 졸라 댔을 공산이 크다. “내가 뭐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래, 달을 갖다 달래. 그냥 현빈이라는 남자하고 결혼 한번 더 한다는 거잖아아아~” 그러면 내가 말했을 것이다. “차라리 별을 따다 줄께.” 갑자기 故김주혁이 그리워진다. 손예진도 그럴 것이다. 손예진이 요즘 들어 부쩍 영화 쪽과 멀어져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드라마 붐 때문이다. 손예진과 현빈은 스타 부부로 최고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들은 ‘비겁하게도(?)’ 드라마 상대 배역으로 만나서 드라마 속에서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이었다가 진짜로 부부가 됐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둘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고, 몸을 부볐던 것은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됐던 부분이다. 비겁하다고 얘기한 건, 그러니까, 그…저…둘이서 ‘사랑의 불시착’을 ‘날로 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연애를 하듯 연기를 했으면 됐으니까. ‘아 샘 나 죽겄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손예진을 좋아하는 팬들, 특히 연하 팬들은 현빈에게 질투를 느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손예진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였기 때문이다. 얼굴도 이뻐, 나이도 많아(남자는 어렸을 때 연상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이건 프로이드 식으로 보면 구순기 적인 욕망이다. 남자는 잠재적으로 엄마가 물려 주던 젖을 그리워 한다.), 거기다 밥도 잘 사 준다고? 이것 만큼 환상적인 일이 어디 있는가. 손예진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됐다. 그런데 그게 다 드라마가 만들어 놓은 향연이다.
언제부턴가 손예진은 영화 쪽에서 이렇다 할 좋은 구질의 피칭을 해 내지 않고 있다. 2016년 허진호가 만든 ‘덕혜옹주’에서 손혜진은 다 늙어 죽어 가는 조선조 마지막 공주 역을 한다. 사람들은 '그래 맞아, 손예진이 연기도 잘했었지'라고 감탄했었다. 그 이후 손예진의 영화는 범작을 이어 가고 있다. 또 다시 현빈과 나온 ‘협상’이란 영화에서 손예진은 다소 스테레오 타입화 된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영화가 ‘걍 그랬다.’ 사실은 이래저래 앞뒤 이야기가 잘 안 맞는, 다소 억지스러운 장르영화였다.
그랬던 손예진이 다시 영화 쪽에서 한 획을 그을 심산인 모양이다. 박찬욱의 신작 영화 ‘도끼’에 캐스팅됐다. 박찬욱은 나이 60이 된 후 다소 조바심을 내고 있는 듯 싶다.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과 7부작 ‘동조자’로 50대를 보낸 셈이다. 물론 ‘헤어질 결심’이 있긴 했다. 그는 앞으로 빠른 시간 안에 드라마 아닌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국말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산물이 바로 ‘도끼’이다.
‘도끼’는 본래 코스타 가브라스의 ‘엑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원전으로 한다. 일종의 리메이크작이다. 그보다는 번안 작품에 가깝겠다. ‘엑스’는 구조조정으로 잘 나가던 직장에서 밀려난 남자의 연쇄 살인극이다. 잔혹하다. 박찬욱 식이다. 박찬욱이 좋아하는 이야기 구조이자 캐릭터의 설정이다. 코스타 가브라스는 ‘Z’나 ‘의문의 실종’, ‘계엄령’같은 그리스 정치상황을 그린 영화들로 유명하며 가브라스와 박찬욱은 반정부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라는 데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
손예진은 여기서 살인극을 벌이는 남편과는 아랑곳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쓰는 커리어 우먼으로 나올 것이다. 근데 이건 잘 모른다. 박찬욱은 원작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유명하고 이번 ‘도끼’에서 손예진의 비중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에 관한 한 손예진은 2000년대 초반 확실한 좌표를 찍었다. ‘클래식’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두 편은 손예진에게 그녀가 향후 일반인으로는 절대 살아 갈 수 없는 스타성, 스타의 자리를 남겼다. 게다가 상대 배우들이 죄 조인성 조승우 정우성 급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수진은 기억을 잃어 간다. 그의 남자 철수(정우성)는 포장마차에서 그녀에게 소주를 콸콸 따라 주며 (그 유명한) 말(을) 한다. “이거 다 마시면 나하고 사귀는 거다.” 수진은 잔을 입에 대고 찬찬히 주욱, 쫄쫄 마신다. 눈은 남자에게 가있다. 클로즈업 롱테이크. 둘은 그렇게 키스를 하고 사랑을 시작한다. 이 장면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 같은 대사를 쳤고 대체로 뺨을 맞았다는 후문이다. 영화 한편이 여러 남자 잡은 적이 있다.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사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좋았던 이유는 여자는 화이트 컬러였던 데 비해 남자는 블루 컬러 계층이었다는 점이다. 2004년은 아직 연상연하 커플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무려 20년전 일이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앞 서 나갔던’ 멜로 드라마였다.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은 21살의 손예진에게 눈물 연기의 진수를 사사했고, 이 영화를 통해 손예진은 연기자가 됐다. ‘클래식’에서 손예진은 엄마 주희와 딸 지혜 역을 했다. 1인2역을 했다. 딸 지혜일 때는 대학생, 엄마 주희일 때는 고등학생이다. ‘클래식’은 서사 구조가 다소 복잡한 로맨스인데 엄마의 기구한 사랑이 딸의 오묘한 연애담으로 중첩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못다한 사랑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남자 아이를 이번엔 다음 세대의 딸 아이가 그 남자 아이를 가까스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얘기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가. 몰라도 된다. 영화를 다시 보시라. 영화는 뒷 부분에 엄청나게 사람을 울린다. 손예진은 10대와 20대를 넘나 들며 연기를 펼치는데 대학생 역할보다 여학생 역할이 훨씬 더 예쁘게 나온다. 사람들은 그때 손예진에게 ‘홀딱’ 반했다. ‘클래식’은 곽재용 감독의 최고 수작이다. 곽재용, 조승우, 조인성, 손예진 모두들 젊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실로 찬란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허진호가 만든 ‘외출’에서의 손예진을 좋아 한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의식불명으로 있는 남녀가 사실은 불륜관계였고 그들을 병 구환하던 각자의 아내와 남편은 그렇다면 우리도 하는 심정으로…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도 아니고 다소 필연적으로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손예진의 이름은 서영이다. 서영의 상대 남자는 김인수(배용준)이다. 영화 ‘외출’의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사랑일까?’ 2005년에 나온 영화였다. 손예진은 이런 비련의 연애에 잘 맞는 스타일이다. 부둥켜 안고 서로의 몸을 비벼대지만 욕망에 떠는 것이 아니라 단 1초라도 떨어지기 싫은 그리움에 몸을 떠는 여인 역에 제 격이다. 사람들은 많이 잊었지만 박신우란 이름의 감독이 만든 ‘백야행’에서 손예진은 비밀과 처연함을 지닌 여인으로 나온다. 여기서도 좋다.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한국 손예진 주연의 영화를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어쨌든 손예진이 영화로 돌아 온다. 40을 갓 넘긴 나이지만 그만큼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선보일 것이다. 박찬욱이 손예진을 어떻게 조형해 낼까. 여배우는 (남자 배우에 비해) 철저하게 감독이 만든다고 한다. 히치콕과 티피 헤드렌, 이창동과 문소리, 박찬욱과 이영애가 그랬다. 특히 박찬욱은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로 하여금 ‘너나 잘하세요’나 ‘XX’ 같은 욕설 대사를 하게 했다. 그처럼 이미지를 확 바꾸게 했다. 손예진의 변신 폭은 얼마 만큼이 될 것인가. 그것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