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심리학자가 쓴 신간 '자아 폭발'
전쟁·가부장제·불평등…'자아'에 눈뜨며 시작된 인류의 비극
좋은 시절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인류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살았다.

일주일에 12~20시간 정도만 식량을 찾아다니고 나머지 시간은 편히 쉬었다.

식단도 괜찮았다.

과일, 채소, 뿌리, 열매 등을 날 것 그대로 먹었다.

여기저기 이동하느라 하루 20㎞는 거뜬히 걸어 다녔다.

적당한 일과 건강한 생활 습관. 삶은 윤택했고, 신체는 건강했다.

각종 유골을 보면 고대인의 체구는 거대하고, 강력하며 각종 퇴행성 질환과 충치 같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그리스와 튀르키예 수렵채집인들의 경우 남성은 177㎝, 여성은 167.6㎝에 달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러나 농경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체구는 왜소해졌다.

남성 평균 키는 160㎝, 여성은 155㎝로 크게 줄었다.

전반적인 영양상태도 악화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전쟁·가부장제·불평등…'자아'에 눈뜨며 시작된 인류의 비극
영국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는 기원전 4천년 경 발생한 '자아 폭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인류가 강하고 예민한 자아를 갖게 된 그 시점부터 "인류의 타락"이 시작됐다고 그는 말한다.

신간 '자아 폭발'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까지만 해도 인류는 서로에 의존했다.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고, 개인의 이름조차 잘 사용되지 않았다.

식량도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사냥에 성공했다고, 화살촉의 주인이라고, 더 많이 가져가지 않았다.

독립된 '자아'가 아닌 '상호의존적 자아'를 지닌 채 생활했다.

사회는 여성 중심으로 꾸려졌다.

식량의 80~90%를 여성이 마련했으며 성적 평등주의가 만연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사하라 지역이 사막화됐고, 그로 인해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집단적인 이주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셈족 등이 이웃 부족을 점령해나갔다.

갑작스럽게 전쟁이 빈번해졌고, 전쟁에 참여한 남성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이주민들은 애초 먹고 살고자 다른 부족을 침략했으나 점점 욕심이 커졌다.

영토,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왕과 귀족이 탄생했고, 노예가 나타났다.

가뭄이 빈번했던 사하라시아지역(북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 일대)은 전쟁, 가부장제, 불평등이 고조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의 1~2%에 불과한 소수의 특권층이 국가의 부와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며 정치적·경제적·법적 결정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인류의 대이동이 불러온 '타락'이었다.

전쟁·가부장제·불평등…'자아'에 눈뜨며 시작된 인류의 비극
그런 타락 속에서 인류는 전쟁, 억압과 불평등, 환경 파괴 등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나 성과 육체에 대한 수치심, 행복과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 우울증, 정서장애 등 개인적 병리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지난 6천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광기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타락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지배나 물질주의적 태도를 줄이고, 부성을 약화하며 국가 간의 협업을 강화하자고 저자는 촉구한다.

또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인류 전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견딜 수 있다는 이타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이타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 아우르는 자연 모두를 의미한다.

봄철에 인디언들은 말에서 쇠로 된 발굽을 제거하고, 유럽의 신발과 마차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땅을 다치게 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을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인디언들의 지혜가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스테인. 우태영 옮김. 42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