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59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59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교문 앞 풍경입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교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때 한국의 1인당 GDP는 세계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오른쪽에서 보이는 어린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말끔한 정장 차림의 아이들이 눈길을 끕니다. 가난했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의 자식을 잘 입히고 공부시키려는 열망이 엄청났습니다. 명절에나 입을 법한 한복을 입고 입학식장을 찾은 그 모습에서 그 시대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196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6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1964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율동'을 배우는 장면입니다. 유치원 교육이 드물었던 그 시절,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춤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난생처음 율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표정엔 호기심과 당혹감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1966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개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66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개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66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개학식. 입학식과 개학식을 마친 아이들이 줄을 서서 교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옷차림도 촌스럽지만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뭐든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1979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날/한경디지털자산
1979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날/한경디지털자산
1979년 서울 미동국민한교 방학식 날 1학년 어린이들의 표정입니다.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는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사진기자의 요청으로 통지표(성적표)를 한 손으로 높이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수우미양가 성적은 제각각이었겠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습니다. 신나게 놀 수 있는 긴 방학에 들어간다는 것 하나로 아이들은 기쁘기만 했습니다.
1982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1982년 서울 미동국민학교 입학식/한경디지털자산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생)'는 산업화를 일군 세대입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자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가혹했습니다. 엄격한 가부장 사회 속에서 시부모를 모셨고, 자식을 예닐곱씩 낳아 길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가족의 밥상을 차렸고, 자녀들을 위한 도시락을 여러 개 싸야 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 학비에 보태기 위해 집안일에 부업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들의 이런 희생 위에, 1950년대 중반~1960년대 태어난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취업 공부하면, 노력한 만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도성장기에 빠르게 커나가고 있던 기업에 들어간 그들은 주 6일 근무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한국의 산업화를 일궜습니다. 또한 그들은 월급을 모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집 한채를 살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재테크에 신경을 쓴 사람은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서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상당한 자산을 쌓을 수도 있었습니다.

죽자사자 노력하면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1950년대~1960년대 생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보냈습니다. 자식들이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죠. 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은 '하면 된다'라는 박 대통령의 철학을 듣고 자랐습니다. 거리에도 교실에도 '하면 된다'라는 네 글자가 늘 펄럭였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 세대는 그런 생각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더 가르치면 더 큰 것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세기 후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습니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벌였습니다. 수도권은 더 과밀해졌고, 주택값은 올랐고 나은 삶을 향한 경쟁은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 체제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1950년대~1960년대 생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원에 거의 가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주산학원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때도 소수의 아이들만 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대입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1960년대 생들은 고교시절 전두환 정부의 과외금지 조치로 학교 수업만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의 '초경쟁사회'를 구축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과 직장과 직업을 일렬로 세워 등수를 매기고, 여러 그룹으로 나누는 희한한 정서는 과열경쟁 사회가 빚은 기이한 현상입니다. 지독한 경쟁의 과정을 겪은 요즘 세대는 그래서 단 1점만 높아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겠다는 욕망을 갖게됐습니다. 사교육업계는 그런 현상을 부추겨 큰 돈을 벌었습니다. 결국 이런 순위매기기 경쟁체제에선 1등부터 100등까지 모두가 불행하게 됩니다. 1등은 1등의 결과물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아서 불행하고, 2등은 1등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하고, 50등은 더 상위권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불행하다 느낍니다.

출산율 0.65. 신입생 없는 초등학교 157개. 우리는 국가 소멸을 걱정하게 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아이디어와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앞에 둬야 할 것은 ‘행복’이란 단어가 아닐까요. 청년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통지표를 들고 성적에 상관없이 환하게 웃으며 방학을 맞이하는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을 이 시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얼굴에서도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봅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