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놀라운 업적에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여성들
역사는 늘 강자의 관점에서 쓰였고, 약자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놀라운 업적과 성과를 이뤘음에도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이 있다.

여성들이 아무리 위대한 발명과 발견을 했더라도 남성들이 손쉽게 그 공로를 가로챘다. 여성들의 이름이 역사에 남았을지라도 그들은 ‘뮤즈’ ‘비서’ ‘아내’ 또는 ‘연인’으로 기록될 뿐이었다. 오랫동안 이렇게 여성들의 업적과 영향력은 빼앗기거나 무시당했다.

최근 독일에서 출간된 <도난당한 여성(Beklaute Frauen)>이란 책이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주목받고 있다. 역사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인 레오니 쇨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 많은 남성은 그들의 아내, 연인 또는 딸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며 안타깝게도 위대한 업적을 탄생시킨 여성들의 이름이 교묘하게 역사에서 지워졌다고 고발한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놀라운 업적에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여성들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20만 명 이상의 팔로어와 소통하면서 역사와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저자는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 위대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심지어 천재 과학자라고 불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조차 여성의 도움 없이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개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모두 여성들의 업적을 가로챈 사람이었다.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제임스 D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에 결정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찾아낸 인물은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었다.

1958년 난소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는 안타깝게도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생존한 사람만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고, 노벨상 위원회가 분야당 수상자를 3명으로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프랭클린은 DNA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를 향한 무시와 편견 때문에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DNA의 다크 레이디’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여성 화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독일 화학자 오토 한과 함께 원자핵이 중성자의 충돌로 분열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들의 연구는 2차 세계대전 독일과 미국의 핵폭탄 개발 경쟁에 불을 지폈고, 1944년 한은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상자 명단에 마이트너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남성 중심의 과학자 세계에서 마이트너는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 외에 책에는 비범한 능력과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세계에 팽배한 ‘유리 천장’ 때문에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여성 지식인들이 소개되고 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놀라운 업적에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여성들
“오늘날에도 남성들은 여성 작가가 쓴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남성 작가의 책은 여성과 남성이 거의 동등하게 구매하는 반면 여성 작가 책의 독자층은 85%가 여성입니다. 그래서 20세기까지만 해도 많은 여성 작가가 남성 이름으로 또는 가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지식의 권력이나 지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아주 따끔한 지적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