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음악가들이 명작 쏟아낸 곳,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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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부심' 런던으로 떠나는 음악여행
'클래식 부심' 런던으로 떠나는 음악여행
“17세 때 생애 첫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방문한 도시가 런던이었어요. 당시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영국 명문 음악제인 BBC 프롬스가 열렸는데, 사람들이 마치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모두 일어서서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있었죠.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광경에) 너무나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연주자로 살면서 런던에만 70번은 족히 온 것 같아요.”
그래미상, 그라모폰상, 에코클래식상 등 국제적 권위의 음반상을 전부 휩쓴 미국 출신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57)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얘기다. 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국의 수도 런던은 세계 최고 음악가와 오케스트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찾는 ‘예술의 도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영향으로 도시의 권위가 예전보다 덜하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런던의 입지는 굳건하다.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독일)부터 하이든(오스트리아), 클레멘티(이탈리아), 멘델스존(독일)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오래 머물며 수많은 명작을 쏟아낸 도시가 바로 런던.
올해로 129년 된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음악 축제 BBC 프롬스가 열리는 도시라는 점도 그렇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주최하는 이 축제는 화려한 아티스트 라인업과 믿기지 않는 저렴한 티켓 가격, 청중이 바닥에 앉거나 자리에 서서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도록 하는 혁신적인 공연 형식 등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축제가 열리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름철 세계인의 귀를 매혹하는 게 BBC 프롬스라면, 사계절 내내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런던의 명소들도 있다.
음악가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123년 역사의 명문 음악당 위그모어홀,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 바비칸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클래식 음악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두 공연장을 미리 가봤다. 올해 런던 위그모어홀과 바비칸센터에선 피아니스트 임윤찬·언드라시 시프·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바이올리니스트 아네 조피 무터·힐러리 한·율리아 피셔 등 독보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가들의 연주가 이어진다.무대까지 단 세 뼘…550석 작은 음악당에 클래식 거장들 줄 선다
영국 런던에 자리한 위그모어홀은 신예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장소로 통한다. “미국에 카네기홀이 있다면 유럽엔 위그모어홀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공연이 열렸다 하면 웬만한 클래식 애호가, 연주자, 음악 기획자부터 내로라하는 유명 비평가까지 모두 이곳을 찾는다. 550석 규모의 작은 음악당이 수천 명을 수용하는 유명 콘서트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23년의 긴 역사 속,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음악가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장소라서다.
위그모어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01년 5월 31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페루치오 부소니,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 등 당대 엄청난 명성을 자랑한 거장들의 공연이 열리면서다. 이후 브람스에게 영감을 준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 피아노의 명인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 등 수많은 연주자가 위그모어홀 무대에 올랐다. 라벨, 생상스, 포레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한 유수 작곡가들도 위그모어홀을 직접 찾아 자신의 작품 연주를 자주 즐겼다고 기록돼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1976년 위그모어홀에서 그의 마지막 연주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 다닐 트리포노프 등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이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위그모어홀이 음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미국 카네기홀처럼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정말 위대한 음악가들이 거쳐 간 그런 장소들을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어릴 때부터 항상 꿈꿔왔던 ‘위그모어홀’에 꼭 서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위그모어홀이란 명칭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개관 당시 이름은 ‘벡스타인홀’이었다. 독일 피아노 제조업체 벡스타인이 자사 피아노 전시실 옆에 지은 홀이란 이유에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업 자산으로 압류돼 문을 닫았다가 1916년 데벤햄스그룹에 매각됐고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홀이 자리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정식 명칭이 지금의 ‘위그모어홀’이다.
사보이호텔 등을 설계한 건축가 토머스 에드워드 콜컷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이 홀은 설립 초기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색 대리석과 앨러배스터(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오묘한 벽면과 긴 세월에 빛바랜 금색 가스등, 촛대 등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물론 누가 뭐라 해도 이 홀의 시그니처는 반원형 무대 위쪽에 있는 ‘음악의 영혼’ 천장화다. 화가 제럴드 모이라가 디자인한 이 천장화 중앙에는 ‘음악의 영혼’을 의미하는 무성(無性)의 존재가 황금빛으로 장식돼 있다. 그 양옆에 있는 연주자와 작곡가에겐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가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불필요한 울림은 용납되지 않는다…피아노와 나만 있는 '황홀경'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지난 7일 저녁 런던의 위그모어홀. 고전 영화 속 오래된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릴 때나 들릴 법한 독특한 벨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곧 연주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마치 1900년대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때로 시간 여행을 보내주듯, 123년 역사의 위그모어홀은 첫 만남부터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2분 정도 지났을까. 피아노 뒤 좁은 문을 열고 한 연주자가 등장했다. 프랑스 최고 음반상인 ‘디아파종 도르’,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를 차지한 데 이어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5개 만점의 극찬을 받은 명피아니스트 레온 매컬리였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와!’란 감탄사가 터져 나올 뻔했다. 위그모어홀의 음향은 그 명성대로 최고였다. 피아니스트의 터치 하나하나가 마치 섬세하게 빚어낸 유리알처럼 선명하게 튀어 올라 귀에 꽂혔다. 불필요한 울림은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위그모어홀에서의 매컬리 연주는 마치 피아노와 듣는 이 두 존재만이 독대(獨對)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소리의 초점이 완벽하게 모여드는 탄탄한 음향, 어느 한 선율도 해치지 않는 입체적인 음향은 단 3분도 안 돼 청중 모두를 황홀경에 빠지게 할 만큼 훌륭했다.
물론 연주자의 기량이 원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컬리는 첫 곡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D장조에서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반동에 의해 손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도록 가볍게 툭툭 끊어 연주했다. 섬세하게 밀도를 조율하다가도 돌연 무게감 있는 터치로 뼈대가 되는 음을 명료히 강조하는 그의 연주는 하이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쇼팽 즉흥곡 1번은 담백했다. 따뜻한 색채와 우아한 서정을 부각하려는 요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비교하면 매컬리는 겉멋을 쫙 빼고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그때그때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한 듯했다.
마지막 작품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935. 네 곡이 일체를 이루도록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건반을 치는 속도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음 등을 예민하게 조율하며 각 즉흥곡의 성격을 명징하게 들려줬다. 순식간에 고음에서 저음으로 쏟아지는 듯한 격렬한 아르페지오 연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어냈다.
“‘이 경이로운 홀’을 언제까지나 계속 지지해주십시오.” 전설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위그모어홀에서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올리며 남긴 말이다. 매컬리의 마음도 같은 것처럼 보였다.
무대와 객석 간 최소 거리가 세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음악당에서 그는 단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았고, 홀은 음악가들의 언어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빚어내 청중에게 전했다. ‘왜 위그모어홀에서 꼭 연주를 들어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무대였다.거친 콘크리트 속에 감성 숨었네…런던 심포니 품은 '바비칸센터'
영국 바비칸센터는 ‘유럽 최대 복합예술문화센터’로 불리는 런던의 명소다. 외관부터 남다르다. 가공하지 않은 재료와 설비, 노출된 콘크리트 때문에 보는 순간 ‘어딘가 음산하고 거칠다’란 인상을 남긴다. 1950~1970년대 영국 건축계에서 유행한 ‘브루탈리즘(Brutalism)’ 양식으로 만들어진 영향이다. 브루탈리즘이란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서구 건축에 비해 다소 야수적인 건축을 지향하는 사조를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폭격이 심했던 지역에서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바비칸센터는 10여 년의 공사를 거쳐 1982년 문을 열었다. 설계에는 건축가 체임벌린, 파월, 본이 참여했다. 독특한 외형 탓에 한때 BBC가 선정한 ‘가장 흉물스러운 건물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을 꼽을 때 늘 빠지지 않는다. 2001년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급 보존 건물로 지정되면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에 자리한 바비칸센터에선 클래식 공연은 물론 전시,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2000석 규모의 바비칸 메인 홀과 1150석 규모의 바비칸 극장 앞은 언제나 공연을 기다리는 가족 단위의 인파로 북적이고, 2층에 대규모로 설계된 공공 도서관은 원하는 책과 음원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이 도서관은 200만 개 이상의 클래식 음악 트랙과 3000개 이상의 클래식 음악 공연 비디오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미셸 바스키아, 리 크래스너 등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아트 갤러리는 3층에 있다. 바비칸센터엔 1500종 이상의 식물을 기르고 있는 온실이 있는데, 여기선 조각가들이 설치한 예술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야외 테라스에선 투박한 질감의 센터 외관과 녹색 빛깔의 신비로운 분수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 바비칸센터는 세계적인 명문 악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으로 더 유명하다. 런던 심포니는 주로 바비칸 홀에서 공연을 여는데,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아닌 만큼 음향적으로는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래된 음향 때문에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 재임 시절 런던시에 새로운 공연장 설립을 강하게 요구했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런던시가 2억8800만파운드(약 4860억원)를 들여 새 공연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바비칸센터가 런던 심포니엔 애증의 공간인 셈이다.한음 한음 전해지는 감동에…점잖은 英 신사, 벌떡 일어나 "브라보"
“정말 경악할 만한 연주예요.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요. 안 그런가요?”
지난 8일 저녁 영국 런던 바비칸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던 한 60대 신사가 건넨 말이다. 그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2000명 규모의 청중은 이제야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겠다는 듯 일제히 큰 탄성을 내뱉었다. 그럴 만한 연주였다. 바비칸 홀을 뚫고 나오는 런던 심포니의 강렬한 음색과 응축된 소리의 움직임은 듣는 내내 온몸이 동아줄로 꽁꽁 묶였다 느껴질 정도로 아찔했다.
출연진부터 범상치 않았다. 현재 여성 지휘자로는 유일하게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의 수장을 맡는 마에스트라 나탈리 스튀츠망(애틀랜타 심포니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그라모폰상을 7차례나 거머쥔 노르웨이 출신인 피아노 거장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함께 들려준 작품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 안스네스의 연주는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 음역에 따라 색채까지 바꿔가면서 풍부한 양감을 만들어내는 실력은 일품이었다. 모차르트가 악보에 써낸 음악적 언어, 견고한 구조, 짜임새가 더할나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이라이트는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1악장 초입은 차분하게 출발해 서서히 해가 떠오르듯 악상을 펼쳐내면서 극적인 발전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스튀츠망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는 작품의 역동적 변화를 더없이 완벽하게 들려줬다. 현의 통일된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위로 덧입혀진 호른과 첼로의 단단한 울림, 선율에 새로운 성부가 하나씩 더해지는 순간마다 강해지는 응집력, 모든 악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광활한 에너지는 마치 거대한 음(音)의 홍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 같은 압도적 경험을 선사했다.
그저 각 음역만 채워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작품을 완전히 꿰고 있을 때만 낼 수 있는 입체적이면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연주였다. 거대한 음향, 생동감 넘치는 리듬 표현, 폭넓은 다이내믹, 장대한 에너지로 마지막 한 음까지 빈틈없이 몰아붙이는 결말은 브루크너가 그린 ‘환희의 세계’ 그 자체였다. 한스 리히터,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등 세계적인 명장의 손을 거친 120년 전통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여러모로 다른 차원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보다 더 정확히 이들의 연주를 표현할 단어가 또 있을까.
런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그래미상, 그라모폰상, 에코클래식상 등 국제적 권위의 음반상을 전부 휩쓴 미국 출신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57)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얘기다. 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국의 수도 런던은 세계 최고 음악가와 오케스트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찾는 ‘예술의 도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영향으로 도시의 권위가 예전보다 덜하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런던의 입지는 굳건하다.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독일)부터 하이든(오스트리아), 클레멘티(이탈리아), 멘델스존(독일)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오래 머물며 수많은 명작을 쏟아낸 도시가 바로 런던.
올해로 129년 된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음악 축제 BBC 프롬스가 열리는 도시라는 점도 그렇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주최하는 이 축제는 화려한 아티스트 라인업과 믿기지 않는 저렴한 티켓 가격, 청중이 바닥에 앉거나 자리에 서서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도록 하는 혁신적인 공연 형식 등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축제가 열리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름철 세계인의 귀를 매혹하는 게 BBC 프롬스라면, 사계절 내내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런던의 명소들도 있다.
음악가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123년 역사의 명문 음악당 위그모어홀,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 바비칸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클래식 음악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두 공연장을 미리 가봤다. 올해 런던 위그모어홀과 바비칸센터에선 피아니스트 임윤찬·언드라시 시프·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바이올리니스트 아네 조피 무터·힐러리 한·율리아 피셔 등 독보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가들의 연주가 이어진다.
무대까지 단 세 뼘…550석 작은 음악당에 클래식 거장들 줄 선다
123년 역사의 정통 클래식 무대, 위그모어홀
영국 런던에 자리한 위그모어홀은 신예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장소로 통한다. “미국에 카네기홀이 있다면 유럽엔 위그모어홀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공연이 열렸다 하면 웬만한 클래식 애호가, 연주자, 음악 기획자부터 내로라하는 유명 비평가까지 모두 이곳을 찾는다. 550석 규모의 작은 음악당이 수천 명을 수용하는 유명 콘서트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23년의 긴 역사 속,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음악가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장소라서다.위그모어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01년 5월 31일.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페루치오 부소니,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 등 당대 엄청난 명성을 자랑한 거장들의 공연이 열리면서다. 이후 브람스에게 영감을 준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 피아노의 명인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 등 수많은 연주자가 위그모어홀 무대에 올랐다. 라벨, 생상스, 포레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한 유수 작곡가들도 위그모어홀을 직접 찾아 자신의 작품 연주를 자주 즐겼다고 기록돼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1976년 위그모어홀에서 그의 마지막 연주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 다닐 트리포노프 등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이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위그모어홀이 음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이유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미국 카네기홀처럼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정말 위대한 음악가들이 거쳐 간 그런 장소들을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어릴 때부터 항상 꿈꿔왔던 ‘위그모어홀’에 꼭 서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위그모어홀이란 명칭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개관 당시 이름은 ‘벡스타인홀’이었다. 독일 피아노 제조업체 벡스타인이 자사 피아노 전시실 옆에 지은 홀이란 이유에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기업 자산으로 압류돼 문을 닫았다가 1916년 데벤햄스그룹에 매각됐고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홀이 자리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정식 명칭이 지금의 ‘위그모어홀’이다.
사보이호텔 등을 설계한 건축가 토머스 에드워드 콜컷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이 홀은 설립 초기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색 대리석과 앨러배스터(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오묘한 벽면과 긴 세월에 빛바랜 금색 가스등, 촛대 등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물론 누가 뭐라 해도 이 홀의 시그니처는 반원형 무대 위쪽에 있는 ‘음악의 영혼’ 천장화다. 화가 제럴드 모이라가 디자인한 이 천장화 중앙에는 ‘음악의 영혼’을 의미하는 무성(無性)의 존재가 황금빛으로 장식돼 있다. 그 양옆에 있는 연주자와 작곡가에겐 에로스의 연인 프시케가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불필요한 울림은 용납되지 않는다…피아노와 나만 있는 '황홀경'
'피아노 거장' 레온 맥컬리 연주 리뷰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지난 7일 저녁 런던의 위그모어홀. 고전 영화 속 오래된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릴 때나 들릴 법한 독특한 벨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곧 연주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마치 1900년대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때로 시간 여행을 보내주듯, 123년 역사의 위그모어홀은 첫 만남부터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2분 정도 지났을까. 피아노 뒤 좁은 문을 열고 한 연주자가 등장했다. 프랑스 최고 음반상인 ‘디아파종 도르’,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를 차지한 데 이어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5개 만점의 극찬을 받은 명피아니스트 레온 매컬리였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와!’란 감탄사가 터져 나올 뻔했다. 위그모어홀의 음향은 그 명성대로 최고였다. 피아니스트의 터치 하나하나가 마치 섬세하게 빚어낸 유리알처럼 선명하게 튀어 올라 귀에 꽂혔다. 불필요한 울림은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위그모어홀에서의 매컬리 연주는 마치 피아노와 듣는 이 두 존재만이 독대(獨對)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소리의 초점이 완벽하게 모여드는 탄탄한 음향, 어느 한 선율도 해치지 않는 입체적인 음향은 단 3분도 안 돼 청중 모두를 황홀경에 빠지게 할 만큼 훌륭했다.
물론 연주자의 기량이 원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컬리는 첫 곡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D장조에서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단 반동에 의해 손이 하늘을 향해 떠오르도록 가볍게 툭툭 끊어 연주했다. 섬세하게 밀도를 조율하다가도 돌연 무게감 있는 터치로 뼈대가 되는 음을 명료히 강조하는 그의 연주는 하이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쇼팽 즉흥곡 1번은 담백했다. 따뜻한 색채와 우아한 서정을 부각하려는 요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비교하면 매컬리는 겉멋을 쫙 빼고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그때그때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한 듯했다.
마지막 작품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935. 네 곡이 일체를 이루도록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건반을 치는 속도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음 등을 예민하게 조율하며 각 즉흥곡의 성격을 명징하게 들려줬다. 순식간에 고음에서 저음으로 쏟아지는 듯한 격렬한 아르페지오 연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어냈다.
“‘이 경이로운 홀’을 언제까지나 계속 지지해주십시오.” 전설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위그모어홀에서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올리며 남긴 말이다. 매컬리의 마음도 같은 것처럼 보였다.
무대와 객석 간 최소 거리가 세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음악당에서 그는 단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았고, 홀은 음악가들의 언어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빚어내 청중에게 전했다. ‘왜 위그모어홀에서 꼭 연주를 들어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무대였다.
거친 콘크리트 속에 감성 숨었네…런던 심포니 품은 '바비칸센터'
공연부터 영화까지…유럽 최대 문화공간, 바비칸 센터
영국 바비칸센터는 ‘유럽 최대 복합예술문화센터’로 불리는 런던의 명소다. 외관부터 남다르다. 가공하지 않은 재료와 설비, 노출된 콘크리트 때문에 보는 순간 ‘어딘가 음산하고 거칠다’란 인상을 남긴다. 1950~1970년대 영국 건축계에서 유행한 ‘브루탈리즘(Brutalism)’ 양식으로 만들어진 영향이다. 브루탈리즘이란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서구 건축에 비해 다소 야수적인 건축을 지향하는 사조를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폭격이 심했던 지역에서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바비칸센터는 10여 년의 공사를 거쳐 1982년 문을 열었다. 설계에는 건축가 체임벌린, 파월, 본이 참여했다. 독특한 외형 탓에 한때 BBC가 선정한 ‘가장 흉물스러운 건물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을 꼽을 때 늘 빠지지 않는다. 2001년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급 보존 건물로 지정되면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에 자리한 바비칸센터에선 클래식 공연은 물론 전시,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2000석 규모의 바비칸 메인 홀과 1150석 규모의 바비칸 극장 앞은 언제나 공연을 기다리는 가족 단위의 인파로 북적이고, 2층에 대규모로 설계된 공공 도서관은 원하는 책과 음원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이 도서관은 200만 개 이상의 클래식 음악 트랙과 3000개 이상의 클래식 음악 공연 비디오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미셸 바스키아, 리 크래스너 등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아트 갤러리는 3층에 있다. 바비칸센터엔 1500종 이상의 식물을 기르고 있는 온실이 있는데, 여기선 조각가들이 설치한 예술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야외 테라스에선 투박한 질감의 센터 외관과 녹색 빛깔의 신비로운 분수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 바비칸센터는 세계적인 명문 악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으로 더 유명하다. 런던 심포니는 주로 바비칸 홀에서 공연을 여는데,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아닌 만큼 음향적으로는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래된 음향 때문에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 재임 시절 런던시에 새로운 공연장 설립을 강하게 요구했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런던시가 2억8800만파운드(약 4860억원)를 들여 새 공연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바비칸센터가 런던 심포니엔 애증의 공간인 셈이다.
한음 한음 전해지는 감동에…점잖은 英 신사, 벌떡 일어나 "브라보"
'유럽 명문' 런던 심포니 공연 리뷰
“정말 경악할 만한 연주예요.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요. 안 그런가요?”지난 8일 저녁 영국 런던 바비칸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던 한 60대 신사가 건넨 말이다. 그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2000명 규모의 청중은 이제야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겠다는 듯 일제히 큰 탄성을 내뱉었다. 그럴 만한 연주였다. 바비칸 홀을 뚫고 나오는 런던 심포니의 강렬한 음색과 응축된 소리의 움직임은 듣는 내내 온몸이 동아줄로 꽁꽁 묶였다 느껴질 정도로 아찔했다.
출연진부터 범상치 않았다. 현재 여성 지휘자로는 유일하게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의 수장을 맡는 마에스트라 나탈리 스튀츠망(애틀랜타 심포니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그라모폰상을 7차례나 거머쥔 노르웨이 출신인 피아노 거장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함께 들려준 작품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 안스네스의 연주는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 음역에 따라 색채까지 바꿔가면서 풍부한 양감을 만들어내는 실력은 일품이었다. 모차르트가 악보에 써낸 음악적 언어, 견고한 구조, 짜임새가 더할나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이라이트는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1악장 초입은 차분하게 출발해 서서히 해가 떠오르듯 악상을 펼쳐내면서 극적인 발전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스튀츠망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는 작품의 역동적 변화를 더없이 완벽하게 들려줬다. 현의 통일된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 위로 덧입혀진 호른과 첼로의 단단한 울림, 선율에 새로운 성부가 하나씩 더해지는 순간마다 강해지는 응집력, 모든 악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광활한 에너지는 마치 거대한 음(音)의 홍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 같은 압도적 경험을 선사했다.
그저 각 음역만 채워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작품을 완전히 꿰고 있을 때만 낼 수 있는 입체적이면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연주였다. 거대한 음향, 생동감 넘치는 리듬 표현, 폭넓은 다이내믹, 장대한 에너지로 마지막 한 음까지 빈틈없이 몰아붙이는 결말은 브루크너가 그린 ‘환희의 세계’ 그 자체였다. 한스 리히터,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등 세계적인 명장의 손을 거친 120년 전통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여러모로 다른 차원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보다 더 정확히 이들의 연주를 표현할 단어가 또 있을까.
런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