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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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과 야권이 총선을 앞두고 개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만 주무부처인 금융당국은 난감한 모양새다. 한 달 전까지도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완강한 '불가'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다만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대통령실도 '총선 모드'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금융당국이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여야와 금융당국은 접점 없는 날 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화를 두고 입장 차가 명확해서다. 정계는 현물 ETF를 내놓는 게 자본시장법 개정 사안이 아닌 만큼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당국은 법을 고쳐야 하는 사안이라며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 "코인 현물 ETF 허용하겠다"…개미 환심사기 분주

여권인 국민의힘과 야권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에 경쟁적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을 담았다.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의 발행·상장·거래를 허용해 투자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해외 상품을 국내에서 중개하거나, 국내 운용사가 직접 관련 상품을 발행하는 것을 가능하게끔 하겠단 것이다.

먼저 나선 곳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전일 국회에서 '총선 디지털자산 제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의 현물 ETF 국내 도입 의지를 밝혔다. 국민의힘도 가상자산 관련 총선 공약에 같은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당초 공약을 이번 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정을 순연했다. 세부내용을 다듬은 뒤 조만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내부. 사진=신민경 기자
금융위 내부. 사진=신민경 기자
이들은 현행법상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본시장법에선 ETF의 투자대상인 '기초자산'으로 금융투자상품,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등이 해당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적·환경적·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도 기초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 마지막 경우에 가상자산이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때문에 법을 손봐야만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금융정책·감독당국이 심사 시 유연하게 해석해 주면 될 일인데, 당국이 버티고 선 채 규제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가장자산에 투자하는 ETF와 가상자산은 별개의 상품이므로,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ETF는 출시할 수 있다"며 "겐슬러 미국 SEC 의장조차도 비트코인의 금융투자상품 가치를 인정해서 현물 ETF를 승인한 게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거래·가격 산정이 가능하고 추종 지수가 명확하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적정 수준의 시장변동성을 갖추면 허용될 수 있지 않느냐"며 "최근 미국과 캐나다, 독일,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은 연이어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용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의 일관되지 않은 '오락가락 뒷북 규제' 반복으로 투자자 혼란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 "위법 입장 여전…더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사안"

여야의 동시다발적 공약에도 당국은 신중하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국내 법을 위반한다'는 기존 판단에 변함이 없단 입장이다. 앞서 금융위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지난달 여러차례 입장 자료를 내고 국내는 아직 법적으로 관련 상품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금융위는 "미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 증권사가 중개하는 것과, 국내 운용사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직접 발행하는 것 모두 위법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국회의사당 모습. 사진=뉴스1
국회의사당 모습. 사진=뉴스1
금융위 관계자는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을 위해선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라며 "지난달 밝힌 바와 같이 불가 입장에 변함은 없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치권에서 이 사안을 갖고 금융위에 먼저 의견을 구해온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비트코인 선물 ETF 발행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당국으로선 정치권의 급진적인 공약이 달갑지 않다. 불과 한 달 전 '위법'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바로 번복하기에는 큰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총선 모드…"금융당국 백기 들듯"

다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뿐 아니라 대통령실도 열린 입장을 보인 만큼 결국 당국이 백기를 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승인 가능성을 두고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한다, 안 한다'는 특정 방향성을 갖고 접근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며 "국내 법률 체계를 적절히 바꾸거나,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나라에 수용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향을 함께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당국은 표면적으로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지만 내부에서는 대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특히 당국 실무단에서 현물 ETF 상품화에 보수적인 것으로 안다. 정치권이 내놓은 게 '설익은 대책'인 감은 있지만 여야와 대통령실이 추진하는 것을 당국이 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한국거래소와 금융위 일부 부서에서도 현·선물 상품화와 관련해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편 정치권은 당국에 기초자산 요건으로 비트코인을 인정하는 '유권해석'을 해달라고 압박할 방침이다. 이를 주도하는 정계 관계자들은 발언 수위를 높여가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비트코인에 겁을 낸다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막기만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것"이라며 "당국도 법에 열거된 단어에 매몰될 게 아니라 기초자산 요건을 보다 융통성 있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